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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킵 손은 어떻게 블랙홀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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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킵 손은 어떻게 블랙홀에 빠졌나?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블랙홀과 시간 굴절>
<블랙홀과 시간 굴절>(박일호 옮김, 이지북 펴냄)을 몇 년 전에 소개했다면 저자인 킵 손(Kip Stephen Thorne)을 소개하는 데에 상당한 품을 들여야 했을 것이지만, LIGO에서 중력파를 검출한 2016년에, 영화 <인터스텔라>를 1000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던 대한민국에서라면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좋을 법하다. 그렇다. 킵 손은 바로 영화 <인터스텔라>의 기본 개념을 처음 제안하고 영화가 실제 촬영되는 동안 과학적인 면을 감독한 사람이며, 최근에 중력파를 검출한 LIGO 실험을 처음 제안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단순한 바람잡이만이 아니다. 실제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바로 영화 인터스텔라의 모티브가 되었던 웜홀과 타임머신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한 장이며, 중력파에 관한 장에서는 중력파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LIGO 실험을 처음 구상하고 제안하는 장면과 그 과정에서의 고민과 어려움과 노력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터스텔라>에 매혹되었던 사람이나 중력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만족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만큼 훌륭한 읽을거리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우리말로 번역된 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다루는 새로운 중력 이론으로 1915년에 세상에 등장했다. 중력 이론으로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수성의 세차 운동과 빛이 중력장에서 휘어진다는 것을 예측해서 각광을 받았고, 1920년대에는 허블에 의해서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우주의 시공간 자체를 다루는 이론으로서 더욱 중요해졌다. 1930년대에는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 초신성 등 별들의 운명을 탐구하는 도구로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더욱 더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일반 상대성 이론 연구는 다소 침체된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과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물리학 연구는 원자와 핵물리학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로 원자 폭탄이 등장했고, 전쟁 이후에는 냉전을 배경으로 수소 폭탄 개발에 계속해서 많은 자원이 투여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시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더 이상 적용할 만한 대상이 거의 없었다. 아직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의 관측 자료들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검증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반면 원자 물리학은 가속기의 발전과 더불어 풍부한 새로운 현상을 보여주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모든 문제들이 차츰 해결되고 일반 상대성 이론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핵폭탄 프로젝트에서 해방되어 연구실로 돌아왔고, 심지어 폭탄 연구를 통해 단련된 계산 테크닉까지 갖추게 되었다. 한편, 우연히 우주에서 전파가 오고 있다는 것이 발견됨으로써 전파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관측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으며 퀘이사가 발견되었다. 특히 이런 결과들이 논의된 1963년 12월의 '상대론적 천체 물리학에 관한 제 1회 텍사스 심포지엄'에서, 참가자들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고 일반 상대성 이론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소위 '일반 상대성 이론의 황금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epimg.net

킵 손은 황금시대가 개막하기 직전인 1962년 9월에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교의 존 휠러(John Archibald Wheeler) 밑에서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휠러는 황금 시대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었고, 당시 막 블랙홀 연구를 시작한 참이었다. 그리고 블랙홀이야말로 일반 상대성 이론의 황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였다. 이렇게 보면 킵 손은 그야말로 블랙홀 연구를 위한 때를 가장 정확하게 타고난 사람이었던 셈이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역시 시대를 맞춰서 태어나는 일이다.

