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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 '진실'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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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 '진실'은 있다 ['국가 공작원' 치욕사] '국정원 지적사항.hwp'부터 '제주 해군기지'까지... 차고 넘치는 의혹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여러 기관‧업체가 청문회, 재판 등을 통해 책임 추궁을 받았다.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선사인 청해진 해운, 심지어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까지 소환됐다. 그러나 단 한 곳, 국가정보원만이 화살을 피해갔다. 세월호 도입부터 운영, 참사 인양 과정에까지 국정원과의 연관성이 끝없이 제기됐지만, 쉽게 루머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국정원과 세월호를 엮는 것이 과연 아무런 근거 없는 괴담에 불과할까. 지금까지 나온 국정원과 세월호의 '특수 관계' 의혹의 근거들을 차근차근 짚어본다.

'실소유주' 아니라면서 세월호 직원 휴가까지 꼼꼼 관리

국정원의 세월호 실소유주설(說)이 처음 제기된 것은 참사 후 100일이 지난 2014년 7월 25일, 청해진해운 직원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적사항.hwp' 파일이 발견되면서부터다. 해당 노트북은 여객부사무장 양대홍이 사용한 것으로, 이날보다 한 달 앞선 2014년 6월 24일 선내 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 (☞관련 기사 : 세월호 업무 노트북에 '국정원 문건'이…왜?)

'선내여객구역 작업예정사항'이란 부제로 2013년 2월 27일 최종 수정된 이 문건에는 '천장 칸막이 및 도색 작업', '자판기 설치', '해양안전수칙 CD준비', '침대 등 가구 교체', '화장실 휴지, 물비누 보충' 등 세월호에 대한 상세한 작업 지시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심지어 '3월 휴가계획서 작성제출', '2월선용품 사용현황제출', '2월 작업수당 보고서' 등과 같이 직원 복지와 관련된 보고와 계획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 지적사항은 100가지에 이르렀다.


문건 작성 시기도 미심쩍은 부분이다.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 경 일본에서 사들여와 2013년 2월까지 증개축을 한 뒤, 2013년 3월 15일 첫 출항을 했다. 문건대로라면, 국정원은 세월호 출항 약 보름 전에 세월호 상태를 꼼꼼하게 점검한 것이다.

당시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세월호의 소유주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 내용이라고 할 것이므로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제 소유주이거나 운항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합리적으로 추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아울러 "국정원이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구입, 증개축 그리고 운항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데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100가지의 지적사항은 유관기관 지적사항이거나 세월호 자체의 작업사항으로 보인다", "세월호 관계자가 내부 작업예정사항을 기재하면서 여러 기관이 지적을 하니까 대표적으로 '국정원 지적사항'이라고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양 사무장이 국정원과 관련 없는 점검사항을 한 가지 문서에 섞어 작성했다는, 실무자의 단순 착오라는 얘기다.

국정원은 그러나 사전 보안점검을 실시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100개에 이르는 지적사항 중 15-18번만 국정원의 보안 측정 필요사항으로 언급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해진 내부공문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청해진해운 하드디스크에는 보안 측정과 관련된 여러 문서가 있고 그 가운데 '3.18지적'이라는 문서에 나온 국정원의 지적 사항이 스무 가지에 달했다. △주차장 입구 경비초소내 CCTV 설치(사무실에서 확인용), △전시장, 옥상광장등에도 CCTV추가, △갑판,기관,사주부 모두 시간대별 각 담당구역 순찰 및 일지 작성, △선박내, 브릿지, 기관실등 출입시 명부 작성 후 각 부서장 확인서명, △EXIT등 영어나 일어로만 써 있는 푯말 한글이나 병행표기, △탑승 에스카레이타 출입문 내측 도장 안 됨 등이다.

▲세월호 청문회. ⓒ프레시안(최형락)

"세월 타고 제주 관광"...청해진해운, 국정원 수시로 접대


인천과 제주를 자주 왕복하는 화물기사들 사이에서 국정원과 청해진해운 사이의 관계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화물기사 김동수 씨는 특조위 청문회에 출석하여 "세월호가 처음와서 바로 출항을 안 해서 화물기사들 사이에서는 국정원에서 그 배의 쓰레기통, 전등, 페인트칠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어서 출항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제주도까지 세월호를 타고 관광을 목적으로 왔다 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청문회에서 공개된 이성희 전 청해진해운 제주지역본부장 일기장에는 '국정원 외 10명 세월타고 내려 관광 후 세월타고 가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청문회를 개최한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이에 대해 "접대기록, 영수증, 업무 일지 등에서 보이듯 청해진 해운이 국정원 관계자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수시로 접대했다"고 했다.

또, 사고가 발생하기 한 달 전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세월호에 특실이 아닌 선원실에 머무른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해진해운 내부 공문과 결재 서류에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 등이 적혀 있는데,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이 참사 이전 3년간 최소 12차례 이상의 모임을 가졌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접대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참사 국정원에 최초 보고, 왜?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의 긴밀한 관계는 세월호 참사 당시 오간 연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를 참사 당일 오전 9시44분에 YTN 방송 보도를 통해 처음 인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제가 듣기로는 (국정원이) 전화로 사고 보고를 받았다고 돼 있고, 그 보고는 세월호 선원이 한 것으로 들었다"고 한 것.

