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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동물권도 명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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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동물권도 명시하자 [신지예 칼럼] 동물이 행복한 사회, 사람에게 이롭다
2017년 봄, 시민의 힘이 모여 박근혜 정권의 퇴장을 이끌어 냈다. 비 내리고 눈 내리는 겨울 거리, 아스팔트 냉기에 지지 않고 매주말마다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각각의 분노와 희망을 방패삼아 손잡았던 시민의 바람이 이뤄졌다.

지금부터 30년 전 전두환 군부 독재의 폭정을 끝내기 위해 시민이 거리에 나섰다. 87년 6월 항쟁은 항복 선언에 다름없는 6·29 선언을 이끌어내, 이 땅에 민주적 가치가 싹 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록사진을 통해 보는 그 날의 풍경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늘 기쁜 날. 찻값은 무료'라고 써 붙인 가게의 풍경이다. 그날도 이번처럼 아낌없이 내 것을 퍼주고 싶을 만큼 기쁜 날이었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 기쁜 날의 이야기는 뜻밖에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바라던 민주 정권은 승리의 날로부터 한참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등장할 수 있었다. 시민의 권리와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정권의 기간은 겨우 십 년 정도였다는 것도 우린 이미 몸으로 겪어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 일궈낸 시민 승리를 온전히 보전하기 위한 일도 함께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개헌이다. 국회는 올해 초부터 분야별로 공청회를 하는 등 본격적으로 개헌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만든 것은 1500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지만, 개헌 논의에서 시민의 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밀실 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설익은 개헌 논의 과정이 기득권을 재편하는 용도로 바뀔까 근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바라건대 시민의 힘으로 얻어낸 이번 자리야말로,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논의가 있길 바란다. 사회 곳곳에서 배제되고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 하나하나가 녹아들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람의 입을 빌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동물을 대신해서 '동물권'을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 동물로 살아가기

한국사회에서 동물은 도구로 취급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물실험이다. 세계적으로 1년 기준, 많게는 약 1억5000만 마리의 동물이 실험과정에 목숨을 잃는다. 한국만을 보더라도 2016년 287만 마리의 동물이 다양한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실험의 방식과 죽음의 과정 또한 비인도적이다. 샴푸 용액을 강아지의 눈에 넣어 실명에 이르게 하거나, 새끼를 밴 토끼에게 약물을 주입한다. EU는 2013년 화장품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하고 인공 세포, 피부를 활용한 대체 실험을 도입했다. 한국도 지난 달 '화장품법'이 개정되었지만, 위반 시 과태료가 겨우 100만 원 밖에 안 된다. 수출 상대국이 필요로 할 경우 동물실험 화장품을 수출할 수 있다고 하는 등 6개의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동물실험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너무도 약한 법이다.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이용되는 동물들의 처지도 참담하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제대로 된 동물원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학대 수준의 환경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한 달 전 울산남구청에서 수입한 돌고래가 폐사한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울산남구청은 2009년 돌고래 체험관 개장 후 열악한 관리로 인해 이미 5마리의 돌고래를 폐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고래의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재수입했다. 돌고래 불법 학살로 악명 높은 다이지와 수입 협의를 하면서, 시민의 항의를 우려해 이를 밝히지 않는 꼼수 행정처리도 했다. 그 결과 수입된 돌고래 한 마리가 또 죽었다. 잘못된 이송방법으로 인한 호흡곤란과 쇼크사로 추정된다. 책임져야 할 울산남구청장은 "정해진 기준이 없어서 문제가 없다"는 말로 변명하고 있다. 공공기관이라는 곳이 이 정도인데 사설기관은 어떨까.

도구적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면 존재를 가학한다. 길고양이, 너구리, 비둘기처럼 지구 환경을 함께 공유하는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과 같이 여긴다. 사료에 약을 타서 길고양이와 개를 묻지마 독살하는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한다. 가치를 다한 싸움견이나 늙은 말을 방치하며 물리적 학대를 행사하는 일도 끊임없다.

약자의 최전선에 동물이 있다

민중은 개·돼지고, 먹고 살게 만 해주면 된다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은 특정한 시선을 반영한다. 사람이 동물에게 보이는 태도는 특히 효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약자에게 가하는 강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의 이유를 도구성에만 부여하고 쓸모가 없으면 폐기한다.

