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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삼성생명보다 좋은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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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난 삼성생명보다 좋은 놈이다" [밥&돈·3] '국민연금'이 보내온 편지
국민연금과 알고 지낸 지 5년째다. 어느새 그와 정(情)이 꽤 들었다. 아마도 난 그를 애틋하게 여기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곳곳에서 뭇매를 맞는다. 그토록 매를 맞고도 제대로 항변 한 번 못하는 그가 가엽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지면을 그가 보내온 편지로 채운다.

'룰루랄라' 삼성생명 Vs. '애타는' 국민연금

난 국민연금이다. 나보고 속이 좁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정말 억울하다. 우선 나에게 보험료를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월급명세서에서 연금 보험료가 빠져나가는 것이 못마땅하겠지만, 당신들의 보험료를 받는 나 역시 무척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당신이 평생 100원을 나에게 내면 난 당신에게 250원을 돌려주어야 한다. 당신이 노동자라면 보험료 절반인 50원을 내고 250원을 받아가는 셈이다. 내 옆에 있는 삼성생명은 당신에게 100원을 받고 80원만 돌려주면서 '룰루랄라' 하는데 말이다. 내 등이 휘고 있는데, 당신은 여전히 나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고 불평한다. 당신, 정말 너무한다.

이를 보다 못한 노무현 대통령이 나섰다. 내가 100원을 받고 250원을 돌려주면 150원의 차액은 후(後)세대가 부담해야 하니까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액을 깎고 보험료율을 올려야겠다고 했다. 2003년부터 나온 이야기다. 언론에선 이를 '더 내고 덜 받는' 개정안이라 이름 붙였다.

이를 좋아할 가입자가 어디 있을까? 당연히 이 개정안은 4년 가까이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2004년엔 네티즌들이 나를 폐지하자며 촛불을 들었다. 지난달 국회에선 내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서는 기초연금의 도입을 위한 공조카드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서는 사학법과의 빅딜을 위한 야합카드로 오고갔다. 나도 정말 정신이 없다.

나는 개정안을 제출한 노 대통령의 뜻도 알고, 나를 없애버리자는 네티즌도 이해한다. 하지만 섭섭한 게 많다. 그들은 나와 한 번도 상의를 한 적이 없다. 참 독선적인 사람들이다.

내 마음은 이렇다. 100원을 받고 250원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 당근, 무척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해 보려고 한다. 원래 우리 공적연금이라는 집안은 받은 것과 줘야 할 것을 따지지 않는다. 받을 돈은 그 때 가입자들이 낼 수 있는 만큼, 줄 것은 그 때 수급자들이 필요한 만큼, 이것이 내가 어릴 때 배운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준 만큼을 요구하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만큼을 따지지 않으면서 연을 맺어가듯, 가족 부양을 사회적 부양으로 확장한 나는 줄 것과 받을 것의 양을 따지지 않는다.

'용돈연금'이라고?…'연금 맛'부터 봐야

물론 내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어느 날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며 나를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 1987년 11월 19일 이해원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현판식을 갖고 업무를 개시했다. ⓒ연합뉴스

1988년에 태어난 나는 올해로 19세 성인이다. 이제 나를 책임져야 할 나이이기에 내가 처한 문제들을 하나씩 점검하고 풀어가려 한다.

첫째, 나의 미래 재정이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당신들이 낸 것보다 많이 받아가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노후에 60%의 연금급여를 지급하려면 지금 월급의 20% 이상을 보험료로 요구해야 하지만, 지금은 9%에 불과하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보험료율을 올리겠다고 했다.

나는 이에 반대한다. 매일 800억 원의 부채가 늘어난다며 나의 재정파탄을 걱정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나에게 시급한 것은 40년 후 재정수지가 아니라 지금 가입자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연금재정은 워낙 규모가 크고 세대 간에 걸쳐 장기간 존속하는 것이기에, 단시간 자극적인 수치로 나를 흔들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혹 있어도, 나를 비롯해 우리 공공부문 집안을 싫어하기 때문에 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참으려 한다. 서구에서 가입자들이 20%대의 보험료율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노후에 받는 나의 진가를 알기 때문이다.

보통 나보고 '용돈연금'이라고 조롱하는데 이제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연금액이 적은 이유는 가입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20년 동안 연금 보험료를 낸 수급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들이 연금의 맛을 소문내 주기 바란다.

100원 내고 80원밖에 받지 못하는 삼성생명에게도 몇 십 만 원씩 내는 게 당신들이다. 문제는 당신과 나 사이의 신뢰다.

재벌 총수의 연금 보험료도 고작 16만2000원

둘째, 나에게 내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이 분들에겐 정말 미안하다. 내가 법적 강제제도인 탓에 나 때문에 오히려 생활이 더 곤란해진다고 한다. 지금 2400만 명의 경제활동인구 중 연금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려 1000만 명이다.

이제는 보험료율 구조를 바꿨으면 좋겠다. 지금은 부자든 가난하든 모두에게 9%의 동일한 보험료율이 적용된다. 게다가 소득 상한선이 있어 월 소득 360만 원 이상은 모두 360만 원으로 간주된다. 재벌 회장들의 소득도 내게는 360만 원으로 등록돼 있다. 그러면 보험료가 32만4000원인데, 그 절반은 회사 측에서 부담하니까, 회장 본인의 부담은 고작 16만2000원이다.

