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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가네모또(金本)' 만들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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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가네모또(金本)' 만들 순 없잖아요" [조선학교 이야기③]일본이 차별한다고? 한국은 어떤데…
2005년 7월에 이어 지난 23일 두 번째 찾아간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 2년 전처럼 송현진 교장이 직접 버스를 운전해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송 교장은 학교 통학버스를 직접 모는 베테랑 버스 운전사이기도 하다.(관련기사 보기: 도쿄에서 60년간 지켜온 '가갸거겨고교')

송 교장의 표정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2년 전만해도 도쿄도의 학교 운동장 반환 소송 때문에 얼굴 전체에 불안한 기운이 가득했으나, 올해 3월 재판이 사실상 학교 측의 승소로 끝이 난 뒤라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가 이끄는 도쿄도 정부는 지난 2003년 말, 도쿄도 소유인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운동장 부지를 반환하고, 4억 엔의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 밝은 표정의 에다가와 조선학교 어린이. 아이들에게 운동장을 지켜줬지만, 이제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의 학교에서 다니게 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프레시안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강제징용돼 일본으로 끌려온 뒤 황무지로 내쫓겨 땅을 개척해 정착한 재일조선인들의 역사와 그들의 민족학교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3년 여의 재판 끝에 도쿄 지방재판소는 지난 3월 학교 측이 도쿄도 정부로부터 1억7000만 엔에 운동장을 사라는 화해권고를 내렸고, 학교와 도쿄도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며 운동장 문제가 해결됐다.

1600평 정도의 운동장이 1억7000만 엔(약 14억 원)이라면 결코 싼 값은 아니지만, 비싼 도쿄 땅값을 고려하면 시세의 1/10 수준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에다가와 주변 지역이 최근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는 등 신도시 개발이 되며 땅값이 치솟고 있음을 감안할 때 '승소'와 다름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민족교육 박대…브라질 학교도 100여 개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재판에서 학교 측 변호인단은 "조선학교도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교육기관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이 '화해권고'로 끝이 나며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받지 못한 것. 일본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나 조선학교는 요리학원이나 자동차정비학원 등에 적용되는 '각종학교'로 분류돼 정부로부터 어떤 교육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소송을 맡았던 김순식 변호사(재일조선인)는 "사실 화해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을 계속해 조선학교가 정식학교로 인정받는 판결을 받아내고 싶었다"며 "그러나 재판이 3년 넘게 진행되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불안해 하고 있었고, 재판을 계속해서 최고재판소까지 가기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실리 차원에서 화해권고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처럼 '헌법소원' 등을 통해 조선학교의 정식학교 인정 여부를 묻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없는 일본에서는 불가능하다.
▲ 힘겨웠던 재판 과정을 회고하며 눈물 짓고 있는 김순식 변호사(뒤)와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모로오카 야스코 변호사(앞)ⓒ프레시안

김 변호사는 "일본에는 헌법재판소가 없고 최고재판소가 그 역할을 하는데, 민족학교의 교육원을 묻기 위해서는 민사소송을 통해 최고재판소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을 통해 민족학교의 교육권을 얻어내는 투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조선학교가 '각종학교'라는 지위를 가진 것도 다른 민족들이 세운 학교에 비해 나은 형편이다.

변호인단의 모로오카 야스코 변호사는 "일본 내에는 80여 개의 조선학교 뿐만 아니라, 브라질 노동자가 크게 늘어나며 100여 개의 브라질 학교가 생겼고, 필리핀 학교 등 많은 민족교육기관이 있다"며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들 학교를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아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처해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인권법 연락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로오카 변호사는 "일본에는 외국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체계가 없어 외국인들이 심각한 차별에 노출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조선학교는 브라질 학교 등과 연대해 정식 교육기관 인정 운동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낡은 학교 건물…새 교사 건축 계획 착수

