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미국 내에서 1년간 테러 공격에 의해 사망할 확률은 350만 분의 1이라고 합니다. 0.00003%의 확률입니다. 로토 당첨만큼이나 확률이 낮다는 얘기죠.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케이토연구소 존 뮬러 연구원의 분석 결과입니다.
반면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의 51%가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이 테러 희생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 수치에 근거한 객관적 테러 위험 확률(0.00003%)에 비해 무려 170만 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객관적, 통계적, 현실적 테러 위험보다 170만 배 높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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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 정부가 해외에서 저지른 파괴적 대외정책의 실상을 미국 국민이 거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실제와는 반대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비판적 정치학자 마이클 패런티는 "미국 국민이 알고 있는 미 대외 정책과 미국 정부의 실제 정책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역사상 최대의 프로파간다의 승리"라고 지적합니다.
미국 정부는 실제로는 금융기관과 군산복합체, 대기업 등 상층부 지배계층의 이익을 위해 중동, 우크라이나 등 세계 도처에서 파괴적 군사 개입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세계의 자유와 민주, 인권과 정의를 위해 대외정책을 펼친다는 거짓말을 끊임없이 해 온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미 대외정책의 궁극적 역풍(Blowback), 트럼프
한편 필리핀 출신의 저명한 사회학자 월든 벨로는 최근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에 대해 미국의 대외정책이 불러온 최대의 '역풍(Blowback)'이라고 말합니다.
'역풍(Blowback)'이란 말은 1980년대 일본 경제 기적의 비결을 파헤친 보수적 경제학자였다가 탈냉전 이후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로 변모한 고 차머스 존슨 교수가 처음 대중에 소개한 말입니다. 당초 '역풍(Blowback)'은 중앙정보국(CIA)이 벌인 비밀공작의 여파로 CIA 요원 또는 미국인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사태를 지칭하는, CIA만의 은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차머스 존슨이 <역풍(Blowback): 미 제국의 비용과 결과>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한 지 1년여 후, 9.11사태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존슨의 예언이 적중했기 때문입니다. 1979년 아프간전쟁 이후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벌여온 군사 개입이 9.11테러라는 비극을 초래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이죠.
하지만 9.11이후에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앞에 말한 것처럼) 미 국민의 근거 없는 안보 불안은 커져만 갔고, 이를 바탕으로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막말 정치인이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벨로 교수는 트럼프가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한 것이야말로 미국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미 대외정책 사상 가장 위험한 '역풍(Blowback)'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트럼프의 선거 전략은 무슬림 및 멕시코인들에 대한 증오 부추기기입니다. 무슬림이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불법 입국한 멕시코인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선거 전략은 'M&M(Muslim & Mexican) 전략'으로 불립니다.
그는 3600킬로미터에 이르는 미국-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보안장벽을 세우고 불법 입국한 멕시코인과 가족들을 추방할 것을 주장합니다. 또한 무슬림의 미국 이민 및 입국 전면 중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12월 2일 샌 버나디노에서 무슬림 부부에 의한 총격으로 미국인 14명이 사망한 이후 트럼프의 주장은 보수적 백인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이 이민을 제한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무고한 무슬림과 멕시코인들을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지목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정치라고 벨로 교수는 비판합니다. 무슬림과 멕시코인은 미국에 대한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의한 피해자라는 것이 진실에 더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벨로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이라크에서의 역풍
2003년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이 테러를 없애기는커녕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거대한 테러 세력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당시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 테러 세력과는 앙숙이었던 데다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보유,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서 소수파인 수니파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시아-수니파 간의 내전이 격화돼 시리아, 예멘으로 번졌으며 수니-시아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와 이란이 국교를 단절하는 사태까지 이르렀습니다.
특히 이라크 수니파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와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지도에 의해 2014년 6월 이후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쳐 인구 600만 명을 통치하는 이슬람국가(IS)를 건설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 다발 테러로 130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는 잔혹한 테러극을 펼쳤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12월 2일 샌버나디노 테러는 IS 지도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닌 자생적 테러라는 점입니다. 즉 IS의 선전에 따라 지구촌 어디에서든 자생적 이슬람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세계적인 이슬람 테러의 단초가 됐다는 얘깁니다.
