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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희망버스가 넘어야 할 담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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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희망버스가 넘어야 할 담장은… [4차 희망버스, 다시 시작·④] 김진숙이 잊혀지고 있다
4차 희망의 버스 준비도 거의 다 마쳐졌다. 수고하는 사람들의 핼쓱한 얼굴들을 보며 마음이 짠하다. 대부분 십 수 일씩 잠을 설친 사람들이다. 지난 5월, 처음 희망의 버스를 제안하고 부터니 벌써 근 넉 달이 되어간다. 집 나온 지도 두 달 반. 근 하루도 그냥 쉬어본 적이 없다. 함께 하는 벗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우리는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했다.

그곳에 원래부터 살던 사람 하나가 있었다는 듯이

나도 이렇게 한참의 세월이 흐른 듯 아득한데, 김진숙 선배는 얼마나 됐을까. 230일까지인가는 가끔 세 봤는데, 언제부터인가 무감해진다. 마치 그곳에 원래부터 살던 사람 하나가 있었다는 듯이. 크레인 위에서도 사는 어떤 종적이 있었다는 듯이. 마치 무슨 저 하늘의 별을 보듯, 달을 보듯, 그래 저 외계에 어떤 토끼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는 듯이, 원래 그랬다는 듯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는 그렇게 이 세계에서 지워져 있는 사람이다. 우리 곁에 있는 듯하지만 정작 이미 없는 사람이다. 이미 생과 사의 경계도 지워져 버린 사람이다.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의 벽 아래에서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 어떤 난쟁이다. 자본의 가치 외에 어떤 것도 현실에서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의 체념 속에서 소멸되어가는 꿈의 종족이다. 노동자, 끊임없이 저항해보지만 생 자체가 도태되어가야 하는 슬픈 종족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조용할 수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렇게 잊혀져가고, 소외되어가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 역시 그렇게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그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모두 자기 안에 김진숙을 두고 있다. 굳이 부산 영도의 85호 크레인까지 쫓아가지 않아도 내 안에서, 내 가족들 안에서, 내 벗들과 친지들 안에서 더 처참한 고립과 극단을 보고 있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노동과세계(이명익)

사실 그렇다. 그만 외로운가. 그만이 고독한가. 지금 그만이 어떤 생의 백척간두에 서 있는가. 그만이, 그의 동료들만이 결사적인가. 쌍용차는, 발레오는, 콜트-콜텍은, 재능은, 현대차비정규직은, 너는, 나는 어떤 생의 벼랑 위에 서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안녕한가?

한국의 재벌들과 자본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자산의 규모가 800조 원이라고 한다. 3만 원 때문에, 5만 원 때문에, 100만 원 때문에 우는 사람들과 가족들이 있는 세상에서 묵혀둔 사회적 잉여가 800조 원이라고 한다. 수탈당한 모든 이들의 피눈물이 800조 원이라고 한다. 주택보급율은 이미 100%를 넘었지만 이 땅에 태어나 집 한 채 같지 못한 부평초 인생들이 수천만 명이다. 그들 모두가 이 세상에서는 외부세력들이다. 쓰레기 인생들이고, 일회용품 인생들이다. 자신의 모든 열망과 꿈과 노동을 빼앗기기 위해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울고, 불고, 사정하고, 읍소하고, 힘 모으고, 기대하고, 좌절하며 생을 모색하지만, 딱 그만큼일 수밖에 없는 불행한 인간가족들의 시대. 우리 서로가 누구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고개 숙인 조남호 회장, 그리고 희망버스

우리는 이기기도 했지만, 지기도 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저 먼 부산 영도의 작은 크레인 하나를 세계적인 노동자민중들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폭력과 착취의 세계화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작은 저항을 만들어냈다. 오늘은 독일대통령이 김진숙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하고, 브라질 교포이며 국제인권운동가로 세계 25개국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들어서 제8회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1)에 초청되어 온 이아라 씨 얘기에 따르면 전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고도 한다.