정식 교육기관 인정도 중요하지만, 학생 수를 늘리는 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운동장을 빼앗겨도 어떻게든 학교를 꾸릴 수 있지만, 학생이 없으면 운동장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운동장 소송' 이후 에다가와 조선학교에게 당면한 과제는 학교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다. 밝아진 송 교장의 미소 너머에는 '새 학교 건물'에 대한 근심이 서려 있었다.
▲ 이제 낡은 학교 건물을 새로 지어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당면한 과제이다. ⓒ프레시안

2년 만에 찾아간 에다가와 조선학교. 교실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가갸, 거겨, 고교'의 우렁찬 한글 발음 소리나 정겨운 우리 동요 노랫가락은 여전했지만, 낡은 책걸상, 휘어버린 농구골대, 테이프로 붙여 놓은 깨진 유리창, 녹이 슬어 흔들리는 철제 난간, 먼지 날리는 운동장, 시멘트로 된 세면대 마저도 여전했다. 오히려 변한 것이 있다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기 위해 받쳐 놓은 복도의 양동이만 늘어났다는 것.

지금의 건물은 1964년 지어졌다. 졸업생들과 학부모·동포들이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돈이 없는 사람은 노동력을 제공해 만든 건물이다. 한 때 학생수가 늘어나 중급부도 생겼을 때는 공간이 모자라 이과실, 음악실, 교장실 등의 공간을 추가로 지어야 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33년이 흘렀다. 1997년 중급부는 없어져 초급부만 남았고, 현재 전교생은 61명. 송 교장은 "최근 10년 동안 학생수 60명 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건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가 학생수 감소로 위기를 겪고 있는데, 그나마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현상유지'는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송 교장은 불안하다. 2008년도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는데 아직 5명밖에 못 모았다고 한다. 현재 1학년 학생은 8명. 현재 11명인 6학년이 졸업하면 학생수는 50명 대로 떨어지고 만다.

사실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조선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도 입학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 우선 학비 부담이 크다.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는 주로 학부모들이 낸 학비로 운영이 되는데 등록금이 월 2만 엔(약 15만 원) 가량이다.

또 현대화된 시설의 일본학교에 비해 조선학교가 너무 낡은 점도 학부모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학교를 둘러본 한국 측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대표단의 한 인사는 "마치 70년대 우리 학교를 보는 듯 하다"며 "세계 최고의 부국 일본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 학교 입구에 걸려 있는 신영복 선생의 글 '백두한라' 송 교장은 "아이들이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수학여행을 두 번 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조선학교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프레시안

탈이념 시대, 조선학교의 미래는


'총련계 학교'라는 것도 부모들을 고민케 한다. 6.15 공동선언 이후 조선학교는 교과 내용에 한국에 대한 내용을 대폭 추가하고 통일교육에 역점을 두는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3세들이 학부모가 되고 4세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탈이념'적 성향이 강해졌기 때문에 조선학교도 더디지만 이런 변화에 적응해가고 있다.

재일동포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일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일본아이로 기르지 않기 위해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한 재일동포 학부모는 "우리 아이를 가네모또로 만들 수는 없다"며 "일본인과 생김새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아이들이 우리말과 글을 배우지 않으면 아주 쉽게 일본인들에게 동화돼 간다"고 말했다.

'가네모또'(金本)는 '金'이 본명(本)이란 뜻이고, 광산김씨의 경우 '가네미쯔'(金光), 밀양박씨는 신라의 박혁거세에서 유래했다 해서 '아라이'(新井)라는 일본식 성으로 바꾼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인' 출신임을 감추기 위해 아예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바꿔 귀화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같은 '민족교육'의 수요에도 불구하고 민단계 한국학교는 도쿄, 교토에 각 1곳, 오사카에 2곳 등 4곳밖에 없다. 반면 조선학교는 일본 전역에 80여 곳이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려는 많은 동포들이 민단, 총련계를 막론하고 일단 초급학교는 조선학교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갈수록 나빠지는 북일관계에 따른 반북감정도 조선학교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가뜩이나 차별을 받는 와중에 북한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테러 위협을 받기도 한다. 사실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느닷없이 제기된 운동장 토지반환 소송도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새로 쓴 역사

그런 측면에서 최근 3년간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걸어온 행보는 큰 의미를 지닌다.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사정이 한국에 알려지며 각종 지원 운동과 모금이 활발해지는 등 그동안 한국에서 '관심 밖'이었던 조선학교 문제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는 이념을 초월해 동포 아이들이 떳떳하게 민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는 동포애가 크게 작용했다.

