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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로저스는 100만 달러짜리 투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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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로저스는 100만 달러짜리 투수일까 [베이스볼 Lab.] 5강 도전 위한 승부수, 혹은 무리수

위기의 한화 이글스가 투수진 강화를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한화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새 외국인 투수로 에스밀 로저스(Esmil Rogers)와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로저스는 지난 200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올해까지 7시즌 동안 빅리그에서 210경기에 나선 베테랑 우완 투수. ‘화려한’ 경력과 이름값을 자랑하는 로저스는 과연 한화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우선 로저스가 어떤 선수인지부터 살펴보자.

로저스는 누구인가


도미니카 공화국 태생의 로저스는 1985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 30세다. 키 192cm에 90kg의 건장한 체격조건을 갖춘 우완 정통파 투수. 로저스는 2003년 국제 프리에이전트 신분으로 콜로라도 로키스와 계약하며 프로에 입문했는데, 재미난 건 당시 포지션이 투수가 아닌 내야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로저스는 처음 3년간 타자로서 2할을 간신히 넘을까 말까 하는 빈약한 공격력을 보였고, 이에 2006년부터 투수로 전향해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투수’ 로저스는 매우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투수 전향 2년차인 2007년 하위 싱글 A에서 19경기 7승 4패 평균자책 3.75로 선방했고 2009년에는 더블 A에서 15경기 8승 2패 평균자책 2.48을 기록하며 유망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 해 로저스는 트리플 A를 통과해 메이저리그 데뷔전(4이닝 2실점 3K)까지 치렀다. 투수 전향 4년만에 초고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까지 서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로저스는 부드러운 투구폼과 좋은 팔스윙을 바탕으로 무브먼트가 좋은 패스트볼을 던진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최고시속 95마일에 달하는 위력적인 패스트볼과 커브볼 조합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2009 콜로라도 로키스 팀내 유망주 랭킹에서도 당당히 Top 10 안에 포함됐다. 당시 에스밀 로저스는 9위, 현재 골드글러브 3루수로 성장한 놀란 아레나도는 10위에 랭크된 바 있다. 강속구 투수임에도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이 좋은 편이라, 콜로라도 팜 시스템에서 가장 좋은 컨트롤을 가진 선수로 한 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한화 새 외국인투수 에스밀 로저스 ⓒAP=연합뉴스


하지만 로저스는 구단의 기대와 달리 끝끝내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 자리잡는데 실패했다. 2010년 빅리그에서 28경기(선발 8경기)에 등판해 72이닝 동안 평균자책 6.13으로 무너졌고, 이듬해도 18경기(선발 13경기)에서 평균자책 7.05로 송은범급 성적을 기록했다. 구원투수로 전향한 2012년에도 23경기에서 평균자책 8.06으로 해마다 평균자책점이 1씩 상승하는 결과가 나오자,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콜로라도는 로저스를 지명할당한 뒤 현금을 받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넘겼다.


‘산동네’에서 하산한 효과일까. 추신수의 팀메이트로 지낸 반 시즌 동안 로저스는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투구를 선보이며 다시금 기대를 갖게 했다. 인디언스 소속으로 44경기에 구원 등판해 3승 1패 평균자책 3.06으로 깜짝 호투를 선보인 것. 특히 콜로라도에서 9이닝당 6.3개에 달했던 볼넷 허용이 클리블랜드에서는 2.0개로 확 줄어든 게 호투의 밑거름이 됐다. 시즌 뒤 클리블랜드는 로저스를 로저스센터를 홈구장으로 쓰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했다. 트레이드 상대는 내야수 마이크 아빌레스와 포수 얀 곰스. 이 중 곰스는 트레이드 이후 클리블랜드의 주전 포수를 꿰차며 대성공을 거둔다.


