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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성장의 한 대자보를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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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성장의 한 대자보를 반박한다" [프레시안 뷰] 청소년을 시민으로
2005년 청소년 단체 주도로 두발 자유 운동이 일어났다. 온라인에서는 두발 자유 서명 운동을 받았고 거리 축제와 시위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몇몇 고등학교 학생회에서는 소규모 캠페인과 집회를 열었다. 나 또한 두발 자유 운동을 하며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거리 캠페인 기획을 하고 노컷 운동 시위 포스터를 붙였다. 거금 10만 원을 엄마에게 빌려 배지 200개를 만들기도 했다.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어른'이었다. 캠페인을 하고 있으면 찾아와 십 분 넘게 훈계하거나 화를 내는 어른도 많았다. 신체에 대한 권리가 학생에게는 없다고 설명하면 '어린 애가 무슨 권리냐'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오죽하면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고 하겠나. 당시 청소년들의 여러 노력 끝에 교육청으로부터 두발 규정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학교마다 학부모, 교사, 학생으로 이루어진 규정위원회를 둬 두발 규정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두발 자유가 아닌 두발자율제였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학교 안에서 토론을 거친 합의가 자율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귀 밑 5cm냐, 6cm냐? 같은 논의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강한 규제와 더 강한 규제 사이에서 선택조차 할 수 없었다

규제보다는 선택, 강요보다는 토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더는 공교육기관에서 교육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로 진학하기로 했다. 입학해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머리카락과 복장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자신의 개성을 담은 모습으로 다녔다. 놀라운 점은 건물 안 흡연실의 존재였다. 이곳의 흡연실에서는 청소년이나 성인이나 할 것 없이 자유롭게 담배를 피운다. 그러나 함께 정한 흡연자의 약속을 지켜야한다. 내용은 이렇다.

1) 담뱃재와 꽁초는 꼭 재떨이에 버린다. 불씨가 남지 않았는지 꼭 확인한다.

2) 재떨이나 바닥에 침 뱉지 않는다.

3) 내 뒤치다꺼리는 내가 한다. 답뱃갑, 종이컵 등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4) 욕설과 소음으로 다른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5) 금연하고 싶지는 않은지 담배 피우기 전에 한 번씩은 생각한다.

6) 자기 담배 자기가 피우고 나누지도 권하지도 않는다.

7) 담배는 지정된 흡연실에서만 한다. (지정된 장소는 2층 흡연실뿐)

흡연실이 만들어질 당시,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모여 만든 약속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흡연실은 더 이상 어른들이 상상하는 불량 학생들의 너구리굴이 아니었다. 조용히 흡연하고 혹시 모를 연기 때문에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장소였다. 흡연실이 있어도 흡연을 하지 않는 청소년, 흡연하는 청소년, 하다가 금연한 청소년 등 다양했으며 선택은 모두 자신의 몫이었다. 그곳에서 청소년이 선택한다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택권을 갈취당하는 청소년

이 경험은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내 옛 기억 속의 '어른'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고(故) 백남기 씨 농성장의 흡연장에 붙은 한 장의 대자보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대자보는 반말로 청소년의 흡연을 문제 삼고 타박하고 있었다. 글의 태도는 불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강압적이었다. 나는 이 문제가 단순한 청소년 흡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흡연자가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런데 며칠 동안 함께 농성장 자리를 지켰던 시민을 향해, 그가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반말을 하고 강압적인 요구를 했다.

물론 담배를 피는 것은 몸에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타인이 그것을 금지시킬 수는 없다. 내 몸이 아니라 남의 몸에 영향을 끼치는 흔한 말로 '길빵' 등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떠한 행위가 불법이 아닌 이상 개인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청소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고(故) 백남기 씨 농성장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사이에는 합의한 사회 구조가 있다. 바로 민주주의다. 동등한 시민으로 구성된 정치 공동체가 함께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청소년은 이런 흐름 바깥에 있는 비시민 혹은 준시민처럼 취급되어 왔다. 선택권을 갈취당해 왔다.

민주주의 운동의 중요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껏 시민권 자체를 배제당해 왔던 약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직접 요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 공동체의 테두리를 넓히는 것이다. 그 테두리에는 당연히 청소년도 들어와야 한다. 두발 자유와 청소년 투표권 연령 낮추기, 학내 민주주의 다시 세우기, 교육 개혁 운동이 다 그 흐름과 맥락을 함께 한다.

청소년을 시민으로


몇몇 사람들은 왜 하필 그곳에서 그런 일을 크게 벌이냐고 핀잔을 건넨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쉬쉬 덮지 않고 토론을 시작하고 합의를 내릴 힘이 한국 사회에 있어야 한다. 농성장 내에서 얼마든지 약속을 합의하는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흡연실 문화, 강압적인 분위기가 흡연실에서 발생했을 때 주변 시민들의 대처법, 농성장 내 서로 다른 세대 간의 예절 등 여러 논의가 오갈 수 있겠다.

청년도 법령과 조례마다 29살에서 35살, 39살 등 청년의 범위가 다르고 농촌에서는 40대까지도 청년이다. 노인은 어떠한가. 50대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서로 어색해지는 시대다. 소년이라는 말 또한, 청년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인 1900년에는 미혼의 남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청년, 노인, 소년 등 나이로 규범 짓는 수많은 단어는 시대상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졌지만, 청소년은 늘 같다. 십 년 전 내가 겪은 청소년 인권 문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낡고 오래된 문제다.

대자보 저격을 받은 당사자 청소년이 쓴 글 하나를 보았다. 그 글에서는 농성장에 있는 여러 시민을 "동지"라고 칭하고 있었다. 현장의 청소년들은 동등한 시민으로서 논의의 장에 낄 준비가 되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답변해야 할 것은 '어른'들이다.

▲ ⓒ프레시안(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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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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