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모닝차 만드는 사람들, "'굿'모닝 한 번 해봤으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모닝차 만드는 사람들, "'굿'모닝 한 번 해봤으면…" [질주] 30년 전으로 돌아가버렸다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불안전노동철폐연대,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르포작가 이선옥 씨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질주단의 행진이 오늘로 나흘째다. 청와대에서 시작해 대구의 성서공단→구미의 코오롱과 한국합섬→서산의 동희오토→광주 로케트 밧데리→평택 쌍용자동차, 동우화인캠→부평의 GM대우로 이어질 9박 10일 간의 여정도 벌써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어제 구미에서는 질주 시작하고 처음으로 더운 물을 만났다. 땡볕 아래서 구미시내 선전전을 하고, 시내 곳곳을 자전거로 돌았더니 벌써 얼굴들이 새까맣다. 숙소였던 전교조 경북지부 사무실에 온수와 샤워기가 있어 3일 동안 뒤집어쓰고 다닌 흙먼지와 비바람을 오랜만에 씻어낼 수 있었다. 겨우 머리만 감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씻고 나오는 단원들의 얼굴이 한결 뽀송하다. 거기다 놀이방까지 갖춰진 사무실인지라 여성들은 따뜻한 방에서 푹 잘 수 있었으니 질주 시작하고 처음으로 호사를 누린 밤이다. 아이들을 위해 놀이방을 만들어 놓으니 우리처럼 잘 곳 없는 여성들까지 그 혜택을 누린다. 사회서비스의 기본 원칙은 바로 이런 것이다. 약자를 위한 서비스가 결국 만인을 위한 서비스라는 것.

호사스런 밤을 보내고 어김없이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컵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출발해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서산이다. 서산에 있는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는 이 질주단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동희오토의 이백윤 지회장이 맨 처음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질주를 기획한 사람이고 단장까지 맡기로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정식날인 4월 21일 이백윤 지회장은 박태수 조직부장과 함께 서산경찰서에 덜컥 갇혀 버렸고, 거기다 유치장 안에서 경찰에게 집단으로 폭행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구속과 폭행소식까지 전해들은 질주단은 서산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다잡고 다른 지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지들을 향했다. 동희오토 지회의 이청우 정책부장이, 구속된 이백윤 지회장 대신 단장을 맡아 가는 곳마다 동희오토의 현실을 전했다. 동희오토에서 참가한 단원 3명과 다른 단원들 또한 오늘 서산에 오기만을 벼르던 차였다.

▲ 4월 21일 이백윤 지회장은 박태수 조직부장과 함께 서산경찰서에 덜컥 갇혀 버렸고, 거기다 유치장 안에서 경찰에게 집단으로 폭행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질주
이들은 서산에 오자마자 서산경찰서로 향했다. 유치장에 구속된 이백윤 지회장과 박태수 조직부장은 경찰의 집단폭행에 항의하며 단식 중이었다. 자해할 조짐이 보이는 자 외에는 유치장 안에서는 어떤 이유로도 수갑을 채울 수 없는 게 규정인데, 서산경찰서의 경찰들은 두 사람을 폭행한 뒤 팔을 뒤로 돌려 강제로 수갑을 채우고 목을 짓눌렀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에 제소하겠다고 하니 당당하게 신분증을 보여주며 '제소할테면 해라,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고 큰소리쳤다는 경찰. 이 정권 들어서서 정말 피눈물로 쌓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모두 삼십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두 노동자는 안에 있으니 오히려 더 많이 웃게 된다며 걱정 말라고 동료들을 안심시켰다. 일 벌여놓고 함께 질주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며 유치장의 뿌연 아크릴벽 너머에서 미안한 얼굴을 짓는 지회장에게 '단결' 인사를 하고 바로 규탄집회장인 서산시청 앞으로 향했다. 여전히 이 곳 충남서부에도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업장들이 많았다. 언론에 이름 한 줄이라도 난 적 있는 투쟁은 그나마 알려진 투쟁이다. 그 지역에 가서 직접 당사자들을 만나보기 전에는 전혀 알 길 없는 해고자들이 너무나 많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도 어쨌든 오늘만큼은 동희오토의 해고자들을 위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청 앞 규탄집회를 끝내고 바로 질주단의 자전거 행진이 시작됐다. 질주단은 집회에 참여한 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 서산의 넓은 길을 달리며 선전전을 한 후 검찰청에 이들 폭행경찰들을 고소했다. 가해자 입에서 '어디 한 번 해보라'는 그런 오만한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꼭 처벌되어야 한다.