2013시즌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로저스는 시즌 초반에는 불펜에서, 중반 이후에는 선발투수로 등판하며 비교적 준수한 투구를 펼쳤다. 그 해 토론토는 R.A. 디키와 마크 벌리 외에는 믿을 만한 선발투수가 없어 애를 먹었는데, 로저스는 팀 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20경기에 선발등판 해 팀 내 3위에 해당하는 106.2이닝을 투구했다. 하지만 2014시즌에는 16경기에서 홈런 5방을 얻어맞고 평균자책점 6.97을 기록하며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후 로저스는 웨이버 공시를 거쳐 양키스로 이적했고, 올 시즌 18경기에서 33이닝 평균자책 6.27을 기록한 뒤로는 더 이상 빅리그 마운드를 밟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로저스는 한국에서 통할 수 있을까


패스트볼 하나만 놓고 보면 로저스가 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실패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로저스는 최고구속 155km/h에 달하는 강력한 패스트볼을 구사하며 평균구속도 150km/h대로 구속 하나만큼은 빅리그 투수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여기에 결정구로 던지는 슬라이더도 스피드와 좋은 각을 갖춘, 나쁘지 않은 구종이다. 데뷔 초기 호평을 받은 커브 구사 능력도 여전히 갖추고 있다. 여기에 주자 견제 능력도 수준급이라, 외국인 투수에게 슬라이드 스텝을 강요하는 KBO리그 적응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로저스가 좋은 패스트볼과 브레이킹볼에 비해 오프스피드 구종을 구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팬그래프(fangraphs.com)에 따르면 로저스가 7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던진 체인지업 비율은 3.4%로 패스트볼(51.7%)-슬라이더(27.2%)-커브(7.4%)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거의 풀타임 선발로 활약한 2013년에도 체인지업 구사는 2.2%에 그쳤다. 이 정도면 KIA 윤석민이 매년 새로 장착하는 구종들처럼, 단순히 ‘던질 줄만 아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로저스는 메이저리그 데뷔 초기부터 “선발투수로 자리잡으려면 체인지업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체인지업 장착에 실패한다면 선발보다는 불펜투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뒤따랐다. 실제로 로저스는 체인지업을 자신의 구종으로 만드는데 실패했고,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투 피치를 구사하는 빅리그 추격조 투수에서 성장을 멈췄다. 체인지업 부재는 로저스가 좌타자를 상대로 커리어 내내 난타당한(통산 좌타 상대 피장타율 0.479/가중출루율 0.379)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 KBO리그는 타자들의 기량이 급성장하며 화려한 빅리그 경력을 자랑하는 투수들도 연일 난타 공연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150km/h대 강속구가 담장 밖으로 날아가는 광경은 너무 흔한 것이 된지 오래다. 힘과 기술을 겸비한 좌타자들이 많아지면서 우투수들에게 체인지업이나 투심, 스플리터 장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승부가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는 시즌 초반 LG 루카스가, 시즌 중반 이후에는 두산 스와잭이 확실하게 보여준 바 있다.


만약 로저스가 1~2이닝 이내 짧게 던지고 내려가는 구원투수라면 KBO타자들이 상대하는데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 150km/h대 빠른 볼과 슬라이더 콤보, 좋은 견제능력은 구원투수로는 분명 경쟁력이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긴 이닝을 책임지며 상대 타순을 3바퀴 이상 상대해야 하는 선발투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좌타자를 요리하고 긴 이닝을 버티게 도와줄 제 3 구종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2006년 투수 전향 이후 10년째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KBO리그에서 풀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로저스는 100만 달러의 사나이?


한화 구단이 발표한 로저스의 공식적인 연봉은 70만 달러. 이것만으로도 시즌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금액이다. 올 시즌 KBO리그에 새로 모습을 드러낸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85만 달러의 조쉬 린드블럼. 루카스 하렐이나 앤드류 브라운 등 빅리그 출신 거물도 발표된 연봉은 모두 70만 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로저스는 시즌의 1/3만 뛰면서도 루카스-브라운 등과 같은 연봉을 받는다. 앞서 두산이 영입한 스와잭의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연봉은 90만 달러, 두산이 발표한 연봉은 35만 달러다. 로저스는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75만 달러를 받았고 한화에서는 70만 달러를 받게 된다. 스와잭은 MLB 통산 191경기 16승 24패 평균자책 4.45로 210경기 19승 22패 평균자책 5.59를 기록한 로저스보다 나은 커리어 면에서 우위에 있는 투수다.


