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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의 중심'에서 '반(反) MB'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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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의 중심'에서 '반(反) MB'를 외치다 [질주] "어쩌면 우리가 너무 빨리 절망한 건 아닐까?"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르포작가 이선옥씨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새벽 5시, 부지런한 단원들이 벌써 일어나 노곤한 잠을 깨운다. 제대로 된 잠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지역의 조합원들에게 질주단의 장기투쟁 노동자들은 농성천막에 비하면 여기는 궁전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시멘트 바닥에서 침낭에 몸을 눕히고 잔 터라 얼굴들이 푸석하다. 눈을 감아 본 적은 있어도 떠 본 적은 거의 없는 이 마의 시간대에 벌써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질주단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 가야 할 곳은 대구지역의 건설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이다. 3개 조로 나누어 방문했는데 필자가 따라 간 곳은 진천동의 계룡리슈빌 아파트 공사현장이었다. 6시 30분쯤 되었을까, 노동자들이 하나 둘씩 일터를 향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 계룡리슈빌은 2008년 9월 교섭을 거부하는 회사에 맞서 40일 동안 전면 파업을 벌인 곳이다. 짓고 있던 아파트 여러 동 가운데 3개 동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인 끝에 전원 복직과 단협 준수 약속을 얻었다. ⓒ질주

계룡리슈빌은 2008년 9월 교섭을 거부하는 회사에 맞서 40일 동안 전면 파업을 벌인 곳이다. 짓고 있던 아파트 여러 동 가운데 3개 동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인 끝에 전원 복직과 단협 준수 약속을 얻었다. 파업기간 동안의 임금도 모두 돌려받았다. 그런 싸움 덕에 건설 현장에서 드물게 8시간 노동이 지켜지고, 직접고용 조합원들이 현장 안에 무시못할 힘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 현장의 싸움이 이기면서 대구 시내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나아졌다고 한다.

선전물을 돌리는 질주단 옆으로 리슈빌 조합원들이 함께 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100여 명 넘는 노동자들 가운데 직접 고용 상태로 있는 20명 남짓한 조합원들이다. 노조가 이긴 후, 오전 7시에 정확히 일을 시작하고 오후 5시면 정확히 퇴근한다. 정해진 노동시간에 출퇴근 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는 40일 동안 파업을 벌여야 겨우 얻어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법하도급이다. 사회에서도 워낙 지탄받은 일이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2008년 1월부터 없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일터에서는 하도급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요즘은 도급업체를 통해 들어오는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건설현장 인력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 공사의 경우 기술이 복잡한 지하층을 제외하고 층별로 똑같은 작업이 단순 반복되는 지상층은 이주노동자들이 작업을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 더 적은 돈을 받고도 더 많은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자신들의 노동 강도가 세지고 일자리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노조에게 이주노동자 문제는 늘 '현안'이다.

현장대표와 직고용팀 팀장을 맡은 간부, 건설노조의 간부들 모두 이주노동자 문제를 묻는 질문에 무척 곤혹스러워 했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 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차별을 없애야 하지만, 막상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조합원들이 당장 자신들의 고용을 위협하는 그들을 쫓아내라고 노조에 와서 소란을 피우기도 한단다. 지역의 동지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을 잘 알고 있다고 답한 건설노조의 간부는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자신들을 조금만 더 지켜봐달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도, 건설노동자들이 처한 현실도 모두 안타깝기만 하다. 한창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 동들 사이에서 40일 동안 점거했던 3개 동을 보니 유난히 키가 작다. 정당한 요구를 위해 싸우느라 키가 낮아진 저 3개 동처럼 비록 더딘 걸음일지언정 바른 걸음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달서구에 있는 성서공단노조다. 입주 기업이 2500개에 노동자만 해도 6만 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 공단인데, 대부분 50명 미만의 중소영세하청사업장들이라고 한다. 공단을 통째로 노조로 묶었다니 참 대단한 이름이다 했더니 공단교섭이라는 큰 지향을 가지고 만든 노조라며 웃는다. 지금 조합원은 70여 명이다. 금속노조에 소속된 조합원 60명을 합해 이 성서공단 안에 노조로 조직된 조합원은 130명밖에 되지 않는다. 상근자 5명이 이주노동자와 여성과 고령층 등 공단 안에서도 약자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조직사업을 하고 있다. 70명 조합비로 어떻게 상근자 5명 임금을 주느냐고 했더니 후원회원과 재정사업 등으로 월 50만원을 받고 있는데 이마저 체불상태란다.

