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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그야말로 '공포 공화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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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그야말로 '공포 공화국'이었다" [질주] 그대, 혼자가 아니랍니다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불안전노동철폐연대,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르포작가 이선옥 씨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9박 10일 동안 달려온 질주의 마지막 날인 4월 30일 오전 10시, 질주단은 종로의 보신각에 모였다. 혜화로터리 근처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열리는 '재능교육노조 천막노숙농성투쟁 500일 재능자본 규탄대회'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 위해서다.

5월 1일 노동절이면 재능투쟁 500일이다. 재능교육노조의 농성은 원래 천막농성이었다. 그런데 500일을 싸우는 동안 천막은 13차례나 철거를 당했고, 바로 며칠 전에 당한 철거로 지부장과 조합원들은 천막도 없이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여성들만 있는 천막에 갑자기 들이닥친 구청의 철거반원들은 사전 통보나 계고장도 없이 느닷없이 치고 들어왔고, 이를 막아서는 조합원 7명을 경찰과 합동해서 강제 연행했다. 천막농성이 노숙농성으로 바뀐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공교육보다 훨씬 더 아이들에게 밀착된 사교육의 교사, 특히 그 가운데서도 학습지 교사들은 면대 면 교육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일선 교사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허울로만 교사일 뿐 이들이 처한 현실은 여느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권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회사에 고용되어, 회사의 업무지시를 받아 일하면서, 회사에서 주는 임금을 받지만 법은 이들을 자영업자라고 한다. 사소한 업무 한 가지도 이들 '자영업자'들이 회사의 통제를 벗어나 재량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재능교육의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07년 11월 1일, 회사는 일방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고 단체협상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단협상 보장 받은 전임자들도 현장에 복귀하고 삭감된 수수료에 도장을 찍으라고 명령했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이에 응할 수 없었고 회사는 이들에게 해고하겠다고 위협했다. 2007년 12월 21일 이들은 임금삭감과 해고, 노조파괴를 막기 위해 회사 앞에 천막을 쳤다. 그러나 2008년 11월 회사는 결국 단협 해지와 전임자 해제를 일방 통보하고, 12월에는 지부장과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농성천막은 구사대와 구청에 의해 수도 없이 부서졌다. 부수면 또 세우고, 또 부수면 다시 이를 악물고 천막을 세우면서 500일을 버틴 이들에게 조그만 힘이라도 보탤 양으로 질주단은 서울 시내를 달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내 질주는커녕 보신각 앞 도로조차 넘어설 수 없었다. 경찰이 질주단을 둘러싸고 자전거를 막아버린 것이다. 스무 명 남짓한 질주단을 막기 위해 100명도 훨씬 넘는 경찰이 왔다. 막무가내로 단원들을 사진 채증하고, 자전거는 꼼짝도 못하게 둘러싸 근접도 못하게 한다. 시위용품이란다. 하긴 노란 풍선도 시위용품이라고 뺏는 경찰이니 어련하랴 싶다.

▲ "서울에 들어선 후 느낀 점이 서울경찰이 지방경찰보다 훨씬 독하다는 것이다. 지방에서는 자전거 행진을 할 때 나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기도 했고 호위가 없을 때도 최소한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질주

서울에 들어선 후 느낀 점이 서울경찰이 지방경찰보다 훨씬 독하다는 것이다. 지방에서는 자전거 행진을 할 때 나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기도 했고 호위가 없을 때도 최소한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분쇄, MB정권 반대를 외치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으므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한민국은 서울과 지방 딱 두 가지 행정구역으로 나뉜 것 같다. 서울은 그야말로 공포공화국, 공안정국이었다.

한 시간 가량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트럭에 자전거를 다시 싣고 단원들은 흩어져서 재능교육노조의 농성장으로 향했다. 혹여 다시 자전거를 탈까 싶어 경찰차가 자전거트럭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기막히고 어이없고 분했지만 기다리고 있을 재능교육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닿은 혜화동 재능교육노조 노숙농성장에서는 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리 신고한 적법한 집회인데도 음향을 맡고 있는 방송차를 견인한다고 경찰견인차가 들어왔다. 이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은 또 싸워야 했다. 견인차를 겨우 돌려보내자 이번에는 지나가는 시민들이 집회현장을 보지 못하도록 종잇장 주차로 경찰버스들을 집회장 둘레에 갖다 붙였다. 위험천만한 실랑이가 계속 이어졌다. 합법 집회를 방해하지 말라고 학습지노조 위원장과 재능교육 노동자가 계속 경고했지만 경찰의 집회방해는 끝도 없었다. 재능의 사설 경비대처럼 이들은 철거반이 여성조합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돕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7명이나 연행했다. 오늘은 또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합법' 집회마저 버젓이 방해하고 있다.

▲ "재능본사 앞에서 벌인 항의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는 단원들을 경찰이 갑자기 막아섰다. 해산하는 길이라고 수차례 말했으나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참가자 일부를 주택가 벽 쪽으로 막아 둔 채 1시간을 가뒀다." ⓒ질주

