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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들은 땅 파고 들어가는 세상, 바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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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들은 땅 파고 들어가는 세상, 바꿔야죠" [희망광장 릴레이 인터뷰·④] KBS 이광용 아나운서
지난 2011년 우리 사회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희망버스' 운동으로 뜨거웠다. 희망버스 운동은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국회 청문회로 불러들이는 성과를 거뒀고, 정리 해고를 '사실상' 철회한다는 내용의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로 갈등을 빚는 투쟁사업장들은 많다.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재능교육, 콜트-콜텍이 대표적이다. 특히 재능교육과 콜트-콜텍은 농성 5년째를 맞는 장기 투쟁 사업장이다. 그밖에 언론에서 잊혀지는 코오롱, 파카한일유압, 유성기업의 싸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리해고 반대와 비정규직 투쟁에 다시금 불씨를 지펴보자는 문제 의식에서 이번에는 '희망광장'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시청 광장에 텐트 둥지를 튼 '희망광장 기획단'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아 릴레이 인터뷰를 보내왔다. 네 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KBS 이광용 아나운서다. <편집자>
- 희망광장 릴레이 인터뷰
김미화 "마음 독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어요"
박래군 "'쌍용차 파업' 진압이 경찰의 '베스트 5' 사례?"
작은 관심이 사람들 목숨을 살리는 겁니다"

"희망광장 분들을 위한 인터뷰라면 당연히 해야죠. 제가 그 분들께 1%라도 도움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조건 해야죠."

뜻밖에도 시원시원하게 응해준 그의 첫 마디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아나운서 이광용 조합원. 파업에 들어간 지 16일째. 거리로, 콘서트장으로, 지역방송국으로, 노동조합의 투쟁에 참여하느라 바쁜 중에도, 희망텐트 농성자들을 위한 릴레이 인터뷰에 기꺼이 짬을 내주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스스로 이 인터뷰를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멋쩍어했다. 상대적으로 삶과 투쟁의 조건이 좋은 언론노동자로서 아픈 지적에는 기꺼이 수긍하며 아파했고, 함께 꼭 승리하자며 같은 노동자로서 연대를 약속했다.

업무 특성상 파업 집회 사회를 보거나, 프로그램 진행을 하고, 또 대 시민 선전전을 할 때도 눈에 띨 수밖에 없는 아나운서라는 신분 때문에, 그는 2010년 파업으로 징계대상에 올랐다. 46명 대상자 중 아나운서만 10명일 정도로 아나운서들은 회사에 미운털이 박혔다.

그런 부담을 지고 이 인터뷰에 응한 건, 해야 할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언론노동자로서 미안함 때문이고, 함께 투쟁하고 있는 동지로서 연대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난 번 시청광장에서 저희 파업 프로그램 '사랑의 스튜디오' 할 때 희망텐트를 봤어요. 사실 그 날도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이 옆에 계신데 방송사노조는 공정방송 투쟁한다고 나와서 너무 까불고 노는 것만 보여서 언짢아하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했어요. 그 텐트의 의미를 아는 분들은 다 죄송스러웠죠.

파업콘서트 한 날도 모금함 돌린 것에 대해 안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었어요. 우리보다 어려운 재능, 쌍차 같은 곳들도 있는데,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은 우리들이 그러는 건 부적절하다는 제긴데, 저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그날 우리를 위해서 자기 비용과 시간을 들인 분들도 있으니까 보답해야 하고,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죠. 면목 없지만 그런 마음까지 합해서 저희가 더 부담을 가지고 열심히 싸워 꼭 이기는 걸로 보답하겠습니다."


