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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하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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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하야'로는 부족하다 [프레시안 뷰] "정부 폭발, 국가 멜트다운 막으려면…"
누구에게도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최순실이라는 개인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며 온갖 사익을 챙긴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보도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과 측근, 대기업이 얽힌 더러운 비리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여야가 몇 년 동안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방임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혐오와 차별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서민들을 위한 오바마 케어 정책을 중단하고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의 정책 공약을 내세우고 말이다. 그는 수십 개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재벌, 금수저다. 선거 이후 몇몇 미국인들은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작동 불능 민주주의

지난 며칠간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는 '미국은 무능하고 한국은 더 무능하다'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더 나아가 '차라리 왕정이 낫겠다. 민주주의는 멈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공화국 시민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작동을 멈춘 것은 이미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낮은 득표에도 불구하고 미국 특유의 선거인단 제도로 인해 당선되었다. 그러자 한 미국 시민이 'Not my president'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같은 피켓을 박근혜 씨에게도 내밀고 싶다.

트럼프도, 박근혜도 이명박도 과반의 득표율을 얻지 못한 채 한 나라의 수장이 되었다. 미국과 한국의 선거 제도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임은 이미 여러 번 거론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40%만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40%도 되지 않는 정당 득표율의 정당이 국회 의석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거대 정당들은 기득권화되고 소수의 정치인이 권력을 독점하다 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


새누리당 김무성은 본인 입으로 "새누리당 의원들 중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그들에게 박근혜와 최순실의 결탁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박근혜에게 탈당을 요구한다. 얼마나 뻔뻔한가. 본인은, 새누리당은 마치 아무 관련이 없는 듯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본인 말처럼 새누리당이 이미 알고 있는데도 내버려 뒀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도 이런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후보 시절 당시 이미 문제 제기 받은 사항에 대해 야당 의원이라고 몰랐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하야하고 거대 정당들만 참여한 거국중립내각이 이루어져도 비리와 부패가 청산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누군가는 비선 실세를 하고 다른 사람은 기득권을 잡을 것이다. 국가안보와 경제를 운운하며 해온 모든 것이 결국 쇼이며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정계, 재계, 사법부, 언론…. 박근혜 한 명 하야한다고 해서 변하기에는 너무나 견고한 결탁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다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누가 대한민국을 다스리는가?

어쩌면 최순실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내 태블릿 피시만 잘 관리했다면…." 이라고 말이다.

"얼굴색을 감추며 꼬리 자르기를 하는 정치인들이나 기득권층은 나보다 더 꼼꼼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던 걸까. 적당히 할 걸"이라며 말이다.

실제로 나라 공직을 맡으면서 한 몫 단단히 챙기는 사람은 그간 자주 볼 수 있지 않았는가. 뇌물을 주고 정치적 대가를 받아온 대기업은 지금까지도 안전지대에 있지 않은가. 박근혜 게이트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근혜와 사건에 연류된 집단의 처벌뿐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고쳐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첫 선거는 2002년 대선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엄마가 물었다. "지예야, 누구 뽑을까?" 나는 단박에 "노무현 아저씨"라고 말했다. 이유는 "착해 보여서"였다. 엄마가 어디에 투표하셨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말한 아저씨가 뽑혔다는 것에 기뻐했던 것은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2010년 지선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지지한 정당이나 후보의 선거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나라의 결정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누가 결정 권한을 가졌는가. 누가 정치권력을 갖는가. 바로 소수의 기득권층이다.

정치권력을 시민에게로

박근혜 정부 시절뿐 아니라 이명박 때부터 기괴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멀쩡히 있는 강에 삽질을 하고, 전력은 충분한데도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원전 부실 부품 납품 비리, 세월호 사건,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문제, 평창올림픽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듯하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 기후변화 시대에 봉착해 있다. 이럴 때까지 정치권은 어떠했나. 사회 약자들의 고통에 손 내밀지 않고 강정마을, 밀양 같은 현장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매번 변화니 혁신이니 운운하면서 결국은 기득권 정당과 정치인이 돌아가며 권력을 독점하길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 약자들은 사회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소득 불평등은 점점 커지고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는 아직도 자리 못 잡고 있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지만,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찾지 못한다.

소수의 기득권층이 지배하는 껍데기 민주주의로는 시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주의 작동을 불능으로 만드는 잘못된 정치판부터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엘리트에 권력을 위임한다는 뜻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소수가 가지고 있는 정치권력을 해체하고 시민에게 돌려놓아야 한다.

권력을 해체하자


비례민주주의연대 등의 시민단체들이 먼저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정당이 얻은 득표수만큼 그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

양당제(다수제 민주주의)에서 다당제(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정치 변화. 생각해보라.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자영업자, 동물권 등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의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선거가 정치가 재밌을 것 같다. 또한, 더 많은 시민 주체들이 더 많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제도와 참여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는 대의 민주주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보장한다. 대표적으로는 국민/주민발의운동과 국민/주민소환 제도, 참여 예산제 등이 있다. 지금처럼 권력자가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을 때 국민이 소환하여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구조가 있어야만 시민들이 중앙, 지방정부의 의사 결정에 끼치는 영향력이 지금보다 커질 수 있다.

현재 대통령에게 과하게 몰려있는 권력도 분산시켜야 한다. 일단 당선만 되면 왕이 되어 버리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줄여야 한다.

시민윤리위원회를 열자


지난해 조한혜정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 선망국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선망국 대한민국을 구할 영웅적 정치인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인물은 없다. 이 난제를 해결할 이는 나와 당신, 우리 시민뿐이다. 박근혜 게이트를 넘어서 이제 우리가 대한민국 전체 사회 기조를 재검토해야 하다. 독일은 먼 나라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것을 보면서 '17인의 윤리 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11시간에 걸쳐 독일 원전 사업의 방향에 관해 토론했다. 공영방송은 이 토론을 독일 전역에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17인 윤리위원회' 위원 외에도 그린피스, 태양광 에너지 관련 교수, 핵공학자 등 30명의 외부 전문가가 참석했다. 텔레비전을 본 시민들은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의견을 내며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원전 완전 폐기를 결정 내렸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대기업, 정치인, 검찰, 언론 심지어 대통령까지 불법에 가담한 것을 생생히 보고 있다. 눈앞에서 대한민국 정부 폭발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제 더 이상의 국가 멜트다운을 막기 위해 지식인, 정치인, 일반 시민 할 것 없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야말로 정치권력을 어떻게 해체하여, 시민에게 돌려놓을지 논의하는 시민 정치윤리위원회와 대국민 토론이 열려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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