혜화경찰서의 행동은 지나치게 격했다. 무언가 의도를 가진 듯 거칠었고 자꾸 시비를 건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재능본사 앞에서 벌인 항의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는 단원들을 경찰이 갑자기 막아섰다. 계란 던지기 퍼포먼스와 재능자본이 버린 쓰레기 투하 퍼포먼스도 마치고 각자 헤어지는 길이었다. 주택가 골목에 갑자기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해산하는 사람들을 막아섰다. 해산하는 길이라고 수차례 말했으나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참가자 일부를 주택가 벽 쪽으로 막아 둔 채 1시간을 가뒀다. 결국 이들 가운데 4명이 강제 연행됐고 질주단원들은 그 중 셋이나 됐다. 곧 혜화경찰서로 항의방문을 갔다. 가는 도중에 연행된 단원들이 송파경찰서로 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전거 행진을 마친 후 출발지였던 청와대 들머리에서 9박 10일 동안의 활동을 보고한 후해단 기자회견을 하려던 처음 계획은 무산됐다.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및 경제위기 고통전가 분쇄를 위한 전국 자전거 대행진 해단 기자회견'은 '전국 자전거 대행진 불법연행 규탄 기자회견'으로 급 변경되었다. 혜화 경찰서 앞에 주저앉아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및 경제위기 고통전가 분쇄를 위한 전국 자전거 대행진 해단 기자회견'은 '전국 자전거 대행진 불법연행 규탄 기자회견'으로 급 변경되었다. " ⓒ질주

기자회견을 빙자한 불법집회를 하고 있으니 모두 연행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들으면서 송경동 시인이 잡아갈테면 잡아가라며 '학살정권 살인정권 이명박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질주단도 모두 잡아가라고 구호를 외쳤다. 그예 연행자를 내고야 마는 경찰. 촛불문화제 때처럼 1인당 얼마라는 연행현상금이 붙었는지 실적 경쟁하듯 노동자를 잡아들이지 못해 안달이다.

송파서에 들러 연행자들을 면회하고 다시 건국대 앞에서 열리는 메이데이 전야제에 참석했다. 어영부영 해단식다운 해단식도 못한 채 우리들의 질주는 그렇게 끝이 났다. 폼 나는 해단식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고, 어쩌면 전원 연행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시작한 질주였지만, 막상 해단식도 못하고 연행자도 생기니 억울하고 힘이 빠진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는다.

9박 10일 동안 전국 수 십 곳을 돌며 확인한 기막힌 현실, 서러운 사연, 목울대를 치고 오르는 분노들을 모으고자 했다. 기막히고 서러운 현실을 이겨내고 있는 더욱 기막힌 연대와 희생과 노력들을 알리고자 했다. 그래서 이제 막 싸움을 시작했거나, 슬슬 지치기 시작한, 혹은 너무 긴 싸움으로 포기하기 직전인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더 많은 곳에, 더 많이 들러서 연대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질주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들보다 더 한 곳도 이렇게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이렇게 기막히게 연대해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혼자가 아니라고, 이 참혹한 현실에서도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은 우리들의 모습이 곧 희망이라고, 절망을 말하기에는 눈에 밟히는 동지들이 너무 많지 않느냐고….

그리고 그들은 질주단의 호소에 답했다.

동지들이 있어 힘들어도 참을 수 있다고. 가진 것 없어도 마음을 나누고, 피붙이보다 더 살가운 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동지들 덕에 외롭지 않다고.

철거민들의 목숨을 빼앗아 지은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자본가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사람 사는 세상. 질주단이 달리고자 했던 '우리의 세상'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바로 우리가 달려온 그 길 곳곳에 있었다.

▲ 질주단의 단체사진. ⓒ질주
질주하는 사람들 ⑩ : "13만 학습지 교사를 위해 포기 못 한다"

재능교육노조 유명자 지부장은 원래 질주단의 단원으로 뛰어야 할 분이었다. 그런데 충남부터 함께 하려고 했다가 덜컥 천막이 뜯기는 바람에 못했고, 평택서 결합하려던 차에 천막이 뜯기고 7명이 연행되는 바람에 또 못했다. 서울에 입성한 후라도 열심히 하려 했는데 그놈의 천막이, 아니 재능자본이 말썽이었다.

▲재능교육노조 유명자 지부장. ⓒ질주
- 투쟁하는 곳에 오니 정권타도 소리가 들린다.


구속 같은 건 두려워하지 않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 모두 연행하면 구치소랑 감옥 가서 모두 싸우면 된다.

- 생계는 어떻게?

투쟁기금 모아서 투쟁하고, 재정사업 같은 것을 해서 겨우 겨우 이어가고 있다. 단협에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주게 되어 있는데 회사가 단협도 파기해 버렸다. 조합비로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어렵다.

- 재능에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2곳이지 않나?

그렇다. 정규직 직원중심인 노조가 서울본부에 직가입되어 있다. 교사들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로 편재되어 서비스연맹 소속이다. 서로 조직도 다르고 연대하기가 힘들다.

- 경찰의 대응이 남다르다.

4월 30일 앞두고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 우리도 들은 이야기인데 서울시내 투쟁사업장 관할 서장들이 연석회의를 해서 각 구청에 협조요청을 했다는 제보다. 구청과 경찰이 합세해서 계속 탄압 일변도로 나오고 있다. 5월, 6월 촛불 등 투쟁을 앞두고 미리 정리하려는 게 아닌가 한다.

- 노숙농성중이라 들었는데?

천막 뜯긴 후 다시 뼈대 치는데 지난 일요일 새벽에 불법 건조물이라고 또 철거당했다. 그래서 노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노숙을 하는 한이 있어도 거점 사수는 꼭 할 것이다.

- 노조활동이 힘들지 않나?

그런 거 많이들 물어본다. 후회 한 적은 없다. 다만 스스로 돌아봤을 때 중간 중간 혹시 투쟁 방향을 잘못 잡아서 나 때문에 이렇게 장기투쟁으로 오지 않았나 하는 자책이 든다. 하지만 이 나라에 사는 이상 투쟁을 접지 못하겠다. 13만 학습지 교사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노조는 포기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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