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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아', 박원순은 정말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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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메피아', 박원순은 정말 몰랐을까? [해설] 2015년 용역보고서, '메피아' 문제 지적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눈뜬 장님'이었을까. 박 시장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최고 책임자다.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건 2013년 1월(성수역), 2015년 8월(강남역)에 이어 세 번째다. 똑같은 패턴의 사고가 반복되는 동안 이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질타다.

박 시장은 그간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이번 사고는 사회 구조적 모순 문제"라며 서울시의 책임 보다는 구조적 요인에 무게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도급 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서울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하소연이었다. 한마디로 현재의 문제를 알고서도 가만히 두었다는 이야기다.

여론의 뭇매가 이어졌다. 최고 책임자가 할 소리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급기야 박 시장은 지난 12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구의역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토론회'에서 우리 사회가 '하청사회'가 됐다는 지적에 동의하며 "서울형 노동혁명, 서울형 구조개혁이 전국으로 퍼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의역 사고로 드러난 외주 용역 관련 문제는 직영화로 해결하고, '메피아' 등 잘못된 관행도 혁파하겠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메트로 사무직 늘고, 현장직은 줄고...

하지만 구의역 사고가 발생하도록 한 구조적 문제, 즉 원‧하청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문제다. 심지어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 노사 분쟁 해결을 담당하는 '서울시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 보고서를 박 시장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2015년 4월 발표된 '지자체 투자출연기관 노사민정 안전 거버넌스 구축 방안 연구'(연구책임자 :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를 보면, 서울시 양대 지하철 공사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해서 전체 인력 규모를 축소해 왔다.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추진된 '창의'라는 이름이 붙은 인력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라 큰 폭의 인력 감축이 있었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2008년 유사기능 통폐합, 점검 주기 조정, 아웃소싱과 민간 위탁 등으로 사업 내용이 구성된 '창의 혁신 프로그램'을 실시, 총 1만284명이었던 정원이 이때부터 축소됐다. 이후 2013년까지 1127명의 인력이 감축됐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역시 서울메트로와 마찬가지로 2007년 이후 정원과 현원이 대폭 축소됐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창의조직 프로그램'을 통해 규정상 총 정원은 6920명에서 6524명으로 396명이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현원도 2007년 6845명에서 2013년 6538명으로 감축됐다. 총 4.5%에 해당하는 307명이 구조조정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단순히 인원이 줄어든 게 아니라 특정분야 인력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본사 인력은 늘어난 반면 현업은 크게 감축된 것. 즉 '사무' 중심의 본사 및 본사지원 인력과 '유지보수' 중심의 현업 인력 사이에 비대칭성이 심각하게 진행됐다.

이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사업이라는 형태로 부대사업이 늘어나면서 시설물 유지보수 인력보다는 사무를 담당하는 인력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서울메트로의 본사와 현업 인력 변화를 살펴보면, 2001년 706명에 불과했던 본사 인력은 2014년에 이르러 1118명까지 증가하였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현업 인력은 9389명에서 1392명이 감축, 7997명 남짓 됐다. 전체적인 운행거리나 시설물이 지속해서 증가해 온 사실과 비교하면 현장 노동 인력은 매우 줄어든 셈이다.

세부적으로 서울메트로 직종별 인원 변동 현황을 보면, 운전, 전동차, 기술, 특수 분야 인력이 모두 크게 줄어들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2010년부터 4년간 사무직은 오히려 늘어난 반면 차량, 기술 등의 현업 인원이 줄었고 시설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요컨대 현장에서 안전을 직접 책임지고 있는 일선 노동자는 지속해서 구조조정의 대상이었던 반면, 본사의 고위직과 사무직은 외려 확대되어 온 기형적 인력 관리가 진행되어 온 것이다. 조직 구조가 현업 중심이었음에도 서울시 지하철 양 공사는 그동안 정반대의 인력 정책을 고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을 두고 서울시의 교통 당국 역시 이러한 그릇된 인력 정책의 책임에서 비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메피아'의 존재, 박 시장은 정말 몰랐을까

그렇게 줄어든 현장 노동자의 빈 자리를 외주 용역으로 점차 늘려나갔다. 현재 전국 지하철 사업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민간위탁 방식의 외주 용역 비율은 전체적으로 25.2%. 서울메트로는 26.0%로 평균을 약간 상회하며, 서울도시철도는 24.4%로 약간 하회하고 있다.

서울시 지하철 양 공사의 구체적인 외주 용역 현황을 살펴보면, 우선 서울메트로의 경우 2008년부터 기술 및 차량분야 외주 용역이 본격화됐다. 기술 직종은 의무적으로 분야별 1곳 이상을 외주 용역으로 전환했다. 차량 분야는 경정비(일상정비, 월상정비)를 외주 용역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경정비 정규직인원은 2008~2009년에 걸쳐 84명이 줄고 중정비 인원은 같은 기간 117명이 줄어들었다.