또 '재일조선인=북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깨는데 크게 일조했다. 도쿄에 관광을 간 한국 관광객들이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불쑥 찾아가 응원을 하는가 하면, 격려의 이메일도 일일이 답장을 하기 힘들정도로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송 교장에 따르면 "조선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며 찾아온 고려대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조금씩 재일조선인을 '재일동포'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 '라랴러려로료루류…' 1학년 국어시간. 아이들이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해 1학년은 국어 시간이 집중적으로 편성돼 있다. ⓒ프레시안

일본 시민사회와의 연대도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돕는 일본인들의 모임인 '에다가와 조선학교 도민기금'은 매년 400여 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학교에 300만 엔 가량의 후원을 해오고 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도 일본인들을 상대로 '조선어 강좌'를 개설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학교 부지를 '지진 대피소'로 내놓고 옆 공터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일본 시민사회의 도움에 보답하며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한국 국적이 아니라고 아예 선을 긋고 있는 남한 정부가 못하는 일을 남한과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돕기 시작했다는 소중한 경험을 쌓은 것이다.

에다가와의 위기극복과 개혁, 일본 전역에 확산 기대
▲ ⓒ프레시안

특히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일본의 중심부인 도쿄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는 물론 총련 조직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이끌 수 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이다.

한 재일동포는 "이번 에다가와 조선학교 사건으로 인해 총련에서도 많은 점을 배웠을 것"이라며 "폐쇄적인 분위기의 총련도 재일조선인 사회를 위해 이제 좀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운동장 소송'으로 폐교 위기를 넘긴 에다가와 조선학교. 눈 앞의 위기가 사라지자 새 학교 건물 건축, 학생 수 확대, 정식 교유기관 인정 등 그동안 멀리 있는 줄 알았던 위기들이 눈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이 위기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재일조선인 사회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홈페이지
민족교육 차별, 일본 못지 않은 한국 정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화교학교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는 등 일본 정부와 똑같은 차별 정책을 펴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는 2만여 명. 화교학교는 초등학교가 26개교, 중·고등학교가 4개교다. 그런데 이들 화교학교 출신들이 국내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선학교 출신 학생들도 일본 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그러나 '조선학교 학력 불인정은 차별'이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문부과학성은 지난 2003년 '대학 자율'로 책임을 대학에 떠넘겨버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조선학교를 차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계 '인터내셔널 학교'와 동경의 한국학교(민단계)는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해 교육비 지원 등을 하고 있지만, 조선학교는 북한이 '미수교국'이라는 이유로 정식 교육기관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9월 "한국 내에 있는 화교학교가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한국학교로 전·입학을 하려면 검정고시를 거쳐야 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교육부장관에게 화교학교의 학력 인정을 권고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대만에 있는 한국인 학교는 이미 학력을 인정받고 있고, 국제인권조약은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고유의 언어 및 문화 등을 향유할 권리를 천명하고 있으며 화교들이 화교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고 자기의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고 싶어 하는 소수민족의 바람"이라며 "이러한 인권을 존중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화교학교가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출신국가를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행위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화교학교와 더불어 새롭게 부각되는 문제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교육 문제. 이주노동자 규모는 2010년에는 100만 명이고 그의 가족들까지 합한 이주인 전체는 200만 명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민족' 사회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책은 거의 세워져 있지 않다. 아시아 민족을 차별하는 일본을 비난하는 우리지만, 그들보다 별반 나을 바 없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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