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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들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면…" [질주] 구미의 날개 잃은 천사들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불안전노동철폐연대,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르포작가 이선옥 씨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질주 셋째 날, 오늘은 구미다. 코오롱에서 해고되어 지금 5년 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해고자들의 출근 선전전에 함께 하기 위해 숙소인 대구에서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구미공단 코오롱 공장 앞에는 벌써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섰는 해고자들이 보인다. 코오롱 해고자들은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하는 곳이다. 저런 데도 있는데 우리는 아직 괜찮지 않느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곳, 그곳이 바로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정투위)'다.

▲ 코오롱 해고자들은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하는 곳이다. 저런 데도 있는데 우리는 아직 괜찮지 않느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곳, 그곳이 바로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정투위)'다. ⓒ질주

코오롱 정투위는 2005년 2월 21일 구미 코오롱 공장이 78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면서 해고자 가운데 50명이 만든 조직이다. 5년 째 이어지는 투쟁으로 많이 떠나고 지금은 29명이 남아 정투위를 끌어가고 있다. 그마저 23명은 생계를 위해 일하며 정투위에 기금을 내고, 나머지 6명만이 사무실도 없이 떠돌며 투쟁을 하고 있다. 코오롱 노동자들의 싸움은 처절했다. 해고자 신분으로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최일배 정투위 위원장은 2006년에 회장 자택에 침입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고, 해고자들과 함께 단식, 송전탑농성, 점거, 재판 등 안 해본 투쟁 없이 모든 걸 다 시도했다.

선전물도 하나 없이 왕복 8차선 대로변에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해고자들 곁을 너무도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조합원들을 보자니 씁쓸할 따름이다. 대형 출근버스는 계속 들어가고 승용차도 이어지는데 아는 척 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광경. 그래도 한 때 같은 일터에서 정을 나눈 동료들인데 너무 매정하다 싶었더니 조합원들의 그런 반응엔 다 이유가 있었다. 회사가 해고자의 상가에 간 조합원에게 지시불이행이라며 징계위원회 출두를 명령하고, 출퇴근할 때 해고자와 인사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라는 등 철저히 감시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본은 인간에게 '마음'이란 게 없어지도록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내서라도 그 방법을 살 것이다. 정도, 아픔도, 연민도 모르는 기계로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면 좋으련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울 것인가. 인간의 역할을 완벽히 대신할 기계를 만들지 못한 탓에 자본이 찾은 방법이 바로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것이다. 동료가 상을 당해도 슬픔 따위 나누지 말 것, 17년 동안 함께 일한 동료가 해고되어 아침마다 눈물겨운 복직싸움을 해도 모른 척 할 것, 손 잡아서 체온 전하는 일 따위 하지 말 것, 옆 사람 몰래 눈인사 같은 거 나누지 말 것, 행여 옆 사람이 눈인사를 하거든 바로 신고할 것. 안 하면 눈인사 한 사람, 보고도 신고 안 한 사람 모두 '사람'으로 간주해서 해고할 것. 기계로 살면 해고당하지 않을 것이요, 사람으로 살고자 하면 바로 해고다. 자본은 생계와 해고를 무기로 공장 안의 사람을 기계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공장 담 밖의 해고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노래방 도우미와 잘 놀지 못한다고 해고하고, 식당에서 밥 많이 먹는다고 해고하는(믿기지 않겠지만 진짜 이런 소리를 듣고 해고당한 조합원이 있다) 해고 제조업 코오롱 자본에 맞서, '마음' 하나 달랑 가지고 맞섰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마음, 일터로 돌아가 동료들과 정 나누면서 살고 싶은 마음, 인간을 기계처럼 부리다 마구 해고해 버리는 자본가들에게 이 세상을 맡길 수 없다는 마음, 그 '마음'이 지난 5년 동안 벌인 싸움에서 이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다.

한국합섬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간담회를 하기 위해 찾은 한국합섬 공장은 가동이 되지 않아 을씨년스러웠다. 벌써 3년 1개월째란다. 한국합섬은 한 때 공단에서 제일 잘 나가는 노동조합이 있던 기업이다. 경영능력도 없는 자본이 조합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면서 정리해고 반대 싸움이 시작되었고, 복직도 쟁취했으나 결국 경영진의 무능으로 자본이 파산을 했다. 법정관리 신청이 기각되면서 공장에 대한 인수합병이 진행되고 있다. 조합원들의 체불임금 채권만 300억에 달한다. 지금 한국합섬의 노동조합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위원들이 평의회 형태로 조합을 꾸려가고 있다. 어떻게든 공장을 다시 가동시켜 조합원들을 일하게 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목표다.

▲한국합섬 공장은 가동이 되지 않아 을씨년스러웠다. 벌써 3년 1개월째란다. ⓒ질주

2005년 전만 해도 한국합섬노조는 구미지역에서 유명한 민주노조 사업장이었다. 이들은 2004년도에 제조업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4조 3교대를 따냈고, 같은 해 단협안에 비정규직의 직고용을 못 박았다. 그런데 당장 시행이 어렵다는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1년 유예기간을 갖기로 한 게 화근이었다. 회사는 경영난을 이유로 2005년 말부터 조합원 350명을 정리해고 했다. 이들은 파업을 벌였고, 구사대와 용역깡패의 폭력을 이겨내며 공장을 지켰다. 정리해고자도 전원 복직시켰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못을 박았다. 2006년 공장가동을 전제로 한 합의 후 일을 다시 시작했으나 곧 파산이 되고 만다.

