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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고의 감춰진 진실, "매일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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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고의 감춰진 진실, "매일 5건!" [기자의 눈] 하청 노동자가 아닌 불특정 다수가 죽는다면?
31일 하루 동안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을 방문한 정치인들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양당 대표들이 왔다 갔으니 다녀가야할 정치인들은 다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만큼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를 당한 열아홉 살 청년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크다는 방증이리라.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씨는 지난 28일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던 중, 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열차가 역내로 들어오면서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김 씨는 일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는 신참이었다. 서울메트로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도 아니었다.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은성 PSD 소속이었다.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의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하청업체다. 김 씨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경찰 조사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매뉴얼대로 일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가방에서는 컵라면과 젓가락, 그리고 밥숟가락이 나왔다.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빨리 취업을 한 김 씨다. 그런 그가 한 달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은 겨우 백 몇 만 원. 그 돈으로 매달 100만 원씩 적금을 부었다. 남는 돈으로 동생 용돈을 주기도 했단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 씨의 어머니. ⓒ프레시안(허환주)

자식의 죽음에 자책하는 부모

31일 기자회견을 한 김 씨 어머니는 자기가 자식을 죽인 거 같다고 오열했다.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상사가 시키는 일을 잘 하라고 했는데, 그게 자식을 죽인 원인 같다고 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작년 10월 사망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아버지다.

현대중공업 도크에서 블록 작업을 하던 아들은 크레인에 실려 이동 중인 다른 블록에 부딪혀 12미터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우측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상을 당했다. 급히 뇌수술을 했으나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당시 상황을 종합해보면, 작업자들은 블록 작업을 마친 뒤, 블록을 크레인에 매달고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균형이 어긋나 블록이 좌우로 흔들렸다. 그래서 다른 블록 위에서 작업을 하던 아들이 흔들리던 블록에 맞아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신호수는 블록을 크레인으로 이동하기 전에는 블록 동선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대피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블록 안 인원만 확인하고 곧바로 블록 이동을 진행한 게 사고를 일으켰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물 여덟이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곧 태어날 아기가 부인 뱃속에 있었다.

기자가 만난 아버지 이만우 씨는 자기가 아들을 죽게 한 거 같다고 자책했다. 아들을 조선소로 이끈 게 자기라는 것. 그러지만 않았어도 아들은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이 어디 아버지의 잘못인가. 효율성 만을 강조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 그 안에서 이윤을 높이기 위해 하청 노동자를 양산하는, 안전보다는 이윤을 우선시하는 공정 구조가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그 아들의 죽음 뒤에도 변하는 게 없었다.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 혹은 실수에 따른 죽음으로 치부됐다. 그래서일까. 2016년 들어 일곱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그중 다섯 명은 이 씨 아들과 같은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죽음

이야기를 다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로 돌려보자. 주목할 점은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3년 1월(성수역), 2015년 8월(강남역)에 이어 세 번째다. 똑같은 패턴의 사고가 반복됐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죽는 것과 비슷한 패턴이다.

똑같은 이유, 그리고 똑같은 구조적 문제로 사람이 일하다 죽었지만 정작 문제 해결은 아무 것도 되지 않고 있다. 이런 비극은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겪는 일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2015년 7월 한화케미컬 울산2공장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폭발사고로 사망. 그 중 1명 아르바이트생.
2015년 4월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 하청업체 노동자 3명 질식사.
2015년 1월 경기도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장 협력업체 직원 3명 질소가스 누출 질식사.
2014년 한 해 동안 현대중공업 그룹 조선소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13명 사망
2013년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 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사망,
2011년 7월 경기도 일산 이마트 냉동기 점검 하청업체 노동자 3명 사망.
2008년 경기도 이천의 냉동 창고 화재 40명 사내하청 노동자 사망.

최근 발생한 굵직한 산재 사고들이다. 죽음은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15년 고용노동부 기준으로 일하다 죽은 노동자수는 1810명. 이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다. 여기 통계에서 빠진 지압차 운전수 등 특수고용노동자 사망 건수까지 합하면 한 해 사망자수는 2000명을 훌쩍 넘는다.

▲고인이 사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9-4에 붙여진 쪽지들. ⓒ프레시안(허환주)

불특정다수가 매일 다섯 명씩 죽는다면?

그런 생각도 든다. 과연 이런 죽음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천장이 무너져 깔려 죽고, 서류 결재 받으러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죽고,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타다 추락해 죽는다면…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으로 불특정다수가 매일 다섯 명씩 죽는다면 어땠을까?

서울은 여느 지방 도시와 비교해서 매우 안전한 도시다. 2014년 노동부의 전국 16개 시도별 사망만인율을 보면 서울(0.49‱)은 제주도(0.43‱) 다음으로 전국 2위를 차지했다. 평균 만인율은 1.08‱였다.

2015년 38명이 사망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사태를 생각해 보자. 메르스 발병부터 종식 선언까지 217일이 걸렸으니 일주일에 한 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당시 서울시와 중앙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메르스 사태에서 불거졌던 제도 문제도 일일이 손을 보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위상 강화를 위해 차관급 기관으로 격상됐고, 방역 컨트롤타워도 질병관리본부로 일원화됐다. 또한 '24시간 긴급 상황센터EOC'를 가동, 전 세계 감염병 정보를 수집 및 분석할 뿐만 아니라 국내 상황에 대한 긴급 대응도 강화했다. 2016년 질병관리본부 예산도 6924억 원이 배정돼 2015년 664억 원보다 22.2% 늘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되는 전염병에는 신속한 사후대책이 마련됐다. 하지만 일하다 죽어 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논외의 대상처럼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지금의 구의역 '열아홉 비정규직 사망'건에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게 왠지 쇼처럼 보인다. 그들이 지금 사태의 근본원인인 도급 문제를 건드릴 수 있을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20대 국회가 개원했다. 개원 이튿날 무게감 있는 정치인들이 사고현장을 찾았다. 사람이 희망을 놓는 것은 지금의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힘든 삶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좌절 때문이란다.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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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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