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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을 반대해서 뭘 하려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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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펙을 반대해서 뭘 하려느냐고?" [기고] 포장 속의 반민중, 군사주의 저지해야
아펙(APEC)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아펙 반대, 부시 반대 집회를 위해 부산에 내려와 있는 내 눈에는 부산시 전체가 아펙 홍보지로 도배된 것처럼 보인다. 정상회의장과 각국 정상들이 묵는 6대 호텔에는 청와대 경호원과 경찰, 군 병력에 의한 이중삼중의 방어막이 쳐져 있다. 지하철 역사에는 'APEC'이라고 써 붙인 모자를 쓴 공수부대원과 특전사 병사들이 돌아다니고, 육교의 현판과 주요 건물의 외벽에는 'APEC 개최 성공'을 기원하는 온갖 현수막들이 붙어 있다.

***노무현 정부의 주류 언론의 아펙 선전**

그런가 하면 전투기 60여 대를 싣고 다니며 평소에는 일본 요코스카 항에 정박해 있는 주일미군 소속의 키티호크 항공모함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부산 앞바다로 이동했다고 한다. 키티호크 호는 최신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이지스 체계를 갖춘 구축함과 공격 핵잠수함 1~2척의 호위를 받고 있다. 부시가 만약 이 항공모함에서 숙박할 경우에는 부산의 아펙 회의장까지 전용 수송기로 출퇴근할 거라는 추측성 보도도 나온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미 작년부터 앞으로 10년 만에 한 번 정도 찾아올 최대의 국제행사라며 APEC 회의 준비에 매진해왔다. 주류 언론도 이번에 아펙 회의를 유치한 것이 적잖은 경제효과를 가져다줄 거라는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올림픽과 아셈에 이은 코리아 업그레이드 기회', 'IT(정보기술) 강국의 진면목을 느끼게 할 기회', '부산의 도시 브랜드 가치가 급상승할 찬스'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아펙 반대 목소리는 그저 토막기사로 처리되거나 조금 부각된다 싶으면 '폭력시위 우려'와 같은 제목과 함께 실리기 일쑤다. 주류 언론은 은연중에 또는 노골적으로 아펙 반대 주장을 '명분에만 집착하는 운동권의 설득력 없는 공허한 메아리' 정도로 치부하려 애쓴다. 아펙 반대, 부시 반대 주장이 실제로 그러한 것인가?

***아펙의 공허한 언어 구사**

어찌 보면 APEC의 각종 회의에서 쏟아져 나오는 의제들과 정상회의 때 채택될 거라는 선언들이야말로 정말이지 공허하기 그지없다. 겉으로는 그럴싸한 경제교류 활성화, 조류독감 공동대처, 재난방지 같은 표현들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다 마찬가지다.

아펙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사이의 경제교류를 확대하자고 한다. 그런데 확대하자는 경제교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교류이며,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아펙은 아시아태평양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해 공동대처를 하자고 한다. 하지만 로슈와 같은 다국적기업으로부터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백신을 생산하기 위한 특허권 이용권을 부여받은 나라는 겨우 3개국뿐이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아무런 방도도 없다. 그런데 아펙은 다국적기업의 특허권을 보장하는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자고 한다.

***환경에 도전하는 아펙**

아펙 정상들은 허리케인과 쓰나미 같은 대형 재난에 대한 대응책도 논의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해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덮쳤을 때 부시가 취한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당시 부시는 약간의 구호자금을 보내 생색내기를 하고는 재빨리 중요한 석유 수송로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의 말라카 해협에 미해군 기지를 확보했다.

게다가 아펙은 대형 재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강제적 감축의무를 규정한 교토의정서를 무력화하는 시도를 해 왔다. 미국과 호주 주도로 한국, 일본, 중국, 인도가 참여한 가운데 지난 7월에 구성된 '아펙 기후변화 파트너십'이 바로 그것이다.

