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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먼저 핵폭탄을 개발했다면, 지금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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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먼저 핵폭탄을 개발했다면, 지금 세계는…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부분과 전체>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이번 연재는 선정된 과학 고전 각각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또 새롭게 읽어보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관련 기사 : )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손승우 한양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명현 박사(천문학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강양구 기자 등이 돌아가면서 서평을 쓸 예정입니다. 세 번째 서평은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가 이어갑니다.

오늘의 과학 고전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입니다! 마침 오는 2016년 2월 1일은 하이젠베르크의 40주기 기일입니다.

▲ <부분과 전체>(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김용준 옮김, 지식산업사 펴냄). ⓒ지식산업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년)는 말 그대로 양자역학을 만든 사람이다. 양자역학을 만든 사람으로는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닐스 보어와 에르빈 슈뢰딩거의 이름도 언급해야 할 것이며, 닐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의 이름 앞에 올 수도 있다. (알파벳 순서로 해도 그렇다.) 그러나 어쨌든 양자역학을 이야기하면서 하이젠베르크의 이름을 빼놓을 수는 절대로 없다.

하이젠베르크는 막 박사 학위를 받고 난 후인 1925년에 불과 24세의 나이로, 본인의 말에 따르면 북해의 외딴 섬 헬골란트에서 혼자 휴가를 보내던 어느 날 밤 새벽 3시에 "완전한 양자역학"을 창안했다. 또한 2년 뒤에는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원리인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해서 양자역학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 업적으로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 밖에도 그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 모형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상자성의 이론을 제안했으며, 양자 장 이론의 기초를 닦는 등 원자 및 아원자 세계의 물리학에 그 누구 못지않게 많은 공헌을 한,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물리학자의 한 사람이다.

<부분과 전체>(김용준 옮김, 지식산업사 펴냄)는 하이젠베르크가 은퇴를 1년 앞둔 1969년에 발표한 책이다. 그러니만큼, 이 책은 그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라는 개인을 표현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그가 평생 탐구했던 과학을 보여주기 위한 책이다. 특히 양자역학과 원자 물리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 이 책은 그 당사자가 직접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예를 들어서 위에서 이야기한 "완전한 양자역학"이 탄생하는 순간에 대해 하이젠베르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수학적으로 하등의 모순이 없는 완전한 양자역학이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 모든 원자 현상의 표면 밑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내적인 미의 근거를 바라보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자연이 내 눈앞에 펼쳐 보여준 수학적 구조의 풍요함을 추적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자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여러분이 이 순간에 대해서 쓴 글을 다른 어떤 책에서 읽었다 하더라도, 그 구절은 모두 이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편, 이 책의 특징은 하이젠베르크 본인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과학은 토론을 통해서 비로소 성립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책의 대부분이 하이젠베르크와 다른 과학자들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1922년 괴팅겐에서 열린 보어 축제에서 하이젠베르크가 보어와 단 둘이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든지, 자신의 양자역학을 발표하고 난 뒤인 1926년 봄에 베를린에서 강연한 후에 아인슈타인과 나눈 대화 등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현대 물리학의 결정적인 장면들이다. 괴팅겐에서의 산책에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이 구조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도대체 언제나 원자를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바로 그때에 '이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론입니다."

이렇게 이 책에는 양자역학과 자연의 실재, 과학의 본질과 인간의 인식에 대한 심오한 대화가 전편에 걸쳐서 펼쳐진다. 나아가서 언어와 양자역학을 이해한다는 문제의 관계, 양자역학에 비춰 본 칸트 철학의 의미, 나아가서 현대 물리학이 인간의 사유에 던지는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점들에 대해서 양자역학을 만든 본인이 여러 사람들과 벌인 토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0세기에 쓰인 고전이 분명하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대화는 정확히 기록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만년의 하이젠베르크의 생각에 따라 재구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서문의 첫머리에 "나는 나의 추측에 따라 그때그때의 상황 하에서 가장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각 대화자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하였습니다"라는 투키디데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만큼, 이 책에 나와 있는 대화 내용을 하이젠베르크의 생각을 나타내는 텍스트로는 쓸 수 있을지언정 책의 화자가 실제로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심하는 편이 좋겠다.