저소득 계층에 대한 보험료율을 낮췄으면 좋겠다. 이것이 복잡하면, 일정액을 국가가 보전해 주었으면 한다. 또 소득 상한선을 없애고, 누진 보험료율을 적용해 고소득자에게는 높은 보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왜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는지, 국회는 왜 스스로 이런 제안을 하지 않는지 안타깝다.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엔 그토록 과감하면서도 부자들에겐 비겁한 사람들이 많다. 참, 그들 스스로가 부자인 걸 깜박 잊었다.

'너그러운 기초연금'을 내 짝으로

셋째, 내가 지닌 여러 결함들을 보완하는 최선의 방안은 외로운 나에게 짝을 찾아주는 일이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처럼 노동시장이 불안정한 곳에서는 잘 살기 힘들다. 애당초 나는 사람들 모두가 번듯한 소득을 올려 보험료를 잘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성인도 되었으니 내 짝인 기초연금을 만나고 싶다.

나는 보험료를 낸 사람들에게만 연금을 지급하는 '냉혹한' 놈이지만, 내 짝인 기초연금은 보험료 납부 여부와 무관하게 65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에게나 일정액을 지급하는 '너그러운' 성격을 가졌다. 사회가 최소한의 노후 생계를 보장하겠다는 뜻이 담긴 괜찮은 제도다. 캐나다, 호주, 영국, 일본 등 여러 나라들에서도 이미 시행되고 있다.

물론 돈이 문제가 되긴 한다. 기초연금의 시행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만약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각각 18만 원(10% 급여율 해당, 2008년 불변가격)씩 지급하려면 2020년에 필요한 돈은 약 21조 원, 국내총생산(GDP)의 1.3%로 추정된다.

난 이 돈이 과도하다는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 복지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현재 한국의 공적연금 재정지출 규모는 GDP의 1.5%(국민연금 0.5%+특수직역연금 1.0%) 수준이다. 이는 2000년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평균 7.2%, EU(유럽연합) 15개국 평균 10.4%에 비해 턱없이 낮다.

우리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당신들이 세금이나 보험료를 내는 것에 소극적일 뿐이다. 삼성생명이나 민간 의료보험회사에 꼬박꼬박 군말 없이 보험료를 바치면서도,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나에겐 참 인색하다.

당신은 부끄러운 나라에 살고 있다. 당신네 나라의 GDP 대비 직접세율과 국가재정은 각각 10.4%와 27.3%다. OECD 평균은 15.7%와 40.8%다. 명색이 OECD 회원국인 당신의 나라가 지금이라도 다른 서구 국가들만큼 직접세를 거두면 42조 원을 확보하게 된다. 다른 OECD 국가들만큼 국가재정을 갖추려면 108조 원을 확보해야 한다.

가입자인 당신,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

이제 빌린 지면을 나가야 할 때다. 6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나를 두고 번잡한 논란이 있을 줄로 안다. 몇 가지 당부하며 글을 마친다.

가입자인 당신!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 난 삼성생명보다 훨씬 좋은 놈이다. 사실, 돈 있는 사람들만 찾아가는 그와 모두의 노후를 걱정하는 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속상한 일이다.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으니 당신도 나를 친구로 봐 달라. 우리에겐 서로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기초연금 지지자라는 한나라당! 내 짝인 기초연금을 모독하지 말길 바란다. 내 짝은 재원 방안이 있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신이 세금과 국가 재정을 줄이자고 주장하면서도 기초연금은 도입하겠다고 하니, 내 짝이 웃음거리가 돼 버렸다. 제발 기초연금 원하면 증세를 주장해 달라. 계속 감세를 주장하려면 아예 기초연금을 언급하지 말든가.

노 대통령과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힘 있는 언론들! 나를 가지고 사람들을 위협하지 말라. 내가 앞으로 수십 년 간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서 미래 기금 고갈을 운운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사람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도 노인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아지면 연금 수급기간이 줄어들어 재정 부담이 경감될 수 있다. 삼성생명으로 흘러가는 보험료만 내게 주어져도 미래 재정은 크게 호전될 것이다. 국민을 몰아세우지 말고 서로 동의한 만큼씩만 나를 바꾸어라. 당신의 임기는 5년이지만, 나는 수백 년을 살아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들! 이젠 조세개혁에 박차를 가하라. 당신들이 내 뜻을 잘 이해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기초연금을 주장하면서도 재원 방안이 뚜렷하지 않아, 진짜 당신들이 기초연금을 원하는지 가끔 의문이 간다.

민주노동당은 그 좋은 부유세를 어디에 감춰두고 있는가. 시민사회단체들은 요새 조세 문제에 관심이라도 두고 있나. 그러면서도 우리의 후손이 기초연금 재정을 책임질 것이라고 말하다니, 당신들도 참 태평하다. 세금을 '제대로' 거두자'고, 그리고 세금을 '더' 거두자고 데모를 하라. 나는 당신들을 지지하러 시청 앞 광장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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