▲자신들이 조직하려는 대상보다 더 열악한 현실에서도 이 일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어린 시다들에게 자신의 배를 곯아가며 풀빵을 사 먹였던 전태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선서공단 식당에서의 선전전 모습. ⓒ질주

자신들이 조직하려는 대상보다 더 열악한 현실에서도 이 일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어린 시다들에게 자신의 배를 곯아가며 풀빵을 사 먹였던 전태일 같은 마음이 아닐까. 둘러보면 전태일 정신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성서공단노조에서는 질주단이 합류한 덕에 오랜만에 큰 선전전을 벌였다는데 워낙 한산한 공단인지라 조금은 김빠진 선전전을 마치고 시청 앞에서 1년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회복지시설 대구 애활원 해고자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애활원은 애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대구 지역의 복지시설이다. 이곳의 원장은 공금횡령과 아동 성폭력 혐의로 고발되었다. 생활복지사와 직업훈련원의 생활교사들 5명이 노조를 결성하면서 성폭력·비리 재단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얻어낸 성과다. 그러나 사회의 대표약자인 시설 보호아동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이들은 오히려 해고를 당했다. 지금은 5명 조합원 가운데 2명만이 남아 싸우고 있다. 이틀 전 시청 앞에 장애차별 철폐를 위해 천막농성을 시작한 장애인들에게 1년 동안 싸웠던 자리를 내주고 자신들은 시의회 앞으로 천막농성 자리를 옮긴 애활원 조합원들에게, 농성을 시작한 장애인 한 분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라"고 "애활복지문제 해결을 위해 꼭 노력하자"고 결의를 다진다.

▲ 사회의 대표약자인 시설 보호아동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이들은 오히려 해고를 당했다. 지금은 5명 조합원 가운데 2명만이 남아 싸우고 있다. ⓒ질주

애활원 집회를 마치고 자리를 옮긴 곳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전국 동시다발로 열리고 있는 '노동자건강권 쟁취'를 위한 민주노총의 집회장이다. 대구경북지역에서 모인 노동자들이 산재법의 개악을 규탄하고 MB악법 철폐를 위해 목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집회를 마치자마자 질주 시작 후 처음으로 시내 자전거 행진을 했다. 목적지는 대구지방노동청과 경북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열리고 있는 수성 레미콘 해고자들의 집회장이다. 현안 사업장들을 좇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다.

민주노총의 집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노동청 앞 집회를 벌이고 있는 곳은 수성레미콘이 소속된 대구지역일반노조였다. 작년 4월 25일 수성레미콘 노동자들이 지역일반노조에 가입한 후 수성자본은 해고와 징계, 고소 고발을 남발하며 노동자들을 탄압해왔다. 운송료를 지급하지 않아 운송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오히려 생계가 막막한 조합원들에게 운송거부는 집단행동이라며 손배, 가압류를 거는 잔인한 자본. 노동자를 위하라고 만들어 놓은 노동청과 노동위원회가 노동자들의 규탄 대상이 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 세계 11위 경제대국 한국의 부끄러운 뒷모습이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일정,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동대구역 앞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질주에 참가한 네티즌 연대 '함께 맞는 비'의 한 단원은 "광화문을 뒤덮었던 백만 촛불은 작은 촛불로 시작했다. 지금 비록 작은 촛불이지만 다시 촛불을 들자"고 했고, 살인 등록금에 죽어난다는 학생은 으리으리한 건물을 올리느라 학생 등록금은 뒷전인 대학자본을 규탄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실천단은 흥겨운 몸짓으로 자리의 흥을 돋웠고, 비정규직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직장인들의 노래 모임 '내가 그린'은 잔잔하고 따뜻한 노래로 자리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은 오늘만 벌써 4번 째 만나는 '좋은 친구들'이다. 다양한 발언들과 노래들, 공연들을 보고 있자니 꼭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온 것 같다.

