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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비 맞을게 아니라 함께 우산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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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비 맞을게 아니라 함께 우산을 쓰자" [질주] 정부보다 먼저 정규직에게 외치는 말 '함께 살자'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불안전노동철폐연대,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르포작가 이선옥 씨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어젯밤은 쌍용자동차 천막에서 보냈다. 넓은 공장마당에 세워진 투쟁천막 가운데 하나가 질주단의 숙소였다. 낮에 평택시내 자전거 선전전을 한 후 수원으로 갔다가 늦은 밤에 이 곳 숙소로 다시 돌아온 터라 몹시 피곤했다. 늦은 시간, 천막 앞에서 시내 자전거 질주부터 수원역 촛불문화제까지 함께 한 이젠텍 노동조합의 이선자 부분회장이 작별 인사를 한다. 수원역 촛불문화제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 사회자의 호명에 부끄러워하며 토해낸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우리 얘기만 하려면 괜히 생색내고 유난 떠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래서 말을 잘 안하려고 한다. 우리 이젠텍은 쌍용자동차 뒤편에 있는 회산데 노조 만든 이유도 단순했다. 일터가 너무 안전하지 않아서, 너무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대해서 그 이유 하나였다. 50이 넘은 조합원들이 30, 40대 관리자한테 상소리를 들어가며 일하고, 프레스에 양팔이 절단되고, 상반신이 눌려 죽는 곳이 이젠텍이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령노조가 나타났다. 2005년 10월에 우리가 노조를 결성했는데 회사가 2000년부터 이미 노조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뇌출혈로 쓰러진 사람에게 사직서를 강요한 사람이 위원장이었고, 자궁적출수술을 한 여성에게 1주일 안에 나오되, 나와서 아픈 건 본인책임이라는 각서를 쓰게 한 사람이 회계감사였다.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하다가 4명이 해고됐다. 지금 해고자들이 열심히 출근투쟁하고 복직을 위해 뛰고 있다."


양팔이 절단되고, 상반신이 기계에 말려들어가 죽는 얘기를 두고 유난 떤다고 할까봐 미안해서 말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이다. 얼마나 더 처참한 얘기여야 떠들만한 것일까. 고통의 극한선이 자꾸만 높아지는 것 같아 우울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질주 8일째 일정의 시작인 이젠텍 앞 출근선전전에 나섰다. 공장 정문에 한국노총 소속 노조간판이 보인다.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후 갑자기 생긴 노조간판이란다. 해고자 4명을 포함해서 19명 남았다는 조합원들이 출근투쟁을 위해 속속 모여든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조합원들이 많다. 마이크를 잡은 이선자 부분회장 모습이 어제 부끄러워하던 지역집회 때와는 사뭇 다르다. 손짓도 힘차고 목소리도 훨씬 크고 당당하다. 그녀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노동자들에게 호소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저 잔디가 1억5000만 원이다. 노조 만들고 나서 저 잔디를 밟았다는 이유로 7500만 원을 가압류했다. 나는 용접봉도 안주고, 안전화도 안 주는 회사라 무척 가난한 줄 알았다. 그런데 노조 만들었더니 바로 용역경비 고용하고, 요구하지도 않은 탁구대, TV, 당구대 같은 것을 설치했다. 조합원들이 사용할 시간도 없는 것들을 들여놓고 생색내는 회사가 한심하다. 매해 적자라며 최저임금 겨우 넘는 노동자들의 월급마저 안 올려주면서, 사장은 앉은자리에서 주식배당으로 수억을 챙겼다. 우리 적은 인원이지만 꼭 이기겠다."

▲몇 차례나 철거된 이젠텍 노동조합의 사무실. ⓒ질주

삼십분 넘게 선전전을 하다가 곧 출근해야 할 조합원들이 있어 아쉽지만 마쳐야했다. 회사는 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들을 모두 여기저기로 찢어 놓았다. 공장이 3개인데 그렇게 떨어져 있다 보니 현장 활동이 어렵다. 조합원들을 떨어진 공장마다 출근시키려 다시 그녀가 낡은 승합차의 운전대를 잡는다. 한 눈에도 조합원들이 그녀를 얼마나 아끼는지 눈에 보였다. 떡을 챙겨주며 혼자만 먹으라고 살짝 귀엣말을 하고 가는 조합원도 있고, 주머니에 뭔가 챙겨 넣어 주는 조합원도 있다. 조합원들 곁에서 그녀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조합원들은 한결 같이 우리 위원장이랑 해고자들 모두 빨리 복직해야 되는데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그 마음 변치 않고 이들 복직 때까지 잘 버텨주기를 바라며 부평으로 향했다.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 사내하청지회에 도착했다. GM대우 부평공장 서문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었다. 천막 농성 500일이 훌쩍 넘은 이들 역시 금속노조의 대표 장기투쟁 사업장이다. 2007년 10월 30일 비정규직 외주화와 해고 반대,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천막을 친 후 해고자 9명이 지금까지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 GM대우 부평공장 서문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질주

지난 4월 7일 정규직 노조가 회사와 합의한 전환배치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명 가까이 무급순환휴직으로 돌려지고, 5월부터는 휴직이 시작된다고 한다. 정규직의 전환배치는 곧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모두 어렵지만 정규직 살자고 비정규직 희생시키는 건 이제 그만 좀 봤으면 좋겠다. 적어도 민주노조라면 함께 살거나, 함께 죽거나 둘 중 하나여야지 나만 살기 위해 약자를 희생시킨다는 건 어떤 명분이 있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서문 앞 집회장에서 코오롱에서 연봉 5000만 원이 넘었던 정규직 출신 해고자 최일배 정투위 위원장은 스스로 발언을 청해 대우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호소했다.

