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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 사찰, '진실의 시한폭탄'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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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 사찰, '진실의 시한폭탄' 터진다 [최강욱의 시야비야(是耶非耶)] 진실이 두려운 정권
1979년 10월 26일. 절대권력을 행사하던 박정희가 궁정동에서 비명에 간 후 소위 '채홍사'로 불리던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의 입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박정희의 여성편력 때문이었다. 박선호는 일부 사실을 변호인에게 털어놓고 법정에서도 진실을 밝히려 했으나 김재규가 그의 입을 막았고, 결국 항소심 최후진술을 통해 "여배우 등의 명단을 밝히면 시끄러워지고 궁정동 안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밝히면 세상이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진술하자 재판부가 화급히 범죄사실에 대하여만 말하라며 더 이상의 진술을 저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전두환에게서 정권을 넘겨 받은 노태우는 '5공 비리'를 척결하라는 강력한 여론에 허둥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과거의 잘못을 정리하겠다며 장세동에게 총구를 겨눈다. 장세동은 겁내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라. 내가 링에 올라가 입을 열면 모두가 불행해 진다!"

노태우 시절 황태자로 군림하던 박철언은 1990년 "내가 입을 열면 YS는 끝난다"고 말해 정치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데, 그의 공언은 15년이 지난 후 실현된다.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90년 3당 합당을 전후로 한 시점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서 40억 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영삼 시절에도 이 시리즈는 이어진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여야 정치권에게 로비자금을 살포했으며 그것이 들통나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내가 입을 열면 나라가 들썩거린다"며 간접 협박을 정치권에 해댔었고, 이에 당시의 여야는 "그런 것 받아 먹은 일 없다"고 펄쩍뛰며 모두 목소리를 합하여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심한 근심과 걱정 속에 공허하게 "성역없는 엄정한 수사"를 외쳤으며, 결국 정태수 로비자금과 관련되어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물론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의 아들 "소통령 김현철"까지도 줄줄이 잡혀가는 꼴을 당하게 된다.

"내가 열 받으면 국정운영이 안 된다"는 전직 검찰총장

▲ BH(청와대)지시사항이라고 적혀있는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프레시안
권력을 둘러싼 이런 사건들의 데자뷰는 이번 정권 들어 특히 심하게 계속된다. 김경준, 에리카 김, 한상률, 천신일, 이국철의 입을 막기 위해 갖은 흑막이 펼쳐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급기야 검찰총장을 지낸 김준규까지 언론에 등장했다. 검찰총장 재직 시 이국철 SLS 회장을 만나 점심을 먹은 사실을 기자들에게 해명하면서, "내가 나쁜 일을 했으면 비난 받아야 하지만 (이국철 회장을) 만난 것 가지고 비난받아야 할 일처럼 하면…내가 열 받아서 다 까버리면 국정운영이 안 된다"고 언성을 높였다 한다.

"나를 서운하게 하면 입을 열겠다. 입을 열면 모두 어려워진다. 그러니 나를 달래고 그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라"는 식의 언사가 횡행하는 세상은 불행하다. 진실은 표류하고 정의는 구석으로 처박힌다. 권력자는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여 무리수를 범하기 마련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물론 각종 브로커들이 자신에 대한 신변보장을 요구하며 그간 자신과 거래한 힘 있는 자들에게 늘 쓰는 수법으로서의 협박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권력자를 향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억지로 만들어낸 진실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창출하고, 미래는 소모전 속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권력의 사유화에서 비롯되는 이지러진 모습이다.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증거를 인멸했다는 당사자의 증언이 알려지자 검찰과 청와대의 반응에 시선이 쏠렸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갖은 핑계를 대며 미적거렸다. 어떻게든 외면하며 뭉개고 넘어가려는데 돈봉투까지 등장하니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마지못해 수사에 나서는 모습이 역력한데, 다시 특별수사팀을 꾸려 배후를 밝혀보겠다 한다. 그 진의를 순순히 믿기보다는 어차피 특검을 통해 망신당할 것이 뻔하니, 검찰도 청와대와 사전에 연락하여 수사내용을 조율했다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다시 누군가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고육책으로 수사를 다시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는 추론이 파다하다. 열심히 하겠다면서 장진수 주무관의 소환 일자를 3월 20일로 못 박아 발표한다. 이영호 비서관의 소재는 불문하고 출국금지를 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그럼 그 사이엔 가려진 진실을 밝힐 추가 증거가 인멸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방도가 있는가? 이번에는 현 법무부 장관은 물론 아직 검찰에 근무하는 이들조차 사전 조율을 행한 부분에 대한 조사대상이 되어야 할 터인데 과연 거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결국 이번에도 관련자들을 닥달하여 다시 입을 막고 이영호 비서관을 처리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결국 정권이 교체된 다음에나 특검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뿐, 지금 검찰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부정적 여론이 그치질 않는다.