사실 블랙홀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시작과 함께 태어나서 늘 이론의 배후에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개념이었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언제나 그것을 막연히 외면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배척했다.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이 발표되고 불과 두 달 후에 프러시안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된 카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 1873~1916년)의 풀이에서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별의 반지름이 어떤 유한한 값이 되면 물리적인 상황이 극단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 부분은 물리적인 답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물리적인 답이 될 수 없는지를 확실히 말할 수는 없었다. 물리학자들이 별들의 운명을 더 깊이 탐구할 때도, 별들이 중력에 의해 내파(implosion)해서 극단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은 백색왜성과 중성자별 너머로 자꾸만 고개를 들이밀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황금 시대는 곧 블랙홀의 황금 시대였다. 이 시대에 접어들 무렵 블랙홀은 차츰 별들의 운명이 다다르는 곳으로 받아들여졌다. 휠러도 원래는 블랙홀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으나 다양한 고찰 끝에 결국 블랙홀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블랙홀의 강력한 옹호자로 변모하게 된다. 황금 시대를 거치며 블랙홀의 특이한 성질들과 다양한 양상이 밝혀졌다. 블랙홀의 '무모성', 안정성, 회전하는 블랙홀, 맥동하는 블랙홀, 그리고 어쩌면 블랙홀의 가장 이상한 성질이라고 할 블랙홀의 복사 등등.

킵 손은 특히 자신의 스승인 미국의 존 휠러, 구 소련의 야코프 젤도비치(Yakov Borisovich Zel'dovich, 1914~1987년), 영국의 데니스 시아마(Dennis William Siahou Sciama, 1926~1999년)를 블랙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스승들로 꼽았다. 이들은 본인의 연구를 통해, 또 많은 제자들을 통해 블랙홀의 물리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젤도비치는 소련에 강력한 일반 상대성 이론 팀을 구성했고 이고르 노비코프(Igor Dmitriyevich Novikov) 등의 제자를 배출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시아마는 비록 정교수가 아니었지만,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바로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이 시아마의 제자다.

블랙홀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깊어지고, 천문학과 천체 물리학이 발전함에 따라 이제 블랙홀을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전파 천문학, X선 천문학은 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 주었고, 퀘이사나 전파 은하에서 나오는 강력한 제트 가스와 같이 블랙홀을 의미하는 여러 종류의 관측 결과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아가서 한 쌍의 블랙홀은 관측이 가능할 만큼의 중력파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블랙홀을 이론적으로 더욱 깊이 이해하는 일, 즉 블랙홀의 내부에 대해서 논의하고, 블랙홀에 관한 양자 역학적 성질을 이해하고, 블랙홀을 통해 양자 중력 이론을 탐구하는 일이 진전되었다. 그리고 웜홀과 같은 더욱 특이한 대상과 타임머신의 가능성도 물리학자들의 연구 대상의 범위에 들어왔다.

100년에 걸친 이 장대한 우주 오디세이를 이 책만큼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러면서도 풍부한 의미를 담아서 서술한 책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이론과 역사와 비화가 망라되어 있다는 책의 카피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킵 손만큼, 그 스스로가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킨 주역 중 한 사람으로서 이 분야에 대한 심오하고 정확한 이론적, 실험적 지식과, 황금 시대를 몸소 체험하며 얻은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고루 갖추었으면서 이를 유려하게 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앞으로도 과학책의 고전으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이 책에는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너무나 섬세하게 담겨 있어서, 나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감동을 얻게 된다. 물리학자들의 개성, 역사적 사건의 이면, 심지어 이론에 대한 더 깊은 통찰까지도. 아마도 모든 독자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이 책이 더 재미있어지는 경험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과학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도 대중을 위한 과학책을 대체 어떻게 써야 좋은 것일까라는 질문을 늘 되새긴다. 물론 마땅한 대답은 아마도 아무데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두꺼운 독자층, 많은 수의 전문 작가들과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즐비한 구미와 일본에서도 과학을 대중에게 읽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숱한 고민과 시도와 좌절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본다. 전문 작가가 쓰는 것이 좋을까? 과학자가 쓰는 것이 좋을까? 독자가 어디까지 과학 지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은가 직관적으로 알기 쉽게 쓰는 것이 좋은가? 역사적 접근과 주제별 접근 중 어느 쪽이 효과적인가? 논리적인 정합성이 중요한가 가독성이 중요한가? 적어도 내게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정답은 바로 이 책이다.

킵 손의 친구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년)이 이 책에 대해 평한 한마디가 책 뒤에 적혀있다.

"너무나 훌륭하다. 과학책은 이렇게 써야 한다."

나 또한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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