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탁구는 노메달에 그쳤다. 개인과 단체 경기 모두 4강과 8강 게임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탁구는 영어로 핑퐁(ping pong)이라고 한다. 탁구대와 라켓에 공이 맞을 때마다 핑, 퐁 하는 소리가 나 '핑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내 귀에는 '탁 탁'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말이다.
핑퐁은 탁구 경기에만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정부 부처가 무슨 문제가 터지거나 악성 민원이 생기면 서로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하며 다른 부처로 그 사안을 떠넘길 때도 흔히들 '핑퐁 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2016년 8월 17일 오후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 규명과 피해 구제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 조사의 정부 기관 보고 둘째 날 국회 본관 제3회의실에서는 보건복지부,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을 대상으로 국정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2011년 5월에 있었던 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의 민원 제기 처리 실태를 예로 들어 파워포인트 화면까지 비추어가며 정부 부처 간 민원 핑퐁을 꼬집었다. 민원을 제기한 소비자는 유럽연합(EU)에서도 안전성을 확인한 성분인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선전한 세퓨(Cefu) 제품의 사용자였다. 그는 업체가 인체 무해하다고 한 이 성분을 당국이 검증한 것인지, PGH의 구체적인 정식 명칭이 무엇인지, 인체 무해 선전이 허위 과장 광고가 아닌지를 질의했다.
정부는 이 민원을 처리하면서 국민신문고, 보건복지부, 식약청(현 식약처), 국민권익위원회,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권익위, 식약청의 순으로 떠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 5월 10일부터 5월 26일까지 보름 남짓 동안 무려 6번이나 핑퐁을 친 것이다.
이 시민이 가장 먼저 민원을 제기한 곳은 국민신문고였다. 국민신문고는 이를 보건복지부에 답변해주도록 요청했다. 복지부는 "식약청 소관"이라며 이를 다시 식약청에 떠넘겼다, 식약청은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지경부 소관"이라고 했다. 공을 넘겨받은 지경부는 "살균제는 품공법에서 관리하는 안전관리대상공산품에 해당되지 않으며 PGH는 식약청 고시에 들어 있는 성분이므로 식약청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돈 민원은 5월 26일 "질의하신 가습기 살균제는 식품 위생과 관련된 제품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식약청 답변으로 끝맺음이 되었다. 정부 부처끼리 쉴 새 없이 핑퐁 치는 바람에 민원을 제기한 시민도 머리가 어지러웠을 것이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화면에 비친 민원 처리 흐름도를 17일 본 나도 머리가 어지러웠을 정도니 말이다.
이런 민원뿐만 아니라 국정 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예비 조사와 기관 보고 등에서 장, 차관이나 기관장, 그리고 고위 간부 등이 발언한 내용을 보면 한결같이 자신은 책임이 없고 다른 부처 소관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이를 지켜본 예비조사위원, 국회의원 보좌·비서관, 국회의원들은 때론 가슴을 치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6종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세정제로 국가 안전 인증 마크(KC마크)를 내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기술표준원은 "안전은 산자부 책임이 아니다"라는 식의 답변 태도를 보였다. 3·4단계 피해자와 애경 가습기메이트 제품의 원료 성분인 CMIT/MIT의 독성에 대해서는 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폐 손상 조사 위원회가 시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며 민간 전문가 집단에 그 책임을 떠넘겼다.
왜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병을 일찍부터 환경병으로 보고 원인 규명, 독성 시험, 피해자 구제 등을 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에 대해서는 환경보건위원회가 2012년 환경병으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라며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둘러댔다.
유해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로 쓰여 소비자들이 이를 흡입하는데도 관리를 하지 못한 정부 책임을 추궁하거나 '어린아이에게도 안심'이라며 허위 광고를 했는데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직무 유기이며 따라서 이번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는 정부 책임이 분명 있다는 국회의원과 예비조사위원들의 지적에 대해서는 사망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안타깝지만 정부 책임 부분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와 관료들의 이런 태도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핑퐁 치기는 사실상 거의 모든 정부 일과 관련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적어도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국가 재난 내지 사회 재난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관료들이 좀 반성하고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기를 기대했다.
이런 식이라면 오는 29~31일 열릴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에서도 전직 관료와 민간 가해 기업, 전문가 등도 책임 미루기, 발 빼기 식의 핑퐁 답변을 할 가능성이 짙다. 이를 지켜보며 우리 사회의 수준과 국가 수준, 관료 수준, 기업 수준이 정말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그래서 탈리도마이드의 미국 상륙을 막아낸 켈시 박사가 더욱 생각난다.
탈리도마이드 기형아 사건은 1958~1961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전 세계 40여 나라에서 일어난 20세기 최악, 최대의 약화(藥禍) 참사였다. 유럽에서 탈리도마이드가 진정제, 임신부 입덧 완화제로 큰 인기를 끌자 리처드슨-메렐(Richardson-Merrell)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려고 1960년 9월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에 판매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당시 이를 심사한 의사 출신의 약리학자 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Oldham Kelsey)는 탈리도마이드 안전성 자료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판매를 허가하지 않고 계속 서류 보완을 요구했다. 그녀는 FDA에서 오래 근무한 베테랑 심사관이 아니었다. 풋내기 심사관이었다. FDA에 들어와 처음 맡은 것이 탈리도마이드 허가 심사였다.
켈시 때문에 돈 벌 시간이 자꾸만 늦추어지자 리처드슨-메렐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FDA에 압력을 가했다. 그래도 켈시는 1년 이상 안전성 자료 보완을 완강하게 요구하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다행히도 유럽에서 탈리도마이드의 기형 유발이 사회 문제가 됐다. 리처드슨-메렐도 1962년 3월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켈시는 미국에서 영웅이 되었다.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보건의학사에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남겼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우리 한국에서는 켈시 같은 전문가나 공무원이 왜 없었던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유독 물질을 알아차린 전문가와 공무원, 의사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가 시판되는데도 이를 방치한 산업통상자원부나 기술표준원 담당자, 그리고 살균제 성분이 가습기에 쓰이도록 길을 터준 환경부 유독 물질 담당자가 꼼꼼하게만 체크했더라도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켈시가 당시 탈리도마이드의 미국 상륙을 막았던 것은 미국의 뛰어난 법과 제도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가 이 약에 대해 뛰어난 지식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가 원칙으로 삼았던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 생각하는 꼼꼼함이 낳은 위대한 승리였다. 한데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공무원, 기업, 전문가들로만 득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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