▲ ⓒ이선옥

방송사 노조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연대를 호소하는 글을 올리자 한 켠에서는 "해고되고, 가압류되고 해봐야 당신들도 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을 알거다. 자기 싸움에만 연대해달라는 이기적인 언론노동자들은 좀 당해봐야 한다"는 따끔한 비판들이 있었다. 방송사 노조가 싸울 때면 다른 노조들이 연대하고, 수많은 시민들은 촛불과 성금, 선물로 지켜주고, 유명한 연예인들도 함께 하는 등 온갖 지지와 응원이 집중되는데, 정작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에 소홀한 걸 꼬집는 말이다. 비아냥거리는 말에는 불쾌했을 법도 한데,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프죠, 아픈 말입니다. 그러나 서운하지 않아요. 충분히 압니다. 찔리고. 반성하고 있어요. 어떤 식으로든 그런 일깨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깨달으려면 강한 자극이 필요하니까. 비아냥대는 형식이 되더라도 강하게 질책을 해야 깨닫게 되잖아요. 자극이 강할수록 깨달음의 정도도 커진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 아픈 소리일수록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요. 적어도 지금 함께 싸우고 있는 저희 새 노조 동지들이라면 반성할 거예요."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상대적으로 자신들은 풍족하고 분에 넘치는 조건임을 잘 안다고 했다. 고임금의 안정된 직장이니 다음 달 월급이 안 나와도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사기업보다 훨씬 안정된 고용을 보장받는 터라, 옥쇄파업 한 번 했다가 해고의 칼날을 맞은 쌍용차 같은 곳에 비교할 수 있겠느냐며 연신 미안해했다.

그러나 다른 이의 죽을병 보다 내 몸의 작은 상처가 나한텐 당장 더 큰 아픔이듯, 그가 속한 KBS 새 노조는 지금 제 코가 석자다. 구 노조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조합원들이 냈던 쟁의기금을 가져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맨 몸으로 시작한 노조라 파업 때마다 조합원들이 갹출해서 투쟁 기금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니, 상대적인 차이가 있다 해도 그도 같은 노동자로 파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도 그런 어려움보다 미안함을 말하는 것은 그가 속한 방송사의 사장이나 간부들에겐 없는 '염치'란 게 그에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염치', 사장에겐 없는, 그들에겐 있는

희망버스에서 희망발걸음으로, 다시 희망텐트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희망세상'을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추운 겨울 탓인지, 그악한 정권 탓인지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광장에서 널리 희망을 퍼뜨리려 자리 잡은 희망텐트들은 경찰의 철거시도에 맞서 날마다 전쟁 중이다. 광장은 열렸지만 연대의 마음들이 닫히면서 오히려 희망은 광장에 고립되어 있다.

이들의 고립을 알려야하는 게 언론노동자가 할 일인데, 지금 그 사명감을 가진 언론인들은 파업 중이다. 그런데 과연 파업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노동자들의 이런 절박한 외침을 다뤘을까? 모든 아이템을 다룰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었다는 지난 정권 시절에도 노동자들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은 드물었다.

"어떤 말씀인지 알아요. 지난 정권에서도 노동자들이 많이 죽었고 고통 받았다는 걸 사실 저도 완벽하게 다 알진 못했어요. 죄송하죠. 이 정권 들어서서 쌍용자동차도 그렇고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문제, 재능교육 사태 그런 것들을 전하기 위해 노력은 했어요. 내부에서 그런 통로가 다 막히니까 개개 구성원들이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개별 프로그램의 빈틈을 찾아서 하긴 했지만, 미약하죠. 크게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에서 주요하게 다뤄져야 하는데 다루지 못했으니까 그런 데서 오는 불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고립은 희망텐트 노동자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가 속한 새 노조도 KBS라는 큰 조직에서 적은 수의 구성원들이 모여 고립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 중 아나운서국은 총인원 100여 명 가운데 새 노조 소속 조합원으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숫자는 14명뿐이다. MBC와 달리 방송이 차질을 빚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파업 사실을 아는 사람도 아직 많지 않다. 조직 안에서 고립되고, 조직 외부와 고립된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새 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을 응원해달라고 호소했다. 그에게 희망인터뷰를 청한 것도 그래서다. 고립들 사이의 연대를 이루기 위해.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못하고 고립돼있는 현실, 언론의 사명이 그런 걸 끄집어내서 알리는 건데, KBS 노동자의 한사람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KBS 새 노조 사람들이라면 그런 마음을 다 가지고 있을 거예요. 희망버스 갈 때도 새 노조 식구들이 많이 탔어요. 프로그램 속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를 다룬 사람들도 다 새 노조 사람이에요.

