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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후손에게 '뇌에 구멍나는 병'을 물려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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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후손에게 '뇌에 구멍나는 병'을 물려주려는가"

[기고] 美 쇠고기 수입 '선물'은 안 될 말

한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승인이 임박했다. 농림부는 지난 8월 24일부터 9월 3일까지 미국 내 쇠고기 수출 작업자에 대한 현지 조사를 한 번 더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이 현지 조사 결과를 근거로 내주 수입 승인을 선언한다는 것이다.
  
  이런 쇠고기 수입 재개 발표이 미국에게는 오는 6일부터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한미 FTA 3차 협상이나 1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의 '선물'로 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송관욱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이 한 번 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위험을 경고해 왔다. <편집자>

  
  쿠루…광우병…인간광우병
  
  '쿠루(Kuru)'라는 병이 있다. 중추신경계를 침범하여 마비를 일으켜 2년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들에게서만 발견되는 풍토병이었다. 역학조사 결과 원주민들이 종교적 장례의식으로 죽은 자의 뇌를 나누어먹는 풍습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종교의식이 사라진 이후 쿠루도 사라졌다고 한다.
  
  쿠루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질병으로 '크로이츠펠트-야콥병(Creutzfeldt-Jakob disease, CJD)'이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병은 식인 풍습과 무관하게 발병한다. 수 년에서 수십 년의 잠복기를 거친 후 치매와 마비 증상을 유발하며, 발병 뒤 7개월 이내에 거의 100% 사망한다. 무서운 병이지만 100만 명 당 1명 꼴로 발행해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가축에게도 이와 유사한 증상을 유발하는 질병이 있다. 주로 영국 지방의 면양에서 발생하던 '스크래피(scrapie)'라는 병은 200년 이상 양들 사이에서만 발생하던 풍토병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영국에서 젖소의 사료로 양과 소를 재료로 한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1986년 16마리의 소에서 스크래피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병이 발생했음이 처음 보고되었다. 불과 10년 사이에 그 수는 16만 마리로 증가했으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이 바로 광우병이며, 공식 명칭은 '소해면상뇌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이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광우병과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발생했다. 인간광우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1996년 광우병에 걸린 소 때문에 인간이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 vCDJ)'을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했다. 2006년 6월 30일까지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총 183명의 환자가 같은 질병으로 사망했다.
  
  스크래피나 광우병, 인간광우병 등이 갖는 공통점은 발병된 동물이나 사람의 뇌 조직에서 변형된 프리온(prion) 단백질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나 등뼈 조직을 사료로 섭취한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했고,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나 등뼈 조직을 섭취한 사람에게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런 병을 유발하는 변형 프리온은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며 정상 프리온을 변이시키고 뇌 조직을 스펀지처럼 변화시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심각한 점은 이 프리온이 일반적인 조리 과정에서는 사멸되지 않으며, 의료용 소독기로 127°에서 한 시간 이상 가열해도 전염력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한국과 미국, 어찌 그리 닮은 꼴인가
  
  영국과 유럽을 휩쓸고 간 광우병은 미국에서도 발견됐다. 미국은 세계적인 쇠고기 수출국으로 소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동물성 사료를 널리 사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은 수입 쇠고기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에 의존하던 나라이나 2004년 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게 된다.
  
  미국은 광우병에 걸린 소가 캐나다에서 들여온 소였다는 이유를 들어 수입 중단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하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지난 3월 미국에서는 세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다. 이번에도 미국은 광우병 예방 정책을 시행하기 이전에 태어난 소라는 이유를 들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결국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은 서둘러 땅에 묻어버린 죽은 소의 두개골 방사선 사진을 통해 소의 치아 마모 상태로 소의 나이를 추정하여 결론을 도출하려는 웃지 못 할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희극의 한편에는 전 세계 축산과 곡물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해서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8월 4일 미국 의회는 상원의원 31명의 연명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즉각 재개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무산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서신을 노대통령 앞으로 보내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미 FTA는 우리 정부가 먼저 원한 일이라는 정부의 고백이 사실인 것도 같다. 정말 서글픈 일이다. 그토록 자신 없는 물건을 강제로 내다 팔려는 미국 정부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한미 FTA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려는 한국 정부나 어찌 그리 닮은꼴인가.
  
  국민 생명 무너뜨리는 정부를 어찌 할 것인가
  
  광우병은 생태계의 섭리를 거슬러 생산성 향상과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재앙이다. 초식 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그것도 동족의 뼈와 피로 만든 사료를 먹이고, 고기 맛을 좋게 하겠다는 이유로 움직일 틈도 없는 좁은 공간에 가축을 가두어 키우는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생태계의 복수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반성일 것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광우병이 걸리지 않는 소를 만들겠다는 몽상이 아니라, 자연이 준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할 때인 것이다. 채식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몸과 땅은 하나이니 우리 땅에서 자란 것만 먹자는 주장을 펴는 것도 아니다.
  
  아직 정체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광우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 건너 이역만리에서 뇌 조직 검사까지 해가며 안전하지 않은 소를 수입해다 먹을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우리 후손들에게 뇌에 구멍이 나는 병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 민중의 건강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강대국과 다국적기업의 횡포를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안전에 대한 불감증을 강요하는 강대국과, 이에 맞장구치는 정부의 원칙 없는 대응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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