재벌총수는 절대 국회청문회에는 나가면 안된다고 전경련과 경총이 나서서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로비에 들어갔지만, 결국 조남호는 14시간 동안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말도 못하고, 제 스스로는 생각지도 못하는지 커닝페이퍼를 훔쳐보며 진땀을 흘렸다.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 것을 두려워해, '납득할 만한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요건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쥐새끼처럼 국내에 숨어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 숨어있던 시간동안 누구를 만났을까. 어떤 전략회의와 전술회의를 누구와 했을까? 어떤 민중의 곳간을 갉아먹는 쥐들이 모여서 모의를 했을까?(미안하다. 나는 쥐라는 생명들까지도 그들에게 대입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6월 27일, 합법적인 채길용 집행부가 노사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주면서 모든 대한민국 언론방송이 한진중공업 노사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우리는 단 한 번의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희망의 버스를 출발시켰다. 법적 주체인 노사합의라는 법적 테두리를 넘어, 15만 금속노조, 80만 민주노총이라는 한계를 넘어, 17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반사회적 노사담합을 깨고, 사회적 무효선언까지 나아갔다. 1차에 실물의 담을 넘었다면, 2차에서는 합법을 가장한 죽음의 합의틀을 넘었고, 3차엔 보수·수구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라는 담장을 훌쩍 넘었다.

휴가철을 이겼고, 폭우를 이겼고, 이 여름의 폭염을 이겼고, 97개 중대, 84개 중대와 10톤의 파란 최루액을 이겼고, 19년만의 소환장을 받은 백기완 선생과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영혼인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240명의 소환장을 이겼고, 몇 번의 체포영장을 이겼고, 전방위적인 보수언론들의 구시대적 색깔 입히기 포화도 이겼고, 본질을 벗어난 희망버스 대 부산시민이라는 지역감정 조장도 이겼고,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이슈도, 수해라는 아픈 시간도 이겼다. 문화운동을 비롯한 모든 부문들이 지지 않았다.

▲ 3차 희망버스 참가자 1만 여명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근처에서 풍등을 날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김진숙은 다시 가을과 겨울을 이야기하고…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이기지 못했다. 김진숙은 다시 가을과 겨울을 이야기하고 있고, 조남호는 어디에선가 잠깐의 쪽팔림도 별 거 아니네 하며, 어디에선가 깔깔깔거리며 양주를 마시고 있을 것이며, 국회는 다시 무력감에 빠졌으며, 20일 희망시국대회는 초라해졌으며, 우리는 지난 몇 달, 잃어버렸던 일상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10만을 못 만들었으며, 차벽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정리해고 철회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총체적(이런 꿈도 꾸지 않았지만)인 전망도 제시하지 못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 반값등록금, 4대강, 한미FTA, 언론노조 총파업, 명동 마리, 롯데손보,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정리해고 반대의 물결이 공동투쟁에 나선 쌍용차와 콜트-콜텍과 발레오와 재능으로 충분히 연결되게 만들지 못했다. 사람인지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 아직도 만 하루가 남아 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동지들을. 모든 이들의 모든 삶을, 애환을, 눈물을, 미안함을, 잠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사람들을, 나도 그곳에 가고 싶지만 지나온 모든 세월이 마음에 밟혀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외로운 거리를 헤매일 사람들을, 오늘 다 같이 못해도 내일 다시 함께 할 사람들을. 깃발이 없어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그를, 그녀를, 그 사람을, 그 친구를, 만나게 될까봐, 그 자리에서 애써 내가 외면해 온, 잊고자 노력했던 어떤 나를 다시 만나게 될까봐 어디에선가 혼자 소주 한 잔 기울릴 사람들의 그 뼈아픔을 믿는다.

그리고 미안하다. 나의 아내에게. 내가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에게, 이기적인 남성들 때문에, 욕망덩어리들 때문에, 영혼의 상처를 입고, 짓밟히며 살아가는 여성분들에게, 내가 본의 아니게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여린 생각들에게, 다른 상상력들에게,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외로워진 철거민들에게, 하루도 노점을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루도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운짱들에게, 누군가 먹고 간 삼겹살 판을 씻으며 오늘은 얼마를 벌었나를 생각하며 가물거리는 눈으로 잠든 아이의 뽀얀 얼굴을 보고 있을 사람들에게, 파고다의 늙은 비둘기 할아버지들에게까지도 미안하다.

