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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얼굴마담, 교황청 주인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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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얼굴마담, 교황청 주인은 따로 있다" [분석]"교황청,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과 유사"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례적인 '생전 사임'을 선언한 것을 계기로 '교황청의 부패'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지난 17일 <워싱턴포스트>는 교황의 사임이 '부패 개혁'의 좌절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으로 이 문제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교황청 내부에서 비자금 조성을 위한 '가격 부풀리기' 거래나 돈세탁 등이 비일비재하고, 이런 부패를 개혁하려다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일단 <워싱턴포스트>도 <뉴욕타임스>에 이어 "나이와 건강 문제로 사임한다"는 교황의 말을 믿지 못하고, 내부 문제에서 진짜 이유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교황청의 부패가 교황청을 장악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추기경들을 중심으로 고착화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교황청은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과 다름없다"면서 교황의 사임이 부패와의 싸움이 아니라, 내부 권력 투쟁의 산물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만일 마피아 조직에서 내부 특정 세력이 돈세탁을 했다고 다른 파벌이 이를 '부패행위'라고 지적하면서 공격한다면 그것이 '세력 다툼'이지 '개혁'을 위한 진정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 이달말 물러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7일 삼종기도에서 "교회는 모든 신자가 거듭나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스스로 거듭날 수 있는 조직인가 의문이 커지고 있다. ⓒAP=연합

교황 사임 이유, '바티리크스'가 말해준다

실제로 교황청에 대해 정통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을 부른 결정적인 계기는 이른바 '바티리크스'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바티리크스'는 교황청(바티칸)의 비밀이 폭로된 사건이다.
세계적인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의 폭로 중 가장 유명한 미국 국무부 기밀문서 폭로는 브래들리 매닝이라는 육군 일병이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에게 전달하면서 이뤄졌다. '바티리크스'에서 매닝의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교황의 집사인 파올로 가브리엘레다.

가브리엘레는 교황이 폐기하라고 준 비밀문서들을 보관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서 이탈리아의 탐사보도 기자 잔루이지 누치에게 전달했다. 누치는 이 비밀문서를 토대로 <교황 성하 :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비밀편지>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지난해 5월18일 출간 즉시 폭발적인 관심을 끌면서 상당한 기간 이탈리아 서점계의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교황 비밀편지 폭로한 집사, 즉각 '사면'

가브리엘레는 자치권을 가진 교황청 사법당국에 의해 '문서 절도죄' 등 최대 8년형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해 10월 최종 형량이 18개월로 대폭 축소된 뒤 불과 2개월 뒤에 교황에 의해 사면됐다. 교황은 왜 자신의 비밀편지를 폭로한 집사를 이렇게 '즉각' 사면해줄 수밖에 없었을까?

<워싱턴포스트>는 "교황의 비밀편지에는 파벌간의 경쟁, 배신, 부패, 구조적 모순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교황의 일상을 돌보는 집사 가브리엘레는 교황이 파기하라고 주는 비밀편지들 중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문서들을 파기하지 않고 보관했다. 특히 가브리엘레가 폭로한 비밀편지들에는 2011년부터 시작된 교황 반대파의 교황파에 대한 음해공작과 이에 항의하는 교황파의 입장이 담겨있었다.

편지에는 교황청의 2인자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파에 의해 밀려난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가 "베르토네, 당신은 교황이 추진하는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내용도 있었다.

또한 비가노의 편지에는 베르토네가 자신을 추기경으로 승진시켜주겠다고 한 약속을 깨고, 주미대사로 교황청 밖으로 밀어냈다는 내용도 있었다. 승진 형식으로 권력 주변에서 멀어지게 하는 전형적인 인사 조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세속 기업과 다름없는 부패 수법들

비가노 대주교는 이런 편지들의 사본을 교황에게 보냈다. 나아가 비가노는 바티칸의 금기어 '부패'를 거론한 편지도 교황에게 직접 써서 보내기도 했다.

비가노가 거론한 '부패' 수법은 세속의 기업들이 비자금 조성에 쓰는 수법과 다를 게 없었다. 외부와의 계약사업에서 시장가격의 두 배를 책정해서 돈을 빼돌리거나, 교회 행사비 등을 빼먹는 것이다. 교황청 국무장관이 지배하는 바티칸 은행은 돈세탁으로 돈을 벌었다.

교황은 베르토네의 전횡에 속수무책이었다. 비가노 대주교는 "교황은 어둠에 갇혀있다"면서 교황의 무능력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집사 가브리엘레는 비가노 주교의 탄식에 동조하면서 교황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내부고발자' 역할을 자임했다.

"교황청 내에 악과 부패 만연"

가브리엘레는 "교회청 내의 악과 부패가 만연돼 있는 것을 목도하고, 정신적으로 무너졌고, 더 이상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교황의 집사로서 비밀편지를 폭로하게 된 동기를 바티칸의 조사 과정에서 이렇게 밝혔다.

가브리엘레는 "언론들 통해 충격이 가해지면 교회가 정상궤도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차기 교황이 누가 되든, 본래의 조직관리에는 관심이 없고 파벌 싸움과 이탈리아식 정치에 몰두하고, 개혁에 적대적인 노인들의 정치조직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자정능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교황청의 조직이라는 것이다.

교황청의 한 고위 관료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교황청의 문제는 소통의 위기가 아니라, 조직 관리 자체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것이 교황청의 주류들은 전세계 교구에서 사제들에 의해 벌어진 어린이 성폭력이 자행될 수 있는 토양을 바꾸려는 교황의 노력을 끈질기게 반대한 일이다.

교황, 배신자의 사표 반려하고 먼저 물러나

교황은 성폭력 문제를 내부에서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지만, 사실상 은폐에 동조한 모습을 보이다가 외부의 거듭된 폭로로 결국 공개 사과를 하는 망신을 자초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료는 "교황청은 그 자체가 스스로 굴러가는 생명체"라고 표현하면서 "신도들과 직접 접촉하는 사제들의 보상은 인간적인 것이라면, 교황청 관료들의 보상은 관료적 권력이며, 이것이 완전히 비생산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워싱턴포스트>는 "교황 비밀편지를 폭로한 의도가 베르토네를 축출하는 것이었다면, 그 노력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전세계 천주교를 대표하는 위상을 지녔을 뿐, 현재로서는 베르토네가 교황청의 일상을 지배하는 사조직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에 취임한 이듬해인 2006년 오랜 측근이었던 베르토네를 2인자 자리인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이후 베르토네는 이탈리아 출신의 충성파들을 추기경으로 대거 승진시켰다.

베르토네는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을 문제삼아 이를 조사하려는 교황의 노력도 좌절시켰다. 한마디로 측근의 배신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베르토네가 교황과의 갈등으로 사임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교황이 베르토네의 사표를 반려하고, 교황이 먼저 물러났다는 점이다.

교황청 내부의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도 "개혁한다고 하던 교황이 먼저 물러나게 될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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