당시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공개한 해양경찰청 기관보고에 따르면, 국정원은 9시 44분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세월호 침몰 사실을 파악했다. 참사 당일 오전 9시 28분, 국정원 직원은 해경 본청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원인은 아직 현재 기초적인 것만 확인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원인을 묻는다는 것은, 사고 사실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세월호 침몰 사실을 가장 먼저 보고받은 기관이 국정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은 국정원의 참사 인지 시점에 대해 "청해진해운 측은 사고 직후인 4월 16일 오전 9시10분쯤 국정원에 문자메시지로 사고 사실을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에 최우선으로 보고된 이유는,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 때문이다. 이 문건에 따르면, 세월호는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국정원 제주지부와 인천지부, 해운조합에 보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해양경찰, 인천지방해양항만청,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는 그 다음 순서이다. 민간 회사가 국정원에 직접 사고 사실을 보고토록 한 것은 상식과 동떨어진 일이다.(☞관련 기사 : "2천톤 여객선 17척 중 세월호만 국정원 보고")

국정원은 세월호 보고 계통도에 국정원이 포함된 데 대해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작성·승인에 전혀 관여한 바 없으며, (청해진해운 측이) 선박 테러·피랍사건에 대비하여 포함시켰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국정원 의지와는 무관하게 청해진해운이 임의로 국정원에 보고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당시 해경본청과의 전화 통화에서 유독 사고 원인을 캐묻는다. 위 질문에 해경 측이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만들고 계세요. 바로 좀 도와주시고요. 암초라던데 맞나요?"라고 재차 묻는다. 그러자 해경 측은 "원인 미상이고요. 그냥 침수된 겁니다"라고 답한다. 국정원이 민간 선박의 사고 원인을 다급하게 파악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원은 참사 당일뿐 아니라 다음날까지도 수차례 청해진해운 직원들과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하 씨는 16일 오전 9시 38분(2분 01초)과 10시 23분(14초)에 청해진해운 김재범 기획관리부장과 통화를 했고, 저녁 8시 12분경에도 통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어 다음 날 2시 22분경엔 청해진해운 해무팀의 홍아무개 대리와 47초간 통화한 것으로 나온다. 이후 2시 36분경에는 청해진해운 김아무개 물류팀 차장과 2분 23초간 통화한다. 김 차장은 화물담당자로, 세월호 참사 직후 '화물적재전산시스템'에 접속해 화물량을 180톤 축소 조작한 인물이다.

▲청문회장 바깥에서 피켓 시위 중인 시민들. ⓒ프레시안(서어리)

그 많던 철근이 향한 곳은 제주 해군기지

국정원 직원 하 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과 그 다음날 청해진해운 업체 직원들과 통화한 내용, 목적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정황 증거들이 나왔다.

여객선으로 알려졌던 세월호가 철근과 생수 등 화물 운송에 주력했던 것은 사고 초기부터 세월호 이용객 증언 등을 통해 알려졌던 바다. 세월호는 출항 직전 차량 150대, 화물 657톤을 신고했지만, 실제 배에 실린 차량은 180대, 화물은 1000톤이 넘었다. 이 때문에 세월호 침몰의 주력한 원인으로 과적이 꼽혔다. 그렇다면 과적의 원인으로 지목된 철근의 용처는 무엇일까.

<미디어오늘>은 그 많은 철근이 향한 곳이 바로 제주 해군기지였다고, 복수의 청해진해운 거래처, 제주 소재 업체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혔다. 이 매체는 참사 당일 적재된 일반 화물이 약 1094톤인데, 이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는 410톤이 철근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청해진해운 한 관계자의 말을 통해 "세월호에 실리는 철근은 보통 20%는 다른 곳으로 가고, 80%는 제주 해군 기지로 간다"며 "다만 당일(2014년 4월 15일 화물 적재 당시)은 100% 해군 기지로 가는 것이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 세월호 무리한 출항, 제주 해군기지 가는 철근 때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인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 또한 "(참사 당일) 세월호에 적재된 철근은 명성물류 410톤, 제주선덕통운 16톤(차량 적재) 총 426톤이었다"며 "이 중 278t의 철근은 도착지가 해군기지였다"고 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로 화물을 손해 본 물류회사들이 해수부에 배보상 신청을 한 내용을 집계해 작성된 문서를 토대로 밝힌 내용이다. 세월호에 철근이 실렸고, 이 중엔 제주해군기지 건설용 자재가 포함돼 있다는 의혹이 해수부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철근의 용처가 제주 해군기지로 밝혀지면서, 국정원이 왜 세월호 도입과 운항에 개입했는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해졌다. 미국의 '대 중국 전초기지'인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국정원이 관여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을 나른 화물선인 세월호 또한 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세월호가 침몰 전날 무리하게 출항한 것 또한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국정원이 압박했기 때문이 아닌지도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과 세월호의 특수 관계 의혹은 현재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산하 적폐청산TF 13개 과제 가운데 포함됐다.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 청와대와 더불어 오히려 청와대보다 더욱 성역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서훈 국정원장은 성역 없는 조사를 당부한 바 있다. 적폐청산TF가 수면 아래 가라앉은 진실들을 건져올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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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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