멕시코에서의 역풍 1: CIA 커넥션
1980년 이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의 마약 유입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배후에는 CIA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내내 레이건 정부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 전복을 위해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미 의회의 금지명령(볼랜드 수정법)에 의해 미 정부의 공식 지원은 불가능했습니다. 레이건 정부는 콘트라 지원을 위해 두 가지 우회로를 뚫었습니다.
하나는 이란-콘트라 거래입니다. 당시 미국의 적성국이었던 이란에 은밀히 무기를 팔고 그 대금 일부를 콘트라 반군에 전달한 것입니다. 레이건 정부 말기, 이 거래가 드러나면서 레이건은 탄핵 위기에까지 몰립니다.
다른 하나는 멕시코에 대규모 마약 생산 및 대미 유통을 허용한 것입니다. 그 대금의 일부를 콘트라에 보내는 조건이었죠. 그 배후가 바로 CIA였습니다. 니카라과의 자주적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미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좀먹는 코카인 등 마약의 미국 유입을 눈감아 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970년대까지 미미했던 멕시코의 마약산업은 1980년대 이후 급성장합니다. 지난 해 여름 극적 탈옥 이후 배우 숀 펜과 인터뷰했다가 체포된 멕시코의 마약왕 '엘 차포' 구스만은 사실상 CIA가 키워낸 것입니다. 멕시코의 저명한 탐사전문기자 아나벨 에르난데스가 쓴 <마약 왕국: 멕시코 마약왕과 배후의 대부들>이란 책에 그 실상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멕시코에서의 역풍 2: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1980년대 초 외채 위기 이후 멕시코 경제는 미국의 본격적 경제 침략을 당합니다. 일례로 20세기 초 멕시코혁명에 의해 확립된 농지의 공동소유제도가 미국 자본의 침탈에 의해 점차 사유화되고 농민들은 농토에서 쫓겨났습니다.
특히 1993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협정으로 멕시코 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됩니다. 2003년 카네기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협정 이후 10년간 130만 명의 멕시코 농민이 농지(와 직업)를 잃었습니다.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은 값싼 미국산 농산품이 대거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생계 수단을 잃은 멕시코인들에겐 그냥 앉아서 죽느냐, 북으로('엘 노르테': 미국으로) 가느냐의 선택밖에 없었습니다.
벨로 교수에 따르면 2006년 현재 멕시코 인구의 약 10%가 미국에 산다고 합니다. 멕시코 노동 가능 인구의 15%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멕시코인 7명 중 1명으로 미국으로 불법 유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NAFTA가 멕시코 농업을 파괴한 결과입니다. 멕시코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죽음을 무릎 쓰고 미국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대자본이 멕시코인의 삶의 기반을 파괴했기에 멕시코인은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서민들은 멕시코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비난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난하는 꼴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대로 미국의 대다수 시민들이 자국 대외정책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서민들은 모두 미국 대자본의 피해자들입니다. 멕시코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지만 미국인 대다수는 잘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 열풍'의 비밀입니다. 벨로 교수가 '미 대외정책의 궁극적 역풍'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농촌의 백인 등 미국의 대다수 서민들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곤경의 원인이 미국 대자본 및 이와 결탁한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 때문이란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 대외정책의 피해자인 무슬림, 멕시코인 등 외국인을 가해자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벨로 교수는 현재 미국의 대선 후보 중 오직 버니 샌더스만이 미국 내 불평등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인의 삶을 곤궁하게 만든 국내 민주주의의 위기와 잘못된 대외정책의 실상과 원인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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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1일 아이오와 당원대회, 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시작으로 2016년 미국 대선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공화당에서는 트럼프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가 피 말리는 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힐러리는 리비아와 우크라이나 등에서 침략적 대외정책을 주도한 장본인입니다. 힐러리가 이긴다면 미국의 앞날은 별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샌더스가 이긴다면 미국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나올 것이며 미국의 진로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샌더스에 대해서는 박영철 전 원광대 교수의 <프레시안> 기사 등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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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화당 지도부에서는 트럼프가 후보가 될 경우 '본선은 필패'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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