여전히 김종익 씨를 괴롭히고 있는 검찰


과거 총리실 불법사찰의 전모를 밝힌다며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도 비슷한 현상은 있었다. 사찰이 진행되던 2008년 가을, 검찰은 아무 것도 몰랐다 했다. 2009년 3월 경찰로부터 사찰 내용까지 모두 담긴 사건기록을 송치 받았지만 자신들은 소위 '쥐코 동영상'에 의한 대통령 명예훼손 부분만 입건되었기에 거기에 한정하여 수사한 후, 김종익 씨의 처지를 고려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통해 선처했다며 강변했다. 그 때도 몰랐다고 억지를 부리느라 스스로 경찰의 하부기관이라는 식의 궤변을 구사했다. 체면도 없고 경우도 없는 지극히 유감스러운 설명이었다. 2009년 12월 제기된 헌법소원을 통해 당사자가 사찰에 따른 피해를 강력히 호소하며 지적했을 때에도 검찰이 제출한 답변서에는 그에 관한 어떤 진지한 입장도 없었다. 누구든 범죄사실을 신고할 수 있으니 총리실이 김종익씨의 블로그를 뒤져 찾아낸 동영상을 빌미로 경찰에 수사를 지시한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사찰 사실을 다시 외면한 것이다.

결국 당사자는 자신이 겪은 처참한 피해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하여 나섰다. 국회와 방송을 통해 사찰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난 2010년 6월 말에도 검찰의 입장은 그저 "수사할 수 있는 일인지 검토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범죄자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가며 증거인멸에 나섰고, 총리실의 자체조사라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않은채 조사가 시작된 첫 날부터 과감하게 증거인멸을 자행했다.

이렇듯 검찰은 총리실의 불법사찰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었고 여러차례 진실을 밝힐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증거인멸을 우려할 상황에서 철저한 시간끌기로 일관한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 증거가 인멸되어 더 이상의 배후를 찾아낼 수 없었다고 발표한다. 압수수색이 늦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유감스러운 결과이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수사라는 점은 인정한다는 것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답변이었다.

그런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통해 범죄자들을 기소하고 재판이 진행되어 비난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여당 의원의 수사의뢰가 있었다는 이유로 난데없이 피해자를 다시 털기 시작하였다. 이미 총리실과 경찰의 조사를 통해 혐의가 없다고 드러난 부분을 수개월간 철저히 수사하여 결국 김종익 씨에게 업무상 횡령 혐의라는 올가미를 씌웠다. 1심 재판을 통해 그토록 무리한 수사와 기소는 '공소기각'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과도 없다. 다시 항소하여 피해자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장진수 외 다른 사람들은 아무 '카드'도 들고 있지 않을까?

그런 검찰이, 이제 현직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임할 때 벌어진 조직적 증거인멸에 대하여 수사한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수사를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지 다시 묻고 싶다. 무엇 때문에 권력 핵심부에 대한 수사는 그토록 꺼려 하면서, 국가의 폭력에 철저히 희생당한 이에게는 그토록 잔인하고 가혹한 짓을 계속하는지 알고 싶다. 그 와중에 터져나온 증언이 있다. 고용노사비서관실에 근무하던 최종석 행정관이 검찰조사를 앞두고 부장검사 출신의 김진모 민정 2비서관을 찾아가 "내가 입을 열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자, 김진모 민정2비서관이 검찰 쪽에 전화하여 "어찌하여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항의했다는 사실마저 전해진 것이다.

이쯤되면 이제 초조해야 할 사람이 또 늘어난 듯하다. 보다 높은 위치에서 사찰을 진행하고 증거인멸 과정에 동참한 이들의 진실 토로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구속되어 있던 이인규, 진경락 등에게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임태희 씨가 금일봉을 보냈다는 것은 이런 가능성을 더 높인다. 과연 최말단에서 심부름을 하던 6급 주무관조차 자신의 앞날을 위해 진실을 담보하는 녹음을 하였는데, 다른 이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충성심 하나로 구속과 재판의 초조한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을까?