나는 5일 동안 파업을 벌여 비정규직의 직고용을 쟁취한 정규직 노조의 싸움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했다. 정규직화 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현안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노동자로서 원칙 때문이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파업을 했는지를 물었다. 비대위원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노동자로서 원칙 때문이다." 비정규직들이 대부분 60, 70대 어르신들이라 스스로 투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싸우고 정규직 노조가 연대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도저히 싸울 수 없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정규직 노조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들은 2003년부터 꾸준히 정규직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최소한 우리 공장만큼은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같은 노동자로서 차별 받는 노동자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파업을 벌였고, 결국 단협에 다음과 같은 조항을 삽입했다.

제80조 (사내 비정규직노동자 처우)
1. 사내 하청 도급노동자 중 채용 결격 사유가 없는 자는 2005년 12월 31일까지 직접고용하며, 근로기준법 및 사규를 적용한다. (단 사내 하청 도급노동자를 직접고용 전환을 이유로 임금을 저하시킬 수 없으며,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하도급 계약만료를 이유로 고용관계를 종료 할 수 없다.)
3. 회사는 직접고용 노동자 외 외주, 하도급 노동자 및 불법파견 노동자 등 어떠한 형태의 비정규직도 사내 근로케 하여서는 아니 된다.


"내 공장에 어떠한 형태의 비정규직도 사내 근로케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단협안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마음이 찡했다. 자본가보다 더 잔인한 정규직노조 때문에 분노하는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에, 그 글귀에 담긴 한국합섬 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심이 너무도 고마웠다. 누가 노조를 두고 제 밥그릇만 챙기는 경제동물이라 하는가. 내 눈에는 이들이야말로 천사로 보였다.

코오롱의 정투위 또한 코오롱의 물산업 민영화 사업 시도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리해고와 물 민영화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경찰서에서 조사도 받았지만 이들의 의지는 단호하다. 우리가 코오롱의 해고자가 아닌 시민이었어도 물 민영화 반대 싸움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 코오롱 노동자들이 만드는 건 옷이지만 옷은 비싸면 싼 옷 입으면 되지만 물은 그렇지 않다. 먹지 않으면 죽는 생명줄이다. 그런 물을 자본의 논리로 만든다는 것은 국민들의 목숨을 돈으로 흔드는 것이다. 그게 어째서 우리가 싸울 이유가 되지 않는가.

무능한 자본을 만난 탓에, 잔인한 자본을 만난 탓에, 날개 꺾여 날지 못하고 있을 뿐 이들이 천사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오롱 정투위 위원장은 다 죽어버린 구미공단에서 자신들을 위해 대우라이프, KEC, 김천 오웬스의 노동자들이 다달이 2000원씩 월급을 떼어 22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며 연대동지들의 지원이 고맙다고 했다. 죽을 지경인 해고투쟁 중에도 내 이웃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어떤 차별도 용납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버리는 이들. 이들을 위해 다달이 자신의 임금을 떼어 고통을 나누고 있는 또 다른 이들.

이 날개 잃은 천사들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줄 수만 있다면, 다시 날게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게 없으련만. 누가 이들에게 날개를 빼앗았는가. 이제 그만 날고 싶다…날고 싶다.

질주하는 사람들 "예전에 하던 일을 딱 하루만 다시 해보고 싶다"

2학년이었던 아이는 6학년이 되었고 30대였던 조합원은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대기업 정규직 직원이 하루아침에 영세자영업자가 되버린 시간. 지난 5년은 그런 세월이었다. 가만히 정문 앞에 서있으면 내가 왜 저 안에 안 있고 여기에 서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 먹먹하다는 코오롱 정투위의 이경희 해고자를 만났다.

▲가만히 정문 앞에 서있으면 내가 왜 저 안에 안 있고 여기에 서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 먹먹하다는 코오롱 정투위의 이경희 해고자를 만났다.ⓒ질주
- 생계 일을 하다가 다시 정투위로 복귀했다고 들었다.


2007년 5월에 생계 일을 나갔다. 동대구역에서 생과일주스 가게 점원으로 8개월 동안 일했는데 근무조건이 너무 안 좋아 그만두고 다시 정투위로 돌아왔다.

- 해고자 대부분이 노조활동에 열심인 간부와 조합원들이었다는데?

간부도 아니었고 노조에 적극 가담한 편도 아니었다. 다만 노조에서 하는 일은 모두 따랐다. 하지만 결근, 지각한 번 안 한 성실한 직원이었다. 남편이 어떻게 내가 해고될 수가 있냐고 말할 정도로 직장 일에 소홀한 적이 없다. 상경투쟁 때 유일하게 여성 2명이 따라갔는데 그 중 하나나 나여서 찍힌 것 같다.

- 5년 투쟁이란 어떤 것인가?

물론 힘들다. 하지만 돈에 쪼들려도 마음은 편하다.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움츠리고 사는데 나는 당당하니까. 그래도 가끔 휑한 공장 정문에 서 있으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5년이 다 되었어도 우리보다 어려운 곳들이 많다. 우리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우리 해고될 무렵 금강화섬 투쟁 500일이었다. 우리는 저러지 말자 했는데 이제 우리보고 다른 데서 그런다고 한다(웃음).

- 투쟁 이전과 달라진 점은?

해고 투쟁을 하면서 상부단체나 활동가들이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이란 말을 할 때면 '노동이 뭐가 아름답나, 쌔가 빠지게 일하는 게' 그랬는데, 투쟁을 하면서 그 말을 이해하게 됐다. 서로가 일하면서 따뜻하게 정을 나누는 것, 동료가 아프면 내가 그 일을 대신 해주는 것, 돈은 덜 받더라도 그런 노동을 할 때 행복할 것 같다. 머리 속 인식이 바뀌었다.

- 복직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

우리가 요구하는 게 원직복직인데 나는 부서가 없어져버렸다(웃음). 복직된다면 내가 예전에 하던 일을 정말 딱 하루만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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