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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에서 이탈리아 향신료가 자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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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두물머리에서 이탈리아 향신료가 자라는 이유? [4대강은 지금] '4대강 지역 경작 금지' 가처분 기각, 그 뒤엔…
딸기 비닐하우스 옆에는 하얀 꽃에 파란 줄기를 가진 식물이 심어져 있었다. 잎사귀를 손가락으로 비벼 냄새를 맡으니 땅콩 향기가 났다. 이탈리아 음식 향신료로 쓰이는 '바질'이었다. 달콤하면서 톡 쏘는 매운맛이 있어 향신료로 쓰이는 바질은 차로 마시면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좋으며 피로 해소에도 좋다. 하지만 독특한 맛 때문에 우리 음식에 익숙한 한국인이 먹기엔 버거운 게 사실이다.

"저도 처음엔 그게 뭔가 했어요. 사직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분들이 심어놓으셨어요. 자기네들 식자재로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비닐하우스 안에서 유기농 딸기 몇 개를 따온 방춘배 팔당생명살림 사무국장은 바질을 보며 신기해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4월부터 이곳 두물머리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각기 자신들이 심은 농산물을 키우고 있었다. 바질 옆에는 넓은 감자밭이 있었다. 감자밭은 시민들의 공동 텃밭이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인 두물머리. 이곳에서는 딸기를 비롯해 감자, 상추 등 다양한 농작물이 재배된다. 모두 유기농 농작물이다. 농민들은 정부로부터 하천부지 땅을 일정기간 임대받아 농사를 지어왔다. 합법적으로 농토를 임대받고 농사를 지은 지는 20년 정도 됐지만 이곳 농민들은 팔당댐이 건설된 이후인 1970년대부터 유기농업을 해 왔다. 그런 곳에 왜 일반 시민들이, 자신들의 '먹을거리'를 키우고 있을까.

▲ 두물머리 입구에 있는 푯말. 이 뒤에는 넓은 감자밭이 위치해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하니…

이야기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뒤, 4대강 정비 사업이 발표되면서 이곳 상황은 변했다. 정부는 4대강 사업 제 1공구 지역에 포함된 이곳에 유기농지를 없애고 공원과 자전거 길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은 2009년 12월 '하천점용허가 취소요청'을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통보했다. 농민들은 원래 2012년 12월까지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허용돼 있었다.

하루아침에 터전을 버리고 떠나라니,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천점용허가에 따른 임대기간이 남은 농민들의 저항이 이어졌다. 점용허가 취소에 대한 '하천점용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두물머리 주변 22.2ha 밭을 가진 11개 농가가 제기했다.

1심에선 승소했지만 양평군과 경기도는 즉각 항소했고 2심인 고등법원에선 농민들이 패소했다. 4대강 사업으로 달성하려는 목적이 농민들이 유기농업으로 쌓은 신뢰이익과 법적 안정성 등의 사익보다 우월하다는 것.

농민들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언제 판결이 날 지 불투명하다. 게다가 정부는 이곳 농민들을 내보내려 혈안이 돼 있다. 2009년 6월 이후 경찰병력이 네 차례 투입됐다. 양평군은 농토를 무단 점거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며 농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서규섭 팔당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언제 경찰이 진압하러 올지 몰라 늘 불안하다"며 "또한, 계속 부과되는 벌금의 압박도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서 집행위원장은 "게다가 4대강 사업 반대 활동도 분주히 해야 해서 농사를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 때문에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던 열한 농가 중 일곱 농가가 지난해 5월 이곳을 떠났다.

주민들은 용문, 양평 등에서 다시 유기농업을 시작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방춘배 팔당생명살림 사무국장은 "그들이 안착한 곳은 산을 깎아서 만든 지역"이라며 "그래서 유기농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방 국장은 "게다가 땅을 사는데 쓴 대출 이자를 내야 하는 것도 문제"라며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 밭에서 일하고 있는 두물머리 주민들. ⓒ프레시안(허환주)

법원, 두물머리 농민에게 경작 계속하라고 판결

물론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12일에는 양평군에서 두물머리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을 상대로 '4대강 사업 대상지에서 경작을 금지 해 달라'며 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정부가 공사를 강행하기 위한 법적 명분을 얻기 위해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되레 자승자박당한 꼴이 됐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민사부(재판장 박홍래)는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는데도 별도로 민사소송으로 경작 금지를 신청하는 것은 부적법하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두물머리 농민들이 떠난 빈자리는 일반 시민들이 채웠다. 2012년 4월 8일 외부인들이 모여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불법이라면 우리를 불법경작자로 고발하라'며 '두물머리 밭전위원회'의 발족식을 가졌다. 이들은 떠난 농민들이 남긴 경작지에서 각종 농산물을 키우고 있다. 바질도 그 즈음부터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서 집행위원장은 "매주 주말이면 40~50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방문해 직접 텃밭을 가꾼다"며 "또한, 공연도 하고 여러 행사도 진행한다. 지난주부터는 태극권도 배우고 있다"고 설명하며 웃었다.

매일 오후 3시엔 두물머리에서 미사가 진행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860일 넘게 열리고 있다. 천주교 서울, 인천, 수원, 의정부 교구에서 돌아가며 진행하고 있다.

▲ 두물머리에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후 3시에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대규모 사업을 한다고 무작정 몰아내는 게 옳은 일인가"

두물머리 지역은 홍수나 가뭄 피해가 없는, 즉 4대강 사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역이지만 '자전거 도로와 공원 설치'라는 이유로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 집행위원장은 그게 가장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이곳은 상류지역이기 때문에 홍수나 가뭄이 전혀 생기지 않는 곳"이라며 "게다가 유기농업 지역이라서 수질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하천점용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이 패소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꼼짝없이 떠날 수밖에 없다. 설령 승소한다 해도 당초 계약된 임대 기간이 2012년 12월이므로, 그 이후엔 이렇다 할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곳 주민들은 법원 판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이렇다 할 대화가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4대강 사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정부와 여러 차례 대화를 요구했으나 현 정부는 귀를 막고 듣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두물머리 주민들은 대안으로 두물머리를 유기 농업 중심의 생태마을로 꾸리는 '퍼머컬쳐(permaculture·생태학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농촌 공동체 운동)'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서 집행위원장은 "4대강 사업으로 우리처럼 터전에서 쫓겨난 주민들도 상당수"라며 "그들을 대규모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몰아내는 게 맞는 건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퍼머컬쳐'는 4대강 사업에서 또 다른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며 "이것을 시작으로 4대강 사업 구역 곳곳에서 이런 형태의 대안이 안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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