장 주무관의 전언에 따르면 하드디스크는 삭제되었고 다른 서류들이 많았는데도 빈 상자에 신문지까지 채워가면서도 검찰이 가져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과연 그 문서는 나중을 대비해 누군가에 의해 보관되지 않고 오롯이 파기되었을까? 파기되었다면 또 다른 증거인멸이고, 누군가 보관하고 있다면 압수수색이 시급한 부분이다. 장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이 전달되었다는데 그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으며 구속까지 당한 이들은 그냥 타고난 성실성과 의리만으로 버텼을까? 항소심 판결로 겨우 풀려나온 진경락 과장은 아무런 금전적 도움도 받지 않고 그저 장진수 주무관에게 돈을 전달하는 일만 했을까?

글쎄, 그들도 그간 뭔가 카드를 가지고 자신들의 미래를 둔 협상을 벌였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 추정이라 생각한다. 그야말로 한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끄나풀들 아니었던가. 그들이 그토록 순순히 의리 하나에 목숨을 걸었을까? 하물며 함께 근무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노동부장관을 지냈으므로 인간적 정리로 성의를 표시했다는 임태희 씨의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을 갖고 있는 것인가? 지나가던 소가 그 소릴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직도 이 사람들은 시민을 우매하고 심약한 바보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와대가 앞장서 최종석 행정관에 대한 조사를 최소화하고, 그의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조차 거부했다는 소식은 역시 지금도 누군가 입만 열면 나라가 시끄러워질 일들이 많다는 것을 강력히 추정하게 한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당선 전의 행적부터 당선 후의 각종 사태에 개입한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해 각종 무리수를 범하지 않으면 안되는 권력자의 초조함은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급기야 민정수석실을 통해 5000만 원을 받았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항소심에서도 신분회복이 어려워지자 수억 원을 주겠다며 먼저 전해준 돈이라는 것이다. 전달한 사람은 불법사찰로 구속된 이인규 씨의 후임자였다. 2010년 7월 국무총리실은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을 일으킨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직무 활동이 적법한지를 점검하는 '준법 감시관'을 내부에 배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윤리지원관실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향후 민간인 불법조사 등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공직복무 관리 및 공직기강 확립의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투명한 조직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은 좋았으나 역시 공염불이었다. 임명된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사람이 다시 입막음을 위한 돈 심부름을 했다는 것이니.

진실의 시한폭탄은 터지기 마련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물으면 철저히 부인할 터이다. 하지만 언제 어느 세월인들 부정한 권력이 심복을 통해 내밀하게 불법을 지시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충족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언제 단 한번이라도 겸허한 자세로 순순히 진실을 토로하고 처벌을 자청한 일이 있었던가.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했거늘, 철저히 동향사람을 중심으로 친정체제를 구축하느라 숱한 회전문 인사도 마다하지 않은 정권이 과연 약점에 대한 비밀이 없이 모든 이를 믿고 당당하게 역사 앞에 설 수 있을까. 과연 이 사람들을 공직자라 불러야 할까? 시민의 복리와 안전보다는 철저히 정권의 이득과 안전에만 관심이 쏠려있는 이들을 우린 어떻게 대하는게 옳을까? 이들에게 적법성과 투명성을 외면하게 만든 '강력한 힘'은 어디에 있을까. 뿌리를 찾아내 뽑아내지 않는 한, 나중에 어떤 공직자인들 이런 짓을 다시 하지 않을 거라 믿을 수 있겠는가.

뻔한 사실을 능히 짐작함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을 다물어야 하는 시민들은 답답하다. 그러기에 누구든 입을 열면 나라가 시끄러워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 오늘의 현실은 더욱 한심하다. 스스로 엄선하여 임명한 검찰총장에게서조차 여차하면 불어버리겠다는 언사가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고, 그럼에도 아무런 조치나 해명을 하지 못하는 권력의 말기는 누추하다. 자기들끼린 그토록 안타까운 '인간적 정리'로 거액을 건네면서, 정작 모든 것을 잃은 피해자에겐 손해배상은커녕 사과 한 마디 없다. 국가기관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위한 봉사자여야 한다는 간절한 외침은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과연 누가 먼저 공익의 호루라기를 불 것인가.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진실을 알리는 시한폭탄은 터지기 마련이다.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말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보다 주권자의 의지로 얼마든 가능한 일이다. 제발 누군가 입을 열면 나라가 시끄러워질 상황을 자초하는 세력에게는 더 이상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스스로를 부정한 권력의 잔인한 폭력에서 지켜낼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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