숨차게 달린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새벽부터 밤까지 꼬박 6곳에 집회와 선전전을 다녔다. 우리는 하루지만 지역의 노동자들은 이런 투쟁이 일상일 것이다. 새벽에 눈을 떠 늦은 밤 눈을 감을 때 까지 대구 곳곳에서는 노동자들과 사회의 약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우고 있다. TK의 중심에서 MB심판을 외치는데도 오히려 박수쳐 주는 시민들을 보며 어쩌면 우리가 너무 빨리 절망한 게 아닐까, 빨리 포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어느 곳에선가 인간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우리 다시 한 번 촛불을 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질주하는 사람들 "한 번 좋은 친구들은 영원히 좋은 친구들"

오늘 하루만 네 번, 가는 곳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하루 종일 이어진 공연으로 지칠 법도 한데 여전히 씩씩하고 흥겨운 박경아, 임정득, 이형우, 정구현 네 분 노래운동가와 얘기하며 내내 즐거웠다. 4인 4색이면서 4인 1색인 이들, '계급'이란 단어를 참 오랜만에, 참 기분 좋게 들어본 인터뷰였다.

- 꽤 오랫동안 활동한 걸로 안다.

94년에 정식으로 창단했으니 벌써 15년 됐다. 대표인 나(정구현)는 스물 넷에 시작했으니 정말 청춘을 다 바친 셈이다.

- 무대에서 작업복을 입고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다. 노동자계급의 노래를 부르는 노래패가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했고,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믿음이 있다. 우유배달, 신문배달, 과외, 아르바이트로 각자 생계를 이어가며 지금까지 계속 노래운동을 하는 것도 이런 원칙과 믿음 때문이다.

▲ 사진 왼쪽부터 '좋은 친구들'의 정구현 대표, 이형우, 임정득, 박경아 씨.ⓒ질주

- 노동문화, 집회문화가 대중과 동떨어지고 획일화 되었다는 비판들이 많은데 여전히 강하다.

90년대에는 정규직 대형 사업장에 공연을 주로 다녔다. 집회도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대회가 많았고, 그 집회의 투쟁열기를 끌어올리는 게 우리의 임무였다. 당연히 강하고 힘찬 투쟁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까 성서공단에서 보셨던 자투리 공연을 8년째 이어가고 있다. 관객은 적어도 그런 작은 공연들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다양성과 변화야말로 우리 문화운동가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표현하는 문화를 조합원들에게 누리도록 해야 할 노동조합의 문화는 과연 바뀌었는가 묻고 싶다. 노동문화는 노동조합문화와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

-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지지난주에 용산에 다녀왔다. 서울에 한 번 가려면 4명이 움직이는 경비도 만만치 않아 어렵다. 예전에 대기업노조 대의원 대회 공연이 재정에 큰 보탬이 됐는데(웃음), 요즘은 대중가수를 부르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어쨌든 용산을 다녀와서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던 짐을 던 느낌이다.

- 늘 강해 보이는데 노래 부르다 울기도 하나?

잘 운다. 열사 투쟁에서도 울고, 특히 임정득은 프로답지 못하게(웃음) 많이 운다. 하지만 무대에서 울지 않아도 우리도 속으로는 다 운다.

- 좋은 친구들은 언제까지 계속되나?

한번 좋은 친구들은 영원히 좋은 친구들이다. 노래운동의 전반적인 흐름과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름이 바뀔 수도 있고 형식이 바뀔 수도 있지만, 노동자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노래, 감동을 줄 수 있는 노래, 감동이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려는 우리의 원칙이 있는 한 '좋은 친구들'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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