우리는 그 모든 분들을 다 초대하지 못했다. 그 모든 사랑을 다 모으지 못했다. 그 모든 해방감을 다 모으지 못했다. '다른 세상을 향한' 한날 한시의 웃음들을 모으지 못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또 한번의 아름다운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4차 희망버스 행사는 광화문과 청와대 뒷산에서

그리곤 27일, 전국에서 희망의 버스들이 서울로, 서울로 올라온다. 모든 일상으로부터 나온 사람들이 상기된 얼굴로 광화문 네거리를 향해 나올 것이다. 나와서 김진숙과 같은,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슬픈 종족들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사람들은 이야기 할 것이다. 1%도 안되는 이들의 너무도 배부른 오늘을 위해 언제까지 모든 이들이 아파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해방의 춤과 노래를 부를 것이다.

28일날 아침엔 '세상을 여는 아침산행'이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귀 막힌 대통령을 향해 국민의 소리, 노동자들의 소리를 전하는 날이다. 무슨 시위가 아니라 지역 희망의 버스 탑승객들에게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중의 하나인 인왕산 산행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곳이 수도 서울이고, 저 아래가 우리의 종복인 대통령이 일하는 곳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 땅의 주인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라는 것을 보여주는 날이다. 당신은 무슨 과거의 왕조가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마름일 뿐임을 확인시켜주는 날이다. 재벌 한두 명을 지켜주기 위해 국민들을 향해 차벽을 세우고, 최루액을 쏘아대는 게 무슨 국민들의 정부냐고, 그렇게 할 거면 그만 내려와 무슨 재벌기업 사장이나 하라고 할 참이다. 치졸하게 평화로운 산행조차 막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산행할 국민의 권리마저 막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우리 시대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상징이 된, 김진숙을 살리자는 마음 하나, 사회적 죽음에 다름아닌 정리해고는 철회되어야 한다는 마음 하나, 온 사회가 나서서 다른 세상에 대해 이제는 이야기해 나가야 한다는 마음 하나,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 들고 오시면 된다.

광화문에서 뛰어놀 건강한 몸 준비, 비가 오더라도 240여일째 눈비를 맞으며 싸워 온 김진숙과 그의 85호크레인 농성자들을 생각하며 나도 하루쯤 감기 걸릴 생각하고, 평화의 거리, 해방의 거리에서 가난한 몸 하나 뉘여주겠다는 연대의 마음 하나, 피곤하겠지만 지역에서 올라온 소중한 사람들 외롭지 않게, 중간에 빠지지 않고 마치는 시간까지 함께 있어주겠다는 따뜻한 마음 하나면 된다. 양초와 우비를 챙겨주시면 좋고, 산에 올라가 우리의 소리를 신나게 전할 모든 소리나는 물품 한 가지씩이면 그만이다. 좋은 산행코스들을 알아 오시면 더욱 좋다. 희망의 버스가 빵구가 나 덜컥거리지 않게 행사 준비를 위한 참가비라 생각하시고 한 분도 빠짐없이 운영기금 모금에 참여해주시면 오케이다.

ⓒ프레시안(최형락)

4차 희망버스에서 넘어야할 담장은…

산행을 마치고는 한진중공업 서울 본사 앞에 모여 조남호 회장을 규탄하고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 어쩌면 기운이 빠질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대답없는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들, 조남호 회장을 생각하며 무력감과 분노가 치밀 수도 있다. 어쩌면 저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가 냄비처럼 식는 것일 수도 있다. 4차에서 우리가 넘어야 되는 담장은 이것이지 않을까.

부탁컨대 더 많은 분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희망의 산행으로 나와주시면 좋겠다. 더 큰 힘으로 5차 희망의 버스를 결의하고, 민주노총과 금속은 총파업을 결의하고, 그렇게 그렇게 모아진 힘으로 그때까지는 정말 저 잊혀져가는 사람, 김진숙을 우리 곁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김진숙을 우리 힘으로 못 내려오게 한다면, 차라리 중남미의 어떤 독재자들 마냥 이명박 대통령을 임기 안에 끌어내린다는 마음으로, 박근혜든 정부·여당이든 가리지 않고 사회적 심판의 장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마음으로, 이 추악한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세상을 허물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용기를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4차 때 최대한의 힘이 모아져야 한다. 저들의 무시와 탄압을 넘어 마지막 싸움으로 힘차게 달려 갈 수 있게, 부탁드린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가는 이 민주주의의 광장을 들녘처럼 넓혀주시기를, 광야처럼 펼쳐 주시기를, 산맥처럼 세워주시기를 모든 분들게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물론 우리는 그 수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신나게, 내일을 믿고 그 길로 달려 갈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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