"오늘 이 자리는 유독 마음이 무겁다. 나는 13년 동안 정규직이었고 입사할 때부터 정규직이 안 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뽑는 걸로 생각했다. 코오롱에 정규직이 1500명일 때 비정규직이 200명이었다. 지금은 비정규직이 1500명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정규직들이 해고되었다가 다시 똑같은 일을 비정규직이 되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몰랐다. 해고되고 5년 투쟁하고 난 후에야 끝없이 비교하고 분열시키는 자본의 생리를 알았다. 오늘 발언은 13년 정규직으로 살면서 부끄러웠던 과거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부디 이 현실을 깨닫고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할 때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비정규직 희생강요 전환배치 반대한다." ⓒ질주

비정규직 해고자 한 분은 쌍용에서 정리해고 발표하니 모든 언론과 운동단체에서 관심을 가져 주는데 우리는 조용히 천 명이 잘려나가도 누구 하나 관심 가져 주지 않아 서럽고 외롭다고 했다. 이미 지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정규직노조가 전환배치 합의를 철회하고 함께 총고용 보장을 위해 싸웠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비정규직 해고 뒤엔 곧 정규직에 대한 해고, 그리고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로 이어진다. 비정규직 100% 사업장, 자본가들에게 꿈의 공장인 '동희오토'가 부평에 또 하나 만들어지려고 하는데, 아직 내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른다. 알고 난 후엔 이미 자신이 해고자나 비정규직 둘 중 하나가 되어 있을 터인데,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자본은 악랄하고 교묘한데, 노동자들은 순진하고 어리석다. 공장 문을 사이에 두고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이 저 안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함께 사는 길이 분명히 있다. 금속노조에서 만든 등 벽보도 '함께 살자'가 큰 주제다. 노동자만 죽이지 말고 '함께 살자'고 정부에 요구하려면, 여기 정규직 노조를 향해 '함께 살자'고 호소하는 비정규직들의 외침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게 순서다.

연대란 우산을 씌워 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이왕이면 함께 우산을 쓰는 연대를 했으면 좋겠다. 비록 드러난 한 쪽 어깨가 좀 젖을지언정 같은 우산 아래 서로의 몸을 의지해서 비를 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대우자동차 정규직 노동조합처럼 알량한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뺏는다는 건, 큰 우산 아래 비를 피하고 있던 사람이, 겨우 머리 하나 가릴 수 있는 약자의 작은 우산마저 빼앗고 장대비 속으로 내모는 것이다. 내가 빼앗아 버린 우산 때문에 맨 몸으로 빗속에 던져져 비를 맞고 있는 비정규직을 보는 마음이 그대, 정규직들인들 편하겠는가.

▲ 내가 빼앗아 버린 우산 때문에 맨 몸으로 빗속에 던져져 비를 맞고 있는 비정규직을 보는 마음이 그대, 정규직들인들 편하겠는가. ⓒ질주
질주하는 사람들 ⑧ : "노조 생긴 뒤, 말 함부로 하는 건 바뀌더라"

이젠텍 분회의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는 공단 안 쪽 인적 드문 곳에서 질주단의 단원 한 분이 네잎 클로버를 몇 개 찾아냈다. 이 싸움을 꼭 이기게 해 줄 거라고 이선자 부분회장에게 건네자 수줍어하며 기념촬영에도 응한다.

▲ 이젠텍 노동조합의 이선자 부분회장. ⓒ질주
- 입사는 언제 했나?


2003년도에 입사해서 2006년도에 해고됐다. 해고되기 전 잔업과 야근을 다 해야 월급 120만 원을 받았다. 비록 해고가 됐어도 늘 조합원들 곁에 있으니 해고자라는 걸 못 느낀다.

- 해고자들의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고 있나?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는 한 달에 총 8만 원이다(웃음). 거기다 우리는 분회기 때문에 분담금은 지회를 통해서 받는다. 회사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아 법원에서 부과한 강제이행금이 있다. 하루에 30만 원씩인데 그걸 받아서 소송비용과 투쟁기금으로 썼다. 해고자들 생계는 어렵다. 워낙 저임금이라 조합원들한테 돈을 걷는 것도 부담이다. 하루 주점이나 빚을 내서 살기도 하고 그렇다.

- 조합원들에게 굉장히 사랑받는 것 같다.

(웃음)우리 모두 사랑한다. 처음에 조합원들이 차별 받고 그런 게 화나고 억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가 생기고 나서 그렇게 함부로 하지는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그런 점에 대해 신뢰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것 같다.

- 노조가 생기고 나서 위험한 사고들이 줄었나?

일단 형식적이지만 안전교육을 한다. 하지만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만 반짝 시늉하고는 도로 제자리다. 관리자들이 말 함부로 하는 것은 확실히 바뀌었다.

- 바라는 게 있다면?

빨리 복직해서 끝났으면 좋겠다. 그래도 조합원들 앞에만 가면 힘이 난다. 서로 힘들어도 안 힘든 척 하고 재미있게 하고 있어서 위로가 된다.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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