그럴 듯한 또 하나의 아펙 구호인 '인간안보'에는 시민적,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다. 특히 아펙의 '반테러대책기구(CTTF: Counter Terrorism Task Force)'는 화물 방어, 여행자 방어, 해양 방어, 비행기 방어, 사이버 안전 등의 원리와 방법들을 새롭게 짜야 한다면서 시민적,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들을 제안했다. 반테러대책기구의 활동에 관한 문서인 <테러리즘에 맞서 관광업을 보호하기 위한 최상의 안전․보안 대책>(2004년 10월)는 각국에서 경찰력과 법의 강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소상하게 밝히면서, 미국의 140여개 자치단체가 결사반대했던 미국의 '애국자법'을 대테러 법의 모범사례 중 하나로 꼽았다.

***이른바 '반부패 선언'의 본질**

이번 아펙 정상회의 때 논의할 의제들을 미리 점검하는 '아펙 고위관리회의'의 결과를 보면 18~19일 이틀간 열릴 아펙 정상회의에서 아펙 회원국 정상들은 '반부패 선언'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펙이 말하는 '반부패'는 공적 자산의 사유화와 기업규제 완화에 대한 민중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이데올로기적 용어다.

아펙의 용어법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부패=기업규제=정경유착'이니 '반부패=기업규제 완화 및 사유화=투명화'라는 것이다. 이는 곧 기업규제 완화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다국적기업들이 마음껏 활개치고 다니며 이윤추구 활동의 자유를 한껏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고, 그들에게 아시아 기업들을 사냥할 기회를 열어주자는 것이다.

아펙의 구호와 선언들은 이처럼 이중잣대 투성이다. 아펙의 기구 중 하나인 기업인자문회의(ABAC)의 일원이자 플루오르 그룹(Fluor Group)의 부사장인 로버트 프리에도는 아펙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부패는 아펙의 경제발달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부패는 기업의 숨겨진 세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플루오르 그룹은 이라크 전후복구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조지 부시에게 기부금을 낸 기업 리스트의 상위에 랭크된 기업이다. 그 덕분인지 플루오르 그룹은 이라크 전후복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우선입찰자로 미국 정부에 의해 지명된 5대 기업그룹에 끼었다. 이런 위선을 달리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기업인자문회의의 역할**

아펙 정상회의에 대기업들의 요구사항을 제출하는 '아펙 기업인자문회의'의 미국 사무소 역할을 하는 아펙내셔널센터(National Center for APEC)야말로 정경유착이 무엇인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기구는 이번 부산 아펙 회의에서 주요 압력단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뉴욕생명, 페덱스, IBM, 보잉, 나이키, 셰브론 텍사코, 스타벅스, 유노컬, 포드, 존슨앤드존스, 카길,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대기업 경영자들이 이사진을 구성하고 있는 이 기구에는 미국의 무역대표부와 국무부 등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아펙내셔널센터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미국의 기업들이 아펙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의미 있고 구체적인 결과들을 얻어낼 수 있도록 돕는 구실을 한다"고 버젓이 써놓고 있다.

아펙내셔널센터가 추구하는 정책 가운데는 서비스 질의 악화로 대형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른바 '공사협력체 방식(PPP, Private-Public-Partnership)'의 도입도 포함돼 있다. 이 PPP 체계의 대표적 사례가 영국 런던의 철도다. 그런데 런던의 철도는 사유화된 이후 대참사를 여러 번 일으킨 바 있다.

만약 한국에서 순이익 증가율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계 보험회사인 AIG생명 같은 기업들은 PPP 체계의 도입을 반길 것이다. 공적 보험이 무너지는 것은 곧바로 그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기업들도 PPP 체계의 도입을 반길 것이다. 만약 한국전력이 사유화된다면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한국의 전력도매시장에 진출할 길이 활짝 열릴 것 아니겠는가.

