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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 정상은 아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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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여기 다 정상은 아닐 거예요" [美行] '투쟁 387일'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이 기사는 "미행(美行) :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지역 순회 사업, '미디어 게릴라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다'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미행'은 블로거, 만화가, 노동자, 작가 등 다양한 미디어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 노동의 현실을 고민하는 프로젝트 팀이다. 미행의 지역 순회 사업은 진보신당과 함께 진행된다.

늦었다. 11시 30분에 도착하기로 했는데, 내가 부평의 GM대우 정문에 도착한 것은 10분 지난 40분이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여럿이 움직이는 일이라 혹시나 나 때문에 차질이 생길까 겁을 먹고 일단 전화부터 했다. 길안내를 해주셔야 할 농성노동자가 위치를 묻더니 "정문에 내리셨네요. 여기는 서문이거든요. 거기서는 한 번에 오는 차가 없는데……그냥 택시를 타시는 게 제일 빠를 겁니다" 한다. 공장을 절반 정도 돈 택시 요금은 2100원. 한 바퀴 돈다면 4천원이 넘는 돈이니, 어렴풋하게나마 공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서문 바로 앞에 내리자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GM대우 현장노동자들과 뻘쭘하니 함께 서 있게 되었다. 맞은편에 '투쟁 387일째'라는 날수와 구호가 씌어진 퍼런 천막이 버티고 서 있다.

두 개의 천막, 안과 밖

▲ GM대우 노동자들의 농성은 1년을 넘어서고 있고 회사는 여전히 면담조차 거절하고 있다. ⓒ미행
밝고 말끔한 공장 정문에서 건너다보는 천막은 전염병 균이라도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우중충하고 음험해 보인다. 길을 건너가는 현장노동자들의 반응도 스산하다. 천막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천막을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천막 입구를 들치고 들어가자 깔끔하고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기륭전자 앞 농성장의 휑한 풍경에 익숙해져 있는 눈에는 TV, 컴퓨터, 시계, 달력이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천막이 신기해 보일 지경이었다. '맑은 콧물 감기, 목이 많이 붓는 감기, 감기몸살'로 나누어 적어 놓은 감기약 상자가 이채로웠다. 이 천막 옆에도 약간 작은 천막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몇 분이나 계시냐고 물었더니, 생계투쟁을 하는 사람들 빼고 아홉 명이 돌아가면서 천막농성에 결합한단다. 속없는 나는 "이야, 기륭에 있다가 여기 오니까 굉장히 부유해 보여요" 하고 감탄했다. 옆에 계시던 분이 "사실은 이게 안 털려서 그래요. 일 년 넘게 침탈당한 적이 없으니까 물건들이 조금씩 쌓여가서…" 하고 말을 흐린다.

"회사 측에서 일 년이나 안 치고 가만 놓아뒀어요?"

"힘이 없다고 회사 측에서 무시하는 거죠. 비정규직 지회가 서른 두 차례나 교섭 요구를 보냈는데 한 번도 응한 적이 없어요."


할 말이 없었다. 기륭에 주로 가던 나는 멋도 모르고 깔끔한 천막을 부러워했지만, GM대우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침탈당하고 뭉개져도 어쨌거나 회사와 교섭을 할 수 있었던 기륭전자 분회 노동자들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착잡한 마음으로 작은 천막으로 들어가 지회장과 조직부장님, 진보신당 인천시당 노동국장님과 약식 인터뷰를 시작했다.

투쟁의 시작은 외주화

"우선 어떻게 투쟁을 시작하셨는지,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경과가 어땠고, 회사 측 반응은 어떤지……."

매우 민망하게, 제대로 된 인터뷰어라면 기초 조사를 통해 다 알고 왔어야 할 일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다. 세 분이 번갈아가며, 서로 보충도 해가며 대답해 주신다.

"2001년 대우자동차가 부도난 다음 2003년 정상가동이 시작됐습니다. 그때부터 비정규직을 썼는데, 정규직은 메인 라인으로, 비정규직은 서브 라인으로 돌립니다. 전부 합치면 비정규직이 2300명 가량 됩니다. 청소나 경비 같은 파견직, 용역 빼고서도요. 이 2300명 비정규직이 노조의 필요성을 거의 다 공감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옆에서 정규직 노조의 활동을 보기도 했고, 워낙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기본급, 수당, 노동 강도 같은 것이 피부에 와 닿게 차이가 나니까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건 그야말로 인생이 바뀌는 일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지 않아요. 업체별로 많이 뽑아봤자 열 명 정도?