▲ 질주단은 집회에 참여한 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 서산의 넓은 길을 달리며 선전전을 한 후 검찰청에 이들 폭행경찰들을 고소했다. ⓒ잘주

경찰에게 당한 폭력도 분한 마당에 경찰서 앞 규탄집회장에 해고자들이 들고 나온 현수막을 보니 지금 동희오토 하청노동자들이 어떤 세월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노동 강도 완화', '연차사용 자율화: 몸이 아픈 날은 쉬어야 합니다. 연차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 이들은 법에 보장된 휴일도 없이 자본이 시키는 대로 몸이 축나는 줄도 모르고 엄청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근골격계 질환이 대부분이고(진단도 받아보지 못한), 아무리 다쳐도 산재처리를 거의 안 해주기 때문에 머리가 터져 피가 나도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데, 이런 일에 한 마디라도 했다간 바로 해고를 당하게 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완성차 공장에서 비정규직만 100% 작업이라는 부끄러운 신화를 만든 곳이 바로 이 동희오토다. 동희오토라는 회사 자체가 현대기아그룹의 하청업체인데, 그 아래 다시 16개 업체를 또 하청으로 두고 차를 만들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모두 재하청 업체들에 다니던 조합원들이며, 이들 업체의 직원은 모두 1년짜리 비정규계약직노동자들이다.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이 부도덕한 고용형태를 유지하는 한 재벌은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2중 3중으로 더해질 수밖에 없다. 구조 자체가 비인간적인 제도, 하청이란 바로 그런 제도다.

▲ 조합원들이 써놓은 작은 항의. ⓒ질주
모터쇼에 가서 차에 선지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해서 언론에 났던 게 바로 이 동희오토 노동자들이다. 오죽했으면 소피를 구해다가 차에 뿌릴 생각까지 했을까. 2008년 기준으로 시급이 3770원. 고등학생 아르바이트 시급보다도 적은 이 돈을 받으며 하루 20시간 넘게 일을 하고 주야간 철야 노동을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1년에 60대를 생산할 때 이들 하청의 하청인 노동자들은 170대를 생산한다. 몸은 벌써 축난 상태다. 밀려드는 주문을 맞추느라 밤낮없이 일하고, 일하는 족족 그 이윤은 고스란히 재벌의 주머니로 들어가 정몽구 회장은 900억을 들여 전용기를 구입한다는데, 1년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자신들이 만든 경차 하나 사기 어려운 이들. 같은 하늘 아래 이 지독한 차별과 부도덕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회에 과연 어떤 희망이 있을까.

동희오토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젊다. 해고자들도 모두 젊은이들이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이기주의자들이라고 비판 받았던 세대가, 이제 초임이 깎이든 말든, 계약직이든 아니든, 하청이든 재하청이든 모든 불이익들마저 다 감수한다. 오로지 나만 일할 수 있다면. 이 철저하게 파편화된 조각들을 모으고, 또 모으기 위해, 이 파편 조각들을 모아 결국 동희오토 공장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오늘도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해고자들은 쉼 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툭하면 폐업신고를 해버리는 자본에 맞서, 자본과 창립일이 같은 어용노조에 맞서,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공권력에 맞서 뛴다. 유치장에서, 농성장에서, 감옥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양심 저 너머에서 이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함께 하자고, 우리가 모두 모이면 그것이 곧 정의가 된다고.

오늘 밤, 서산경찰서 앞에는 기꺼이 정의를 완성할 퍼즐조각이 되고자 전국에서 달려 온 사람들이 동희오토 해고자들을 위해 늦도록 촛불을 들고 있었다.

질주하는 사람들 ④"해고되니 돈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았다"

서산경찰서 앞 규탄집회에서 만도위니아 해고자 한 분이, 남은 건 오기와 분노뿐이고 믿는 건 노조뿐이라고 했다. 장동준 사무부장 역시 같은 말을 했다. 힘들어도 노조가 있어 괜찮다고. 집회준비로 분주한 사무실에서 장동준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사무부장을 만났다.

- 언제 해고되었나?

2005년 11월에 의장반에 입사했다. 수습2개월 후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노조에 가입한 사실이 있다는 이유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한국노총사업장이었는데(웃음). 동희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하고 바로 해고무효싸움을 해서 이겼으나 결국 2006년 11월 재계약을 하지 않아 해고되었다. 10개월 동안 다시 싸운 끝에 2007년 복직되었는데, 2008년 12월에 다시 해고되었다.

- 생계는 어떻게 하나?

실업급여를 받아왔는데 기간이 되면 끝나게 되기 때문에, 장기투쟁해고자들에게 주는 금속노조의 신분보장기금을 바라보고 있다.

▲ 장동준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사무부장. ⓒ잘주
-동희오토의 노조탄압방법은 주로 어떤 것들인가?

한 업체에 조금만 민주노조의 싹이 보여도 바로 폐업신고를 해버린다. 폐업신고를 하고도 공장은 계속 돌아간다. 해고할 대상이 2년 미만이면 계약해지를 하고, 2년 이상자면 폐업을 해버린다. 그러다가 신규공고를 내면서 이전의 싹들은 전부 잘라버리고 다시 신규채용 한다. 노조의 씨를 말리려는 수작이다.

- 조합원은 얼마나 되나?

동희오토 지회 노동자가 대략 900명 정도 된다. 이주노동자도 40%정도를 차지한다. 조합원은 20명이고 이 중 10명이 활동하고 있다. 모두 해고자다. 여성 해고자도 3명 있었으나 생계로 나가기도 했다.

- 대법에서마저 지면 어떻게 할 건가?

법의 판결이 우선이 아니다. 투쟁을 통해 복직하겠다. 이 싸움으로 많은 걸 배웠다. 해고되고 나서 돈이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몇 년을 살아도 이렇게 의리 있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노조가 있고 동지들이 있어 괜찮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