이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들로 이루어진 아펙의 포장 속에는 반민중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정책들이 가득하다. 그럴 듯한 포장을 통해 사람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는 아펙의 현란한 언어구사에 속지 말아야 한다.

***무역 및 투자 자유화의 길은 어디까지**

선진국의 경우 2010년까지, 개발도상국은 2020년까지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이룬다는 아펙의 '보고르 선언'을 이행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무관하다. 현재 좌초할 위기에 처한 세계무역기구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다시 순조로운 궤도로 복귀한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펙은 이번에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을 위기에서 구해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펙은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라는 이름으로 공공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키는 사유화 정책, 이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환경을 파괴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할 기업의 자유, 기업들에게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규제완화 정책의 길을 끈질기게 제시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번에 채택될 부산 로드맵은 관세가 0퍼센트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무역자유화가 100퍼센트 이뤄졌다고 할 수 없다는 새로운 인식을 담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펙이 추구하는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가 단지 관세율 낮추기에만 머물지 않을 것임을 알게 해주는 발언이다.

***아펙과 제국주의 강국들 사이의 갈등**

어떤 이들은 말한다. 아펙은 구속력도 별로 없고 스스로 내세우는 경제적 목표들도 실제로는 별로 실현하지 못하는 기구라고. 이는 전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아펙이 그런 측면을 갖고 있다면 왜 그런 것일까? 이는 아펙이 표방하는 '열린 지역주의(Open Regionalism)'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고, 이 개념은 다시 미국과 일본의 속셈과 관련이 있다. 열린 지역주의라는 개념은 1988년에 최초로 아펙 설립구상을 발표한 일본 통산성이 맨 처음 사용했고, 당시의 일본 정부와 기업주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에 일본 산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일본 중심의 지역블록을 형성하고자 했지만 바로 그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북미지역에 갖다 팔아야 했기에 아펙이 폐쇄적인 지역블록으로 비쳐서는 곤란했다.

아펙 내 강대국들 사이의 갈등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에 열린 1998년 11월 콸라룸푸르 회의에서 극에 달한 바 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벌인 심각한 갈등과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와 미국 앨 고어 부통령 사이의 설전 때문에 주요 의제들에 대한 논의가 표류하기도 했다. 또 1998년에 미국과 일본이 무역장벽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었을 때 일본은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지지를 등에 업고 미국에 맞섰고, 미국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지지를 받으면서 일본과의 입장 차이만을 계속 확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당시 일본은 더 이상의 시장개방 논의를 중단하자고 했고, 이로써 아펙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구가 됐다.

***부시, 한국의 이라크 파병, 아펙의 삼각관계**

아펙이 새롭게 활력을 얻은 계기는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2001년 상하이 회담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상들은 '테러에 반대하는 전쟁'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가 가장 가난한 나라에 미사일을 퍼부은 희대의 악행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그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지역에서 지지와 동의를 얻었다. 아펙이 미국의 전쟁을 뒷받침하는 도구가 된 것이었고, 부시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부시는 2003년 방콕에서 열린 아펙 정상회의에서 이라크 파병에 관한 세부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그는 정상회의 전후로 틈틈이 주요 나라 정상들과 단독회담도 진행했다. 이때 고이즈미는 부시를 따로 만나 일본이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서둘러 파병을 결정한 뒤 방콕으로 날아가 부시에게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 소식을 선물로 안겨줬다. 이번 아펙에서는 또 어떤 결정과 논의들이 이뤄질 것인가?

아펙의 본질이 이와 같다면 아펙에 반대하는 대중행동은 너무도 정당한 것이다. "아펙에 대해 반대해서 도대체 무얼 하려고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한테 나는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서"라고 답변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충분한 근거와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펙 반대, 부시 반대 진영에서 18일 열게 될 여러 부문별 집회들과 오후에 열릴 범국민대회는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서" 우리가 외쳐야 할 목소리들이 집중될 소중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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