처음 투쟁을 시작한 것은 자동차 생산공정 일부를 바깥으로 빼는 외주화 때문이었어요. 외주화가 시작되면 똑같이 일을 해도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 환경이 저하되거든요. 비정규직에게는 해고나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작년 9월에 노조를 만들었는데, 만들고 나서 회사 측에서 노조 지도부와 핵심 조합원 35명을 집단으로 징계 해고했어요. 그 다음에 투쟁을 하면서 조합원 일부가 복직하기는 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해고된 상태고요. 비정규직지회 간부 중심으로 천막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주요 요구 사항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외주화 저지. 둘째, 비정규직 지회 인정.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보장이 안 되고 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서른 두 번이나 교섭요구를 했는데 단 한 차례도 교섭이 안 됐어요. 세 번째는 투쟁 과정 중의 해고자를 전원 복직시키라는 겁니다.

비정규직 노조에 대해서 회사측에서 어떻게 대했느냐……. 노조를 만들었으면 만들었다고 알리는 선전전을 해야 하잖아요. 선전전 진행 순간부터 원청 노무팀과 하청 관리자들이 치고 들어왔어요. 이 사람들만 해도 이삼백 되는데, 노동자들은 모여 봤자 이삼십 명이거든요. 십대 일인데 수적으로 상대가 안 되죠. 그리고 핵심조합원 징계하고, 조합원이 많은 업체는 위장폐업을 해서 해고시켜 버리고. 이런 식으로 핵심 조합원을 공장 밖으로 쫓아내는 전술을 구사했어요. 그런데 쫓겨나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이후에 천막이 철거된 적은 없어요. 지회가 현장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 무시하겠다는 거지요."

"정규직 노조하고는 협력이 잘 되나요? 서로 어떤 부분을 협력하면 좋을 것 같은가요?"


이번에는 예민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모든 비정규직 노조의 뜨거운 감자,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다. 아니나 다를까, 세 분의 얼굴이 난처해진다. 한 분이 마이크를 들고 입을 벙긋벙긋, '삐이- 삐-'하며 제리 스프링어 쇼 흉내를 내는 바람에 다들 웃기는 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했다. 결국 세 분이 번갈아가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서운한 부분이 있죠. 집행부의 결합하려는 자세라든가, 동지로서의 예의 같은 부분들이 그렇습니다. 상견례나 지원방문 오는 것도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정규직 노조가 연대를 결정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하면 영향력도 있고, 투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텐데요."

▲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화제를 외면한 채 바삐 걸어가는 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은 과연 자신들의 믿음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행

가동률 30%면 정규직도 잘린다

말씀을 너무 어려워하는 것 같아 냉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질문도 만만한 질문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GM대우나 자동차 업계라는 한정된 틀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었다.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퍼지면서 비정규직 쓰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고 '가뜩이나 어려운데 노사분규하면 안된다'는 공세가 더 심해질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한 대응책이나 대응 논리가 있나요?"

이것도 역시 몇 차례 서로 떠넘기다가 가까스로 대답이 나왔다.

"회사가 절대적으로 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자들은 작년에 10% 이윤을 냈다가 올해 7-8% 내면 회사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경쟁에서 지면 도태되는 것이라는 논리죠.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이 만들어내는 논리기도 하고요. 사실 노동자 입장에서는 1929년 대공황 때와 같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가 안 팔려서 쌓여 있다면, 왜 이윤을 낮추어 싸게 팔면 안 되는가? 정부에서 기업의 무한 이윤추구에 개입해서 최소한 노동한 만큼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왜 안 되는가? 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우선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가?'

하지만 이건 거시적인 이야기고요, 당장 노동현장에서는 GM대우라는 개별 회사의 독단적 행보에도 대응하기 벅찬 게 사실입니다. 원래는 10월 임단협 끝나고 연말까지 생산계획이 꽉 잡혀 있었어요. 특근 잔업이 가득 차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특근, 잔업이 없어지더니 휴업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게 신차 개발이 없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내년 3월에는 공장 가동이 30% 선에 머물 거라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현장에서는 GM대우 1400명 구조조정설이 있고요. 이게 다 회사 측에서 발표하거나 말을 흘리는 건데, 비정규직 지회가 어떻게 항의하거나 대응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속도로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어요.