게다가 CBS 존 헤이먼이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로저스의 실제 연봉은 70만 달러가 아닌 ‘100만 달러’라고 한다. 지금까지 선례를 볼 때 외국인 선수 계약 내용은 국내 구단들의 발표보다는 해외 소스의 신뢰도가 높다. 여기에 다른 매체를 통해 보도된 인센티브와 이적료까지 포함하면, 한화가 로저스 영입에 쏟아 부은 비용은 기존 외국인 선수 4명에 투자한 총액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치솟는다. 일각에서는 이런 계약 규모를 감안할 때 올 시즌 뿐만 아니라 내년 시즌까지 보장을 해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할 정도로, 전례없이 파격적인 계약을 내준 셈이다.


한화는 현재 선발진과 야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위기에 빠져 있다. 최근 13경기 성적 4승 9패를 기록하며 KIA와 SK에 반 게임차로 쫓기는 상황. 게다가 전반기의 ‘기록적인’ 혹사의 여파로 권혁, 송창식 등 불펜투수들의 상태도 좋지 않다. 외국인 투수 유먼의 부상 퇴출, 송은범-배영수의 실패로 선발진에서 5이닝을 버텨줄 투수는 탈보트와 안영명 둘만 남은 상황이다. 남은 시즌 동안 5위 자리를 지키려면 강력한 외국인 선발투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앞서 본 대로 로저스가 과연 1/3시즌에 100만 달러(구단 추산 70만 달러)를 줄 만한 가치가 있는 투수인지, 남은 10번의 등판에서 경기당 1억원의 몸값을 해줄 수 있는 투수인지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로저스 영입으로 한화는 사실상 올 시즌 성적에 ‘올인’을 선언한 셈이 됐다. 한화는 이미 올 시즌을 앞두고 김성근 감독과 일본인 코칭스태프 영입, 송은범-배영수 영입에 거액을 쏟아 부었다. 여기에 ‘100만 달러’ 외국인 투수까지 추가로 영입하며 팀 연봉에서 삼성을 제치고 리그 1위로 올라섰다. 이에 따라 이번 시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만약 로저스가 매 경기 에이스급 피칭을 선보이며 한화를 포스트시즌 무대로 이끈다면 한화 입장에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로저스 영입은 ‘신의 한 수’로 평가가 뒤바뀔 것이고, 몇몇 실패한 투자에 대한 비판은 수면 아래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로저스가 실망스런 투구를 하거나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한화 구단은 하나의 프로야구 구단이 감독에게 해 줄 수 있는 그야말로 모든 지원을 다 했다. 감독에게 KBO리그 역사상 어느 감독도 누려보지 못한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했고, 감독이 원하는 코칭스태프를 영입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부 판단에도 감독의 강력한 요구에 송은범-배영수를 거액을 주고 FA로 영입했다. 그 과정에서 어렵게 키워놓은 젊은 유망주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내줬다. 트레이드도 감독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줬다. 외국인 선수 영입도 전적으로 감독의 선택에 맡겼다. 연일 이어지는 특타와 각종 특별훈련으로 다른 구단 프런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했다. 그리고 무리한 투자를 감수하며 ‘10경기 렌탈용’ 외국인 투수도 영입했다. KBO리그 역사상 이렇게 현장의 요구대로 현장이 원하는 모든 지원을 다 한 구단 프런트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지 모른다.


만약 이번 시즌 한화 선수단이 보여준 투지와 프런트의 물심양면 지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한화 이글스의 로저스 승부수가 올 시즌 뒤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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