모두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반성의 마음들이 모인다면 좋은 방송환경을 만들었을 때 못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중요한건 관심이죠, 관심. 우리의 관심과 그것이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서 관심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언론노동자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죠. 그건 분명히 새 노조 식구들 마음에 담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다행이다. 그리고 기뻤다. 다시 마이크와 펜과 카메라를 잡는 날에는 지금처럼 우리를 고립되게 두지 않겠다는 약속이 미더웠다.

'해고는 살인이다', '동일노동 다른 임금' 꼭 사라져야 할 두 가지 명제

그는 쌍용차노동자들이 하는 대리운전을 늘 이용한다. 사정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지만 작년에는 아나운서국 조합원들이 '와락'에 가서 골든벨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리해고 사태로 아빠와 엄마를 모두 잃은 '쌍용차 남매'의 사연 때는 조합원들이 조의금을 걷어 보탰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마음을 만회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바로 언론이 언론답게 서기 위한 이번 파업이다.



▲ ⓒ이선옥
"힘들진 않아요.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이건 옳은 싸움이고요 궁극적으로 이긴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경제적인 어려움도 사실 언론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잖아요. 신용불량위기가 당장 오는 것도 아니고, 힘들다는 건 사치라고 생각해요.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상당히 면구스러워요.

그리고 저희들 파업은 시민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잖아요.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은 '저들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저희는 수신료를 받아서 방송을 하는 공영방송이니까. 그리고 방송이란 게 날마다 접하는 거니까 관심을 갖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궁극적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나 해고노동자 문제가 다 우리문제일수 있는데, 사고가 단절되는 거 같아요. 그걸 언론이 깨야죠.

저는 우리 사회에서 두 가지 명제만 없어지면 한국사회가 좀 더 살만한 사회,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고는 살인이다'와 '동일노동 다른 임금'. 해고가 되도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하고, 똑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 받는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해야죠. 무조건적인 전제조건은 사회안전망 구축이구요. 있는 사람들은 하늘높이 올라가고 없는 사람들은 땅을 파고 들어가는 구조가 점점 심화되고 있잖아요."

그는 주로 스포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번 파업에 스포츠 진행 아나운서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페어플레이 정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그는 야구와 축구에 대해 해박하고, 유쾌한 진행이 돋보이는 인기 아나운서(였)다. 이광용의 옐로우카드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며, 같은 이름의 인터넷 방송도 진행한다. 야구가 시작됐는데 야구장에 못가고, 프로그램 진행도 못해서 힘들지만, 스포츠의 기본은 페어플레이이듯 우리 사회와 방송사 내부에 페어플레이룰이 지켜지도록 싸우고 있다.

"저희가 지금 말도 안 되는 방송환경을 만든 구조에 저항하고 싸우고 있는 거잖아요. 이 싸움이 저희한테는 아주 중요한 싸움이고, 한국사회전체에도 아주 중요한 싸움이기도 해요. 저희 KBS 새 노조나 MBC 노조 모두 싸움을 통해 느낀 것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방송에 담아내도록 하겠다 약속해야죠. 저희도 갈증이 있어요. 하고 싶은 걸 못한 게 너무 많거든요. 핍박받고 소외받고 상처받고 죽음에 내몰린 노동자들 이야기 꼭 하고 싶은 거예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이 싸움 이후에 그동안 못했던 죄스러운 마음을 담아서 충분히 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만들어나가겠다는 얘기밖에 못 드리겠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약속뿐이라고 했다. 시사투나잇, 낮은목소리 같은 방송 다시 꼭 세워서 약자를 보듬는 프로그램들을 만들겠다고, 어떻게든 KBS 내부의 비정규직들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연대할 고민을 하겠다고 한다. 관심과 관심의 확장,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갈증을 충분히 풀어내서 더 큰 연대를 이뤄나가겠다는 약속이면 됐다. 그는 최소한의 약속이라 했지만, 언론노동자에게 우리가 바랄 수 있는 희망의 최대치는 그것이다.

우리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 세상에 우리의 얘기를 알려줄 사람, 그런 사람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확신만으로 우리는 이미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 언론노동자들과 해고노동자들의 거리가 그의 약속으로 성큼 좁혀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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