97년 IMF 이후 2008년까지 10년 동안, 현장에는 비정규직이 해고의 방패막이가 되고 일단 정규직은 잘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믿음이 통하지 않게 되었어요. 공장 가동 30%면 비정규직뿐만이 아니라 정규직도 잘릴 수밖에 없지요. 현장에서는 이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서도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비정규직-정규직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온 겁니다.

GM대우 정규직 노동자가 이런 상황에서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과거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힘든 과정에서 느낀 피로감과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생각하는 설마 심리가 있습니다. '아, 또 싸워야 해? 우리가 아니라 비정규직이 잘릴 텐데?' 이런 거죠. 아까 회사의 행보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내년 1월 5일까지 휴업을 하겠다고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렸어요.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정규직 노조가 항의 없이 그냥 그걸 받아들여버렸어요. 휴업을 하더라도 정규직에는 영향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투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일단 현장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비정규직이 잘리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으면 안 된다. 다음은 우리다'라는 흐름이 생겨난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의 실절적 계기가 생겨날 수 있을 겁니다. 당장 저희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 우선해고 반대, 일방적 인원감축 반대, 기간산업 공기업화 등이 발의되는 것을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막막한 이야기에 가냘픈 희망이라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답답하기만 하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 있는 사람 다 정상은 아닐 거예요"

물어볼 것은 참 많기도 했고 별로 없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자세히 물어본들 고작 세 시간 남짓한 인터뷰 가지고 387일의 세월과 그 이전부터 켜켜이 쌓여왔을 노동자의 억울함을 녹여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뷰를 당하는 쪽에서도 아무리 속속들이 이야기한들 끌려 나가고, 해고당하고,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기대하고 실망하지만 체념할 수는 없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을 다 말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입장에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어쩌면 가혹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제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연대 모임 '함께 맞는 비'에서 운영진을 맡고 있는데, 특히 기륭전자분회와 자주 결합해요. 그런데 기륭전자 사측에서는 방송을 통해서나 기자회견을 통해서 현장농성하고 투쟁하는 것을 마치 놀면서 돈 내놓으라는 것처럼 비하했는데요. 직접 투쟁하시는 입장에서 말씀해 주세요.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의 생활과 지금 생활을 비교해 보면 어떤가요? 정말 노는 것 같은가요? 힘들다면 뭐가 제일 힘드신가요?"

이 말에 지회장과 조직부장님 얼굴에 씁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힘든 질문이라고 서로 떠넘기고 '아, 이거 녹화 안 되죠?' 하고 장난스레 확인하던 때와는 다른 씁쓸함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답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살짝 빠져 있었다.

"일단 여기 환경을 말씀드리면, 전기와 물이 없어요. 그래서 식사를 만들어 먹지 못해요. 식사는 해고당한 후에 노동사목에서 취사를 했는데, 그쪽도 재건축 들어가면서 작년 12월부터는 취사를 할 수가 없어요. 이 앞에 있는 조합원 자취방에서 점심 한 끼 정도 어떻게 해결하고, 금속노조 인천지부에서 신세도 지곤 하죠. 주머니 사정이 빤하니까요.

일과라면……저희가 3조 교대로 농성합니다. 한 조가 천막에서 자고, 두 조가 집에 들어가서 자는 거죠. 출근 전에 일어나서 7시 15분부터 50분까지 선전전을 하고, 수요일에 정기 집회를 해요. 2주에 한번 정도 해고자 토론을 하고, 노조유인물을 배포하고요. 일정이 없으면 점심 먹고 한두 시간 족구를 하는 정도? 힘든 건 농성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 먼저 말 붙이는 일이 적어진다는 거예요. 일부러 말하지 않으면 말하기가 싫어져요. 모르긴 몰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정상은 아닐 거예요."


그렇다.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이라도 강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터이다. 시민단체 상근자들이나 해고노동자들에게서 우울증을 앓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정상은 아닐 거예요.'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처연하다. 내가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는 사이 이야기는 앞 다투어 이어진다.

"공장에서 일할 때는 일 자체는 힘들어도 일단 규칙적이었죠. 비정규직 딱 한 명 먹고 살 만한 임금이기는 해도 돈은 제때 들어오고, 저 같은 경우에는 혼자 사니까 넉넉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살 만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리고 아무리 추워도 자기 집에서 자는 것과 천막에서 자는 건 완전히 달라요. 몸 버리는 게 하루하루 느껴져요.

