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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김정일 면담, '여기자 석방'이 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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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김정일 면담, '여기자 석방'이 다일까? [한반도 브리핑] '북미관계 개선' 시동, 南은 무엇을 해야 하나
미국 여기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우리의 유 씨는 아직도 북녘 땅에 붙잡혀 있다. 전직과 현직 대통령이 모두 나서서 힘쓴 덕에 풀려난 '어떤 국민'을 보면서, '또 다른 국민'인 유 씨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나의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를 물을 것이다.

두 국민의 상반된 처지가 안타깝다. 그 차이는 한미 양국의 억류자 문제 해결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유 씨가 언제쯤 가족의 품으로 돌아 올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이제 대답할 차례다.

▲ 미국인 여기자의 석방에는 전직 정·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모두 나섰다. 평양에 다녀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5일 로스앤젤레스 밥호프 공항에 내려 앨 고어 전 부통령과 포옹하는 장면 ⓒ로이터=뉴시스

한미 양국의 억류협상 차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모든 미국인의 기쁨"이라고 표현한 외교적 성과는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가 기울인 다양한 노력의 결과이다.

뉴욕 채널을 통해 실무적인 대화를 지속해 왔고, 민간 채널을 충분히 활용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나서서 북한이 요구한 불법 시인과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라는, 현재 상황에서 가장 최적의 '특사'를 보냈다. 북한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당국간 대화는 중단 된 지 오래다. 채널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정부에서 협상에 참여했던 유능한 공무원들을 모두 잘라버리거나 엉뚱한 곳으로 보내버렸다.

미국은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 등의 방북 계기를 활용해 석방 협상의 조건을 조율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벌써 몇 달째 인도적 차원의 민간방북조차 금지시켰다. 유 씨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북의 기회들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오히려 막았다. 멸사봉공해야 할 공직자들이 멸공봉사를 해 왔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석방을 요구하는 편지라도 보냈지만,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확성기를 들고 '석방하라'는 구호만 되풀이 했다.

미국이 협상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은 '비난'에 집중했다. 4월 중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발표를 유 씨 문제와 관련 지움으로써 억류의 정치화를 자초했고, 유엔 인권위원회 제소 등을 거론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 미국은 조용히 물밑 협상을 했지만 한국은 목소리만 요란했다.

미국 여기자 석방 협상에서 여기자들이 소속된 방송사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적극적 역할도 눈에 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현대아산의 노력에 어떤 도움을 주었나? 도와주지 않았다.

정부가 내키지 않으면, 최소한 현대아산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라도 조성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현대 출신의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 대금이 마치 북한 핵개발에 쓰이기나 한 것처럼 퍼주기 담론으로 비수를 꽂았다. 지금도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에서 '퍼주기' 이데올로기를 홍보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있는가?

지금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의 책무를 더 이상 방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과연 어떻게 해야 유 씨를 하루라도 빨리 데려올 수 있을까? 미국처럼 특사를 보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한나라당 의원조차도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특사 파견은 순서가 잘못되었다.

왜 유 씨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채널이 없어서? 특사를 보내지 않아서?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풀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여기자는 돌아왔는데, 유 씨는 억류되어 있는 상황이 시작되었다.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이 첫 번째다. 아직 그런 결심을 찾아 볼 수 없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사실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여러 주장들이 부딪히지만 알고 있었다는 정부의 해명을 믿고 싶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런 사실을 알았던 사람들의 태도다. 외교부 장관은 그런 사실을 통보 받고도 휴가를 갔다. 물론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출근을 했다. 그러면 그는 미국으로부터 통보받은 시점에는 휴가 가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방북하는 상황이 되자 휴가를 취소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우왕좌왕의 행태에서 억류자 석방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미국은 전 현직 대통령들이 나설 만큼 중대한 현안이지만, 한국에서는 휴가를 가도 될 만큼 무시해도 좋을 현안인지 묻고 싶다.

결심이 서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민간 채널들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현대아산이 협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간 대화가 막혀 있을수록 민간교류의 역할이 중요하다.

접촉이 이루어지면 최소한 평양의 생각이라도 들을 수 있다. 입장 차이를 조정할 수 있는 중재 역할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민간 방북을 정부의 입맛에 맞는 단체들을 중심으로, 그것도 원칙과 기준도 없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로비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대북정책이 있어야 한다. 대북정책의 전환과 관련해서 8.15 경축사에 전향적인 제안을 담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했다. 흡수통일론에서 퍼주기론까지. 남북관계에서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말들만 골라서 했다. 몇 마디의 좋은 말들로 이런 말을 뒤집을 수는 없다.

대북정책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의지와 철학, 그것에 기반한 방법론을 포함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여전히 '부재중'이다. 대북정책을 외교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외교안보팀의 장관들과 책임 있는 당국자들 역시 능력이나 전문성보다는 '이념 프렌들리'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대북정책은 전반적인 국정기조와도 연관되어 있다. 모든 국내정치를 '친북좌파 척결'이라는 프레임에 고정해 놓은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어울릴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과연 올드(Old) 인지 뉴(New) 인지도 모를 '특이한 이념세력'과 거리를 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 개성 억류자 석방을 위해서는 '확성기'가 아니라 고통스런 성찰이 우선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통미봉남, 이명박 정부에 달렸다

통미봉남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사전에 통보를 받았는지, 협의를 했는지,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미 양국이 대북정책의 방향을 공조하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통미봉남이라는 말에는 한반도 정세를 북한이 결정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과연 현실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면 한반도 정세의 결정에서 한국의 의지와 노력이 훨씬 더 중요했다.

지금처럼 대북정책이 '부재중'이라면 몰라도,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하면 통미봉남은 없다. 남-북-미 삼각관계를 선순환으로 갈 것인지, 악순환으로 갈 것인지는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판단할 문제다.

북미관계는 나아질 것이다. 클린턴 방북은 워싱턴의 대북정책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자협상이든 다자협상이든 미국은 대화의 형식 부문에서 지혜를 발휘할 것이다.

클린턴-김정일 면담은 앞으로 북핵문제 협상이 시작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물론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대화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에게는 두 가지 현실 가능한 선택이 있다. 미국의 발목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대세에 소극적으로 순응할 것인가? 어떤 것도 쉽지 않다. 두 가지 모두 용기가 필요하다. 김영삼 식의 용기는 자제하기를 바란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엇박자는 식상하고 위험하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에서 대세에 순응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자기부정의 고통스런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시간'이다. 유 씨의 억류가 길어질수록 국민들의 인내심도 고갈 되어 갈 것이다. 남북관계 없는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외교적 고립은 돋보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진다. 벌써 1년 반을 잃어버렸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남북관계에서 '잃어버린 5년'이 예약되어 있다. 역사의 평가를 염두에 두어야 할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결단의 순간이다. 교양 있는 진지함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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