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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왜 도킨스를 증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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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교회는 왜 도킨스를 증오하는가?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눈먼 시계공>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종종 보는 현상이지만, 어느 분야나 창작자 자신이 꼽는 대표작과 대중이 열광하는 작품이 다르다. 교양 과학 분야의 대스타 반열에 오른 리처드 도킨스도 그렇다. 국내 독자는 그의 대표작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꼽는다. 여러 군데에서 꼭 읽어야만 할 책을 가려 뽑을 때, 그의 책으로 당연히 <이기적 유전자>가 나온다.

도킨스를 2009년에 만난 최재천에 따르면, 정작 본인은 <확장된 표현형>을 가장 아낀다고 했단다. 그러니 <크로스로드>가 뽑은 과학 고전에 <눈먼 시계공>(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이 들어간 것은, 통념이나 관성에 대해 도전이라 할 만하다. 대중의 인지도와 달리, 전문가가 보기에 도킨스의 대표작은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이 책이라 보았으니 말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한다. 암묵적인 합의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틈으로 한 저자의 더 깊고 넓은 사유를 솟아오르게 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도킨스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책은 장광설인 데다 독단적인 면도 있어서다. 그런데도 그는 개인적 선호를 넘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저자가 되었다. 이럴 때는 도리가 없다. 좀 과장하자면, 이를 악물고 읽어야 한다. 애쓴 만큼, 또 과장하자면 힘들었던 만큼 얻는 것이 많다.

아, 오해하지는 말기를. 나라는 사람이 요즘 말로 하면 '문송(문과라 죄송)'이라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자주 나와 그러니, 과학에 대한 기본 교양을 충실히 닦았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터. (단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미리 귀띔해 두자면, 이 책의 3장과 8장부터 11장까지는 건너뛰어도 된다.)

▲ <눈먼 시계공>(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눈먼 시계공>은 도킨스 사상의 거대한 저수지 같다. 이 책에는 그가 주장해온 진화론의 큰 물길이 닿아 있다. 먼저, 출세작 <이기적 유전자>와 스스로 꼽은 대표작인 <확장된 표현형>의 고갱이가 기본 저수량을 확보하고 있다. 그 일례는 '6장 생명 탄생의 기적'에 나온다.

"DNA 복제자는 자신을 위해 '생존 기계'(자기를 담고 있는 생물의 신체)를 만들었다. 그 장비의 일부로 신체는 컴퓨터, 즉 뇌를 진화시켰다. (…) 하지만 뇌, 책, 컴퓨터가 존재하면 이 새로운 복제자들은 뇌에서 뇌로, 뇌에서 책으로, 책에서 뇌로, 뇌에서 컴퓨터로,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번식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유전자(gene)와 구별하기 위해 밈(meme)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이 저수지에서 흘러나올 도도한 물길의 새로운 사유는 무엇일까? 나중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들어진 신>이 바로 그것이다. 기실 <눈먼 시계공>이 유명해진 것도 윌리엄 페일리를 비판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펼쳐진 지적 설계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 덕이다. 무슨 내용인고 하니, 이렇다.

1802년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 신학 또는 자연 현상에서 수립된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증거'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페일리는 풀밭을 걷다가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고 한다. 그러고는 시계의 톱니바퀴나 용수철의 형태가 보여주는 정밀함을 말하면서 이것들을 조립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짐작해보라 했다. 하필이면 그 풀밭에 왜 시계가 놓여 있었느냐는 설명할 수 없을지 몰라도 다음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했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에 맞게 설계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독설가인 도킨스가 페일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꽤 부드럽다. 아마도 그가 당대 최고 수준의 생물학 지식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나중에 다윈도 예를 들어 설명했던 눈을 근거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 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페일리는 망원경과 눈을 비교했다. 망원경은 인간이 멀리 떨어진 것을 더 잘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눈도 어떤 것을 본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망원경이 인간의 설계를 통해 만들어졌듯이 눈도 반드시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페일리의 주장에 도킨스는 당연히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 한 방 먹인다. 성미 급한 도킨스는 서둘러 결론부터 말한다. "모든 자연현상을 창조한 유일한 '시계공'은 맹목적인 물리학적 힘"이며, "자연 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 '눈먼' 시계공이라고!

도킨스가 흥분한 이유는 이미 파악했을 테다. 페일리가 말한 시계공이 결국에는 야훼를 가리키고 있고, 이는 지적 설계론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페일리의 지적은 파괴력이 크다.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기관이 진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눈처럼 극도의 완벽함과 복합성을 갖춘 기관을 사례로 들었을 적에 대중이 진화론을 불신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시간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눈은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무에서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복잡성과 완벽함을 갖춘 눈으로 진화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 그러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수억 년"인 법이란다. 도킨스는 말한다.

"복잡한 물건이란 그것이 너무나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물건을 말한다. 그것은 일회적인 우연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생성 과정을, 우연히 생겨날 정도로 충분히 단순한 최초의 물체가 점차, 누적적으로, 단계적으로 더 복잡한 물건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확률 이론을 직관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도킨스는 자연 선택과 무작위성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더불어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는 관점을 비판하면서 "모든 부분이 전체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고 정리했다. 이 부분도 도킨스는 공을 들여 설명한다.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아래와 같다.

"단순하고 덜 발달하였으며 반만 완성된 눈이나 귀, 음향 탐지 체계, 뻐꾸기의 기생 생활 방식 등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 눈이 없다면 전혀 볼 수 없다. 눈이 절반만이라도 있으면 비록 초점이 맞는 정확한 영상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천적이 움직이는 대강의 방향이나마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른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도킨스는 전형적인 두괄식 형태의 글쓰기를 자랑한다. <눈먼 시계공>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장을 선명하게 밝혀놓고, 뒤에 이를 입증하는 다양한 사례를 늘어놓는다. 그러니, 도킨스 책을 읽을 적에는 초반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뭇 생명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라는 점을 명백하고 인상 깊게 책 앞에 말해두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가 왜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신앙심을 바탕으로 창조설을 입증하기 위해 던지는 조롱 조의 질문이다. 누군가의 믿음을 굳이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도 이성이 눈먼 신앙은 곤란하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그러하듯, 진화에 걸리는 시간은 우리의 경험치를 뛰어 넘는다.

그 점만 염두해 두면, 빼기로서 자연 선택과 더하기로서 돌연변이로 이루어지는 진화의 역사를 동의하게 마련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최소한 <눈먼 시계공>이라도 읽고 지적 설계인지 진화인지 하는 논쟁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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