외주 용역 현황을 살펴보면, 출입문과 관련된 PSD(스크린 도어) 유지보수, 전동차 일일 및 월 검사에 해당하는 경정비, 열차중단 시간에 궤도시설물 보수와 관련된 모터카, 철도장비 등이다.

시설 유지업무가 대부분인 셈이다. 이들 업무는 모두 지하철 안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업무들이다. 하지만 외주화로 운영되는 구조다. 이번 구의역 사고도 PSD 유지보수 업무를 맡은 외주 업체에서 일어났다.

문제는 이들을 외주화 하면서 당시 서울메트로 명예퇴직자들이 외주 용역 회사로 대거 이동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2008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되는 서울메트로의 경정비 용역을 살펴보면 경정비 용역 업체 총인원이 140명이다. 이 중 서울메트로 전직자가 76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논란이 되는 '메피아'들이다.

연구 보고서는 "경정비 용역 자체가 정비 업무 본연의 목적보다는 명예퇴직자의 전직 지원 성격이 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보고서는 "다양한 경력의 명예퇴직자 인력구조와 전문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 고용의 인적구성은 정비 업무상의 안전 문제를 유발할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며 "더불어 서울메트로의 시설관리, 유지업무 등 기술 분야 외주 용역은 환경관련 측정을 제외한 28개 사업에서 수행되고 있으며 이들 업무의 대부분이 유지 보수가 원활하게 되지 못할 경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최형락)

"각 분야 무분별한 외주화 진행됐다"

이렇게 우후죽순 외주화가 진행된 배경에는 효율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사용자 입장, 즉 서울시 입장에서 업무 자체를 전문업체에 넘겨주는 방식이 비용을 절감하면서 가장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방책으로 간주된다는 것.

이 보고서는 '외주화' 관련 "서울시 양대 지하철 공사의 외주용역은 최초 당시 서울시의 비용절감에 부응하고자 실시된 정책"이라며 "구체적이고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된 '보여주기' 성격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외주 용역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최저가 입찰제로 시행되고 있다"며 "외주업체는 용역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숙련, 저임금, 비전문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현장 인력의 숙련도 역시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보고서는 "문제는 외주 용역 대상에 면밀한 검토 없이 외주화를 하지 말아야 할 안전업무까지 추진함으로써 현재 다양한 안전 위협 요인을 양산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결국 현장 (숙련)인력 감축-안전관리체계 이완-외주화-비정규 인력 활용-교육훈련체계 붕괴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지하철에서의 안전은 부단히 위협받고 있다"며 "궤도산업에서의 안전은 총체적인 것으로서, 적정한 인력 유지, 안전관리체계 개선, 교육 훈련 강화, 안전문화 구축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하나의 묶음(package)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 빼든 박원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박원순 시장에게 이 보고서는 2015년 4월 29일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그해 8월 강남역에서, 그리고 올해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보고서에서 문제의 원인을 지적했지만 소용 없었던 셈이다. 알고도 눈을 감았는지, 아니면 정작 보고를 받고도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는지는 본인 말고는 알 길이 없다.

알고도 눈을 감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무엇보다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확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를 마련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안전문제에 눈감는 이유다.

보고서에도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예산 투여 및 이를 위한 재정계획 수립'을 첫 번째로 꼽았다. 안전과 비용(돈)은 항상 반비례의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노후화 사례와 안전관리 실태 개선은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다. 박 시장이 12일 토론회에서 "많은 부분이 돈 문제이고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한 배경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양 지하철 공사들은 이미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메트로의 2015년 당기순손실(추정)은 1160억 원이고 5~8호선 운영을 담당하는 도시철도공사도 2015년 당기순손실(추정)이 2570억 원이다.

이 손실 중 65세 이상 노인들의 무임 운송비는 각각 1260억 원(도시철도공사), 1894억 원(서울메트로)이다. 서울시는 이를 중앙정부에서 해결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묵묵부답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노인 무임승차는 국가 차원의 복지정책인 만큼 중앙정부가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을 일부라도 보전해야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렇다 보니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12일 토론회’에서 "지속가능하게 지하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재원이 부족하다"며 지하철 요금 인상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메피아' 문제를 해결하면 재정마련은 충분하다는 질타였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듯, 비용 없는 안전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도 설득해야 하고, 중앙정부와도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박 시장이 구의역 사태 관련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칼을 빼들었지만 이 칼이 제대로 들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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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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