특히 미묘한 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 가운데 하이젠베르크의 역할과 책임에 관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원자 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우라늄 클럽의 중심인물이었다. 1941년에 하이젠베르크는 원자 폭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닐스 보어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 만남을 소재로 영국 작가 마이클 프레인은 <코펜하겐>이라는 희곡을 썼다. 독일은 결국 원자 폭탄 개발에 실패했고,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참여 과학자들은 연합군에 체포되어 몇 달간 억류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하이젠베르크의 책임에 대한 관점은 대략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하이젠베르크와 독일의 과학자들이 고의로 개발을 지연시켜서 나치가 원자 폭탄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는 적극적 저항의 관점, 두 번째는 연구는 했으나 실제로 폭탄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는 소극적 저항의 입장, 세 번째는 연구와 기술 수준이 폭탄을 만드는 데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라는 소극적 책임의 관점, 그리고 하이젠베르크는 열심히 연구했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적극적인 책임의 입장이 그것이다.

로버트 융크의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Brighter than a Thousand Suns)>(1958년)과 토머스 파워스의 <하이젠베르크의 전쟁(Heisenberg's War)>(1993년) 등이 첫 번째 관점을 대표하는 책들이다. 이 책들은 대체로 인류애를 위해 원자 폭탄 개발을 포기한 독일 과학자들과 승리를 위해 원자 폭탄을 만든 미국 측 과학자라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어 논란을 빚었다.

한편, 이 책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두 번째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즉 독일 과학자들은, 적어도 전쟁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조건 하에서 원자 폭탄을 실제로 완성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았고, 따라서 핵물리학 연구는 전쟁 후의 평화적 이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닐스 보어를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의 증언은 하이젠베르크의 주장과는 어긋나는 점이 많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체로 세 번째 관점이 맞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근거는 연합군 측이 우라늄 클럽의 사람들을 영국 정보부의 안가였던 팜홀에 억류해놓고 그들의 대화를 모두 도청해서 녹음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50년간 기밀로 취급되었고 하이젠베르크가 사망한 뒤인 1990년대에 공개되었다. 이를 포함해서 오늘날 여러 역사가들의 연구 결과는 제3제국에서 하이젠베르크의 행위는 모호하고 모순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치 정권을 지지하고 그 체제에 순응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전쟁 후 하이젠베르크는 완전히 복권되어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소장을 비롯해서, 원자물리학 위원회의 의장, 훔볼트 재단 이사장 등 독일에서 여러 중요한 자리를 맡았다. 세계적으로도 위대한 이론물리학자의 위치로 돌아갔으며 활동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 전의 가까웠던 동료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멀어져서 대체로 고립된 채 살았다. 특히 보어와의 관계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시 <부분과 전체>로 돌아가자. 이 책은 젊은이가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성장하고 사상을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교양 소설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으면 이 책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1969년에 독일어로 처음 발행되었고, 2년 뒤 "Physics and beyond"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번역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대학교 김용준 교수의 번역으로 1982년 초판이 나왔다. 나는 대학에 들어간 해에 이 책을 읽었는데, 지금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초판본이다. 선정 과정에서 이 책은 번역에 많은 지적을 받았다. 현재 나와 있는 책은 개정신판이라고 하지만, 번역어투에 대한 불만이 여전히 많고, 번역자의 연세로 보아 번역이 크게 바뀌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의 대화를 통해 양자역학의 발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근 나온 루이자 길더의 <얽힘의 시대>(노태복 옮김, 부키 펴냄)를 이 책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단, <얽힘의 시대>의 상당 부분 역시 이 책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점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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