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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의 선발 붕괴, 김성근 감독 책임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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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화의 선발 붕괴, 김성근 감독 책임은 없나 [베이스볼 Lab.] 감독은 '야구평론가'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자리
요즘 정치권에서는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평론가식’ 화법이 논란이다. 문제의 당사자로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마치 제 3자처럼 남 일 얘기하듯 한다는 지적이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의 공무원 연금개혁 관련 발언이 그런 예다. 박 대통령은 연금개혁안 국회 통과가 무산되자 여러 차례 아쉬움을 나타냈고 국무회의 도중에는 “이것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야당에서는 “국회 통과 무산은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엇박자 때문인데, 당사자인 대통령이 갈등을 푸는 대신 마치 정치평론가처럼 말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에 대해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최 부총리는 최근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호평하며 “뛰어가는 일본, 기어가는 한국”이라는 발언을 했다. 비슷한 정책을 시도한 한국이 일본에 비해 경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로는 “국회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발목을 잡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비판적인 진영에서는 “경제사령탑인 부총리가 마치 경제평론가처럼 제 3자의 시각에서 말하고 있다” “국회 탓을 하지만 본인도 국회의원 신분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경제수장이 할 일은 한국 경제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비슷한 화법을 야구에서도 볼 수 있다. 26일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감독이든 선발야구를 하고 싶다. 나도 마찬가지”라며 “선발이 7회까지는 버텨줘야 한다”고 했다. 한화의 취약한 선발 투수진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이날 한화 선발투수 송은범은 3이닝 동안 7피안타 4실점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한화는 KIA 타이거즈에 3-10으로 패했다.


한화 선발/불펜 성적 비교
선발진: 46경기 10승 14패 평균자책 6.14(최하위) QS 8회(최하위)
불펜진: 46경기 13승 9패 22홀드(1위) 13세이브(1위) 평균자책 4.38(5위)


김성근 감독의 발언은 발언 자체만 놓고 보면 맞는 얘기다. 선발야구 안 하고 싶은 야구 감독은 없다. 김성근 감독도 SK 시절에는 어느 정도 선발야구를 하는 모습이었다. 선발이 7회까지 버텨준다면 감독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김 감독의 저런 발언이 감독 본인보다는 야구 해설가나 스포츠 평론가의 발언에 더 적합해 보인다는 점이다. 한화가 선발야구를 못 하고 있는 원인이 바로 김성근 감독 본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현재 한화의 선발진은 탈보트-유먼-안영명-송은범-배영수 등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평균 5이닝 이상을 소화하고 있는 투수는 유먼(5.1이닝) 하나뿐이다. 그리고 5명 중 평균자책점 5.00 이하를 기록중인 투수는 시즌 중 선발로 전향한 안영명(ERA 3.80)이 유일하다. 하지만 4월 평균자책 1.40이던 안영명은 5월 평균자책 7.31을 기록하며 조금씩 자신의 평균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한화는 믿을 만한 선발투수 없이 시즌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안영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발투수 4명은 모두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한화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다. 스카우트 팀의 실패일까? 그렇지가 않다. 거액을 들여 영입한 송은범과 배영수는 김성근 감독이 구단에 요구해서 데려온 선수들이다. 한화 구단 측에서는 해당 선수들의 기량과 보상선수 문제 등을 고려해서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6일까지 송은범은 12경기 1승 4패 평균자책 6.66을 기록 중이다. 송은범은 2013~2014 2년 연속 7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뒤 FA 자격을 얻어 4년 총액 34억 원에 한화에 왔다. 보상선수로는 1993년생 유망주 임기영이 건너갔다. 배영수도 9경기 2승 2패 평균자책 7.92로 삼성 시절보다 더 나쁜 기록을 내고 있다. 배영수는 2013년 평균자책 4.71, 2014년 5.45로 하락세를 타는 중이었으며 3년간 21억5000만원에 한화에 왔다. 삼성 시절 배영수의 성적은 코칭스태프의 철저한 관리와 리그 정상급의 수비 지원 속에서 나온 성적이다. 남은 계약기간 두 선수의 성적이 반등을 이룰 가능성은 크지 않다.


외국인 투수들 역시 마찬가지. 유먼과 탈보트는 김성근 감독이 기량과 한국 무대 적응력 등을 감안해 고르고 고른 선수들이다. 최근 3년간 평균자책 2.55에서 3.54로, 다시 5.93으로 매년 성적이 하락하던 유먼은 올 시즌 26일까지 1승 4패 평균자책 5.16을 기록하고 있다. 탈보트 역시 9경기 2승 3패 평균자책 8.07로 부진하며, 5월 초에는 한 차례 퓨처스리그행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외에 구 외국인 타자 모건과 새 외인타자 폭스도 스카우트가 아닌 김성근 감독이 선택한 선수들로 알려져 있다. 영입 당시 ‘인성문제’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은 모건은 결국 한달만에 짐을 쌌다. 폭스도 4경기만에 정상적인 주루 플레이 도중 입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진 상태다.


김성근 감독이 고른 7명 중 성공이라고 할 만한 사례는 불펜 에이스로 급부상한 권혁(27경기 9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 3.46) 정도다. 하지만 권혁은 이미 지난 시즌 내내 던진 것보다 많은 이닝과 투구수를 기록 중이며, 그 후유증인지 4월에 6.5에 달했던 삼진/볼넷 비율이 5월에는 1.2로 하락한 모습이다.


한화가 선발야구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발진을 좋은 투수들로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송은범과 배영수는 성적 반등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하락세의 투수들이었고, 유먼 역시 한국무대 세 시즌 동안 꾸준한 하락세를 보여왔다. 탈보트는 2012년 당시에도 압도적인 선발투수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 시즌의 KBO리그 타자들과 지금의 타자들 수준은 천양지차다. 이들 4명을 선택하고 영입한 건, 한화 스카우트 팀이 아닌 김성근 감독 본인이었다.