가족들에게서 위로를 받거나 이해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그런 스트레스에 큰 몫을 하죠. 집에 아예 안 알린 사람도 있고, 저는 철탑 고공농성 때 티비에 나오는 바람에 딱 걸려서, 부모님께 끌려 내려왔어요. 또, 해고 전에는 집에 일정 정도 송금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못하니 당장 티가 나고, 집에서는 그런 거 계속하지 말고 다른 데 가라고 반대를 하고 눈치를 줘요. 정당성이 우리에게 있다는 신념으로 버티기는 하는데……힘들죠, 아무래도."

"일할 때는 삶의 안정성이 있단 말이에요. 밥 세 끼 먹고, 일하고, 퇴근 후에는 얼마 안 되나마 자유 시간 있고. 해고 후에는 그런 규칙적인 생활이 없어요. 갑자기 서울에서 야간 촛불 집회 있으면 가서 끝까지 있어야 하고,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우리도 몰라요. 거기다가 아까도 말했지만 체력, 가족과의 관계, 경제생활, 뭐 정상적인 게 하나도 없는 거죠. 이런 상황을 버티는 건 자존심 하나, 그리고 여기가 밀리면 다른 곳도 밀린다는 절박감이에요.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투쟁이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한겨울에 한강에 몸을 던지고, 백일 가까이 단식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가요? 하지만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절박감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황망히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시민 입장에서 연대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요? 비정규직 문제에 힘과 도움을 주고 싶어도 집회에 나가는 건 낯설고 싫은 사람들도 많거든요. 과연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알면 그런 시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현장의 답변이야말로 '함께 맞는 비'의 운영진으로서 가장 알아야 할 것이기도 했다. 어려운 대답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일단은 관심이죠.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대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농성이나 비정규직 투쟁을 하면 많이 외로워요. 그리고 이렇게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직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대해 잘 몰라요. 관심이 연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과 비정규직의 연대라고 하면 약간 이상해요. 시민 중에서도 비정규직이 많고, 비정규직도 다 시민이잖아요. 그리고 연대라고 하면 이해와 요구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결속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놓여있는 처지는 다르지만 똑같이 착취당하고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연대라고 하면 보통 집회 참석이나 모금, 물품 전달 같은 활동을 많이 생각하세요. 물론 다 중요한 것들인데, 그 아래 깔려 있는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호흡하고 생활하고 투쟁하는 감각이랄까요."


▲ 추운 날씨 속에서 촛불은 더욱 각별하다. ⓒ미행
내수를 살리자, 어떻게?

인터뷰를 마치고 얼마 안 있어 GM대우 서문 앞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그날은 GM대우 집중 투쟁의 날이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투쟁지원을 온 노동자들의 추위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보인다. 가까이 있는 대우자판 노동자들, 반가운 기륭분회 노동자들, 낯익은 얼굴과 낯선 얼굴들이 촛불 빛을 받으며 어둠 속에서 피어났다. 추위에 어깨를 옹송그리고 출근하는 야간조 노동자들은 공장 안으로 총총걸음을 재촉하지만, 이미 예고된 휴업과 30% 가동설을 품고 있는 공장은 노동자들을 맞아주는 따뜻한 일터라기보다 어둠 속에 도사리고 그들을 집어삼키는 심연 같았다.

이렇게 '미행' 팀과 함께 GM대우에 간 것이 19일 수요일, 그리고 인터뷰를 정리하려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이 일요일이었다. 뉴스와 경제신문들에서는 세계 각국이 내수 부양대책에 나섰다, 울산 현대차 울산 공장이 주말 특근을 없앴다, 중국과 일본이 내수 진작을 한다 등의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그러나 내수가 과연 부자들 세금을 줄여주고 부동산 값을 올려서 진작되는 것이었던가. 노동자, 서민, 근로대중, 뭐라고 불러도 좋지만 실제로 일하고 생필품을 사서 쓰는 사람들이 받을 만큼 돈을 받고 주머니를 푸는 것이 내수 경기가 아닌가.

9월 초만 해도 870만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이제는 900만 비정규직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 석 달 만에 30만 명의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나라에서 내수 진작을 위해서 투기지구를 해제하고 종부세를 완화한다? 순간 '모르긴 몰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정상은 아닐 거예요' 하던 말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그러나 그 '여기'는 GM대우 앞의 작은 천막 공간이 아닌, OECD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비정규직 수치와 차별대우를 용인하며 내수가 진작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사는 이곳 대한민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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