삼성이 자기 상품을 만들다 유해물질을 뒤집어 써 백혈병에 걸린 피해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자. 사건이 알려진 지 10년이 지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노동 환경 개선도 나아진 것이 없다. 작년에도 삼성, LG 하청업체의 젊은 노동자들이 노동환경의 미흡함으로 인해 실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노동자를 뽑아 쓰고 버리는 티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노숙자는 어떤가? 우리는 길가에서 길고양이나 비둘기를 보면 피해가거나 외면한다. 노숙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박한 사람이든,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든 대부분 눈길 한 번 주고 가는 발걸음 뒤로 잊어버린다. 대놓고 혐오를 드러내며 서울역 노숙자는 위험하니 어디로 '치워 버렸으면' 좋겠다는 인터넷 게시판 글은 흔하다. 한국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나는 항상 집 문 앞에 길고양이를 위한 사료를 준비해 둔다. 대견하게도 근방에 사는 몇 마리 고양이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우연히 마주치면 멀찍이 떨어져 서 있다. 2년이나 마주치면 낯이 익을 만한데도, 녀석들은 필사적으로 도망가 버린다. 눈이 둥그레져 차도를 가로질러 도망가는 것을 보며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각 나라 별로 보이는 도시 거주 동물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유럽 몇몇 도시를 갔을 때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겁먹지 않고 다가오는 길고양이나 다람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동물원이 있기는 하지만, 최대한 종별 습성을 반영하고 서식지를 재현한다. 국내 동물원이 사람 위주의 수용과 관람에만 집중해 동물의 정신병이나 무기력증을 낳는 환경과는 크게 다른 접근법이다.

▲ 동물이 행복해야 사람도 행복하다. ⓒflickr.com

인권의 확장, 동물권

몇몇 사람은 동물권이 마치 인권에 상충되거나 아직은 이른 개념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동물권이 없는 사회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

걷잡을 수 없이 퍼졌던 AI 사태가 그렇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등 감염병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공장식 축산이다. 대부분의 축산시설에서는 동물을 움직일 수도 없게 좁은 공간에서 사육한다. 인간으로 치면 관 크기만한 곳에서 살게 한다. 이러니 동물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 동물을 어떻게 사육하느냐, 즉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얼마나 챙기느냐에 따라서 축산물의 건강과 영양 상태는 우리의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

도시 안에 동물이 살 수 있는 공원형 서식지를 만든다면 어떨까? 야생동물뿐 아니라 반려동물, 심지어 인간 삶의 질 또한 올라갈 것이다. 길고양이 급식소가 당연해져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뭇 생명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면 어떨까? 모든 존재는 존중받아야한다는 배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동물에게 안전한 사회라면 당연히 인간에게도 이롭다. 동물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인간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최근의 연구는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돌고래, 코끼리, 유럽까치 등을 비인간 인격체로 분류한다. 인간처럼 자의식, 성격 등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비인간 인격체가 아닌 동물 또한 고통 등 감정을 느끼는 것은 동일하다. 동물에 관한 가장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지구의 다른 종에 가하는 착취는 역사상 가장 심하다. 물론 식생활만 보더라도 모든 동물이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기란 어렵다. 그러나 윤리적인 사회라면 생명을 단순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 어디에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이란 있는 법이다. 지금부터라도 책임의식을 갖고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

현재 한국 법은 동물을 재산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동물 학대의 처벌 수위가 무척 가볍다. 이웃의 반려견을 잡아먹은 범죄자가 반려견의 구매가격만 배상하면 되는 수준이다. 그에 비해 독일은 20년 전인 1990년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문을 민법에 명시했다. 동물에게 사람과 물건 사이의 '제3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2002년 6월 21일에는 헌법 제20a조에 "국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으로서, 헌법질서의 범위에서 입법을 통하여, 그리고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과 사법을 통하여 자연적 거주지와 동물을 보호한다"며 동물보호를 국가 의무로 규정했다.

동물권을 포함한 개혁적 헌법 개정

87년 수정 헌법이 서른 살이 됐다. 당시의 기준으로 이상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 시대와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대통령 후보의 기준을 만 40세로 명시하는 것이 그러하다. 제 역할을 다한 헌법을 바꿔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건 좋은 기회다. 시민의 힘으로 오만한 권력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시민의 민주적 열망이 강할 때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민주주의로의 한발이 아니라 그간 못간 열 걸음을 떼 봤으면 한다. 끊임없이 이야기 나왔으나 좌절되었던 비례대표제 확대 같은 정치개혁, 주거권 명시 등 여러 내용을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시점만이 아닌 적어도 20년 먼 미래를 바라보며 헌법의 기조를 세우고 사회의 다양성을 포괄하자. 사회 구성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내용은 당연히 담겨야 한다. 그간 소외되었던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곳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던 동물을 위한 자리도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존재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인간도 동물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잊지 않는 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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