선발투수에 대한 관리 면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시즌 첫 2경기에서 11이닝 1자책점으로 호투한 탈보트가 대표적인 예다. 올해 32세의 탈보트는 팔꿈치 부상 경력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투수. 하지만 탈보트는 3월 28일 개막전부터 4월 12일 롯데전까지 4경기 연속 4일 휴식 이후 선발등판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특히 탈보트가 시즌 세번째로 등판한 4월 7일 LG전은 한화의 시즌 7번째 경기로, 팀이 치른 7경기 중 3번이나 탈보트가 선발로 나왔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탈보트는 4월 12일 롯데전에서 0.2이닝 7실점으로 무너졌고, 이후 5월 10일 두산전에서 퇴장되기 전까지 부진한 투구를 이어갔다. 퓨처스리그에 내려갔다 돌아온 21일 SK전에서는 5.1이닝 1실점으로 오랜만에 호투했다. 이날 등판은 10일 두산전 이후 11일만의 선발등판이었다.


4월까지 에이스 역할을 해준 안영명도 마찬가지. 안영명은 5월 12일 삼성전에서 2이닝만 던진 뒤 ‘허리통증’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하지만 바로 이틀 뒤인 14일 다시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고, 1.1이닝만에 3실점(2자책)하고 강판됐다. 사흘 뒤인 17일, 안영명은 다시 한번 선발투수로 등판해 2.1이닝 4실점, 시즌 최악의 투구를 하고 불펜에 마운드를 넘겼다. 한화는 안영명이 일찍 강판된 3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감독의 신출귀몰한 투수 기용이 아닌, 불펜 투수들의 호투와 타자들의 맹타가 승리를 이끌었다. 감독의 잘못된 투수 기용을 한화 선수들이 끈기와 투지로 만회했다.


지금은 KIA로 건너간 유창식도 비슷한 예다. 유창식은 원래 4월 2일 두산전 선발등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1일 두산전에서 갑작스레 구원으로 마운드에 올랐고, 제구력 난조 끝에 ‘15구 연속 볼’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 뒤 NC전에서는 5회까지 호투했지만 6회 팀 수비 실수에 이은 홈런으로 패전을 떠안았고, 이후 불펜과 선발을 오르내리다 KIA로 트레이드 됐다. KIA 이적 후 첫 선발등판한 삼성전에서 유창식은 6이닝을 2실점으로 틀어막는 호투를 펼쳤다. 한화 시절과 기술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사용법’이 문제였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기는 송은범과 배영수도 마찬가지. 도합 65억 5천만원을 주고 데려온 두 베테랑 투수가 한화에서는 어느 날은 선발이었다가 다른 날은 불펜에서 대기하는 식으로 기용되고 있다. 선발투수는 자신이 등판할 날짜를 미리 알고, 그에 맞춰 휴식기간 동안 몸과 마음을 준비해서 등판해도 제대로 해내기가 쉽지 않은 보직이다. 어제는 선발, 내일은 불펜으로 기용되는 투수들이 선발 마운드에서 좋은 피칭을 선보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이야기다.


한화 선발진이 긴 이닝을 버티지 못하는 건 지나치게 빠른 투수교체 탓도 있다. 한화 선발진의 시즌 퀄리티스타트는 8회로 신생팀인 kt(10회) 보다도 적다. 6일 kt전에서 한화 선발로 나온 안영명은 팀이 5-3으로 앞선 5회 1아웃 1, 2루에서 교체됐다. 투구수는 80개였다. 안영명의 뒤를 이어 나온 송창식은 볼넷과 만루홈런으로 역전을 내줬다.


다음날도 한화 선발 유먼은 팀이 3-0으로 앞선 6회 무사 1, 3루가 되자 바로 교체됐다. 유먼의 투구수는 80개였다. 한화는 후속 투수들의 난조로 7-6으로 역전패했다. 대부분 선발투수는 한 경기 동안 2~3차례 정도 위기를 겪는다. 위기에서 무너지는 경우도 있지만, 위기를 잘 넘기고 긴 이닝을 버티면서 팀에 큰 도움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한화 선발투수들은 5회 이전까지 2~3실점 이내로 막아도 위기가 오면 바로 불펜으로 바뀐다. 한화의 경기당 득점이 5.02(리그 6위)로 나쁘지 않은 편. 선발을 길게 끌고 가도 충분히 경기 후반 득점을 올릴 능력이 있는 팀이다.


김성근 감독은 틈만 나면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화에 올 때 선수기용과 구단 운영의 전권을 요구해서 얻어냈고, FA 영입과 외국인 선수 영입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챙겼다. 하지만 1980~90년대와 달리 요즘의 프로야구는 감독 혼자 모든 걸 챙기고 알아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야구단의 몸집이 너무 커졌고, 쏟아 붓는 예산의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야구단 운영에 정통한 프런트의 도움 없이는 지속적인 성공이 불가능한 시대다. 한 사람의 절대적인 능력과 감(感)에만 의존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손실의 규모가 너무 크다.


전권을 쥔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김성근 감독의 선발투수진 구축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이 선수들이나 구단이 아닌 김성근 감독 본인에게 있기 때문에 더 뼈아프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지금은 “나도 선발야구 하고 싶다”는 야구평론가식 멘트를 할 때가 아니라, 왜 선발진 구축에 실패했는지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시기다. 한화가 선발야구를 못 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김성근 감독 본인이다. 김 감독의 결자해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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