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포토스케치]"이것이 '우리학교'랍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포토스케치]"이것이 '우리학교'랍니다" <조선학교 이야기④ㆍ끝>에다가와학교의 6월
6월 23~25일, 도쿄 고토구 에다가와 지역에 위치한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에는 한국에서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도쿄도와 운동장 부지 소유권 재판을 벌여 14억여 원에 도쿄도로부터 운동장을 매입하기로 한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위해 한국에서는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지원모금)이 결성됐고, 이들은 5월부터 본격적인 모금활동을 벌여 1억여 원 가까이를 모아 1차 전달식을 가졌다.

토지매입비 14억 원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한국에서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인 후원이 이뤄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1차 전달식에는 수경스님, 오충일 목사,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 정희상 작가회의 이사장, 김용택 시인, 이정주 생협회장, 정신대문제 부산대책협의회 김문숙 이사장 등 '지원모금' 대표단 15명이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방문해 모금액을 전달하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둘러봤다.

<조선학교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이번에 방문한 에다가와 조선학교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봤다.<편집자>
▲ ⓒ프레시안

학교 입구 전경. 에다가와 지역은 원래 매립지로, 땅의 대부분은 도쿄도 정부의 소유이다. 하지만 1940년대 쓰레기 하치장에 불과하던 곳으로 쫓겨나 땅을 일구고 살아 온 재일동포들의 역사성을 인정해 이 지역 토지를 시가의 7%에 재일동포 및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게 불하(拂下)했다. 학교 건물이 세워진 자리도 당시 동포들이 돈을 모아 부지를 매입했다. 그러나 유독 '운동장' 만은 도쿄도 정부의 재정국이 아닌 '항만국' 소유라는 이유로 불하되지 않았고, 매입협상을 벌이던 도중 토지분쟁이 일어났던 것. 운동장을 지킨 오늘날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최대 과제는 33년이 지나 낡은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다.
▲ ⓒ프레시안

에다가와 지역이 매립지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진. 가운데 공터 부분이 학교이다. 이 지역은 쓰레기매립장은 물론 항만과 가까워 태평양 전쟁 시대 각종 군수공장이 몰려있었고, 미군 폭격의 표적이 돼 이 지역에 집중 거주하던 수많은 동포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 ⓒ프레시안

23일 토요일 오후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여자 아이들은 주로 농구를, 남자 아이들은 주로 축구를 즐겨한다고 한다. 학교에 체육관이 없어 가끔 인근의 일본 학교의 체육관을 빌려 수업을 한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본 김용택 시인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는 지구가 살아 숨쉬는 소리"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초등학교 2학년 담임만 30여 년째 하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 ⓒ프레시안

교무실에 붙어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 포스터. 일본 홋카이도 지역의 조선학교를 담은 이 영화는 국내에도 개봉돼 관객들의 감동을 이끌어내 화제가 됐다. 다큐영화인데다 조선학교를 다뤘다는 소재적 한계에 대한 예상을 깨고 10만여 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고, 지금도 대학이나 지역 문화회관 등에서 장기 상영되고 있다.
▲ ⓒ프레시안

<박치기2-러브앤피스> 2006년 국내에 개봉돼 인기를 끈 영화 <박치기>. 이 영화는 1960년대 말 일본 교토의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들이 주인공인 영화로 국내에 조선학교를 이해하게 하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박치기 2>는 도쿄의 에다가와 지역을 주무대로 촬영이 됐으며, 에다가와 조선학교도 등장한다. 학교에 전시된 촬영기념패. 국내에는 올 가을 개봉될 예정.
▲ ⓒ프레시안

에다가와 조선학교 인근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할머니를 만나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오충일 목사(가운데)와 수경 스님(오른쪽). 강제징용 이후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2세들이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고 3,4세들이 재일조선인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 ⓒ프레시안

흐뭇하게 1차 모금 전달식을 지켜보고 있는 에다가와 조선학교 1기 졸업생들.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해방 직후 승전국 국민이 됐다는 기쁨과 귀향의 설레임에 동포들이 만들었던 '국어강습소'를 모태로 1946년 개교됐다.
▲ ⓒ프레시안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돕는 일본인들이 기증한 통학버스 '미래호.' 도쿄 시내에도 조선학교가 많지 않아 우리말과 글을 배우기 위해 멀리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통학버스는 필수다. 그러나 최근 일본 내 대북감정 악화로 조선학교 아이들에 대한 테러 위협이 가해져 통학버스에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 했다고 한다. 송현진 교장의 바람은 다시 아이들이 늘어나 더 큰 통학버스가 필요하게 되는 것.
▲ ⓒ프레시안

1학년 학생들의 국어수업시간. 이번 시간엔 '라랴러려로료루류르리' 등 'ㄹ'에 대해 배우고 있다. 어릴 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일본어 환경에서 자라 우리말을 거의 못하기 때문에 1학년 수업은 국어 시간이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다. 다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동포들이 일본어투의 한국말에 익숙해져가고 있기 때문에 바른 국어교육을 위한 모국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 ⓒ프레시안

학생 수가 적어서 가능한 걸까? 조선학교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에 대해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 성적으로 순위를 매기지 않고 '축구를 잘하는 ○○', '노래를 잘 부르는 □□', '그림을 잘 그리는 ◇◇'와 같이 개개인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칭찬해주고 있다.
▲ ⓒ프레시안

축구를 좋아해 'J리거'가 되겠다는 아이들. 196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박치기> 1편에서는 조선학교 학생이 "북한에 돌아가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대사가 나온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은 8강에 진출했었다. 'J리거'가 되겠다는 아이들. '색안경'을 끼고 이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 ⓒ프레시안

한국에서 온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대표단을 위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
▲ ⓒ프레시안

지원모금 대표단과 아이들, 선생님들의 단체 기념사진. 에다가와 조선학교에는 수시로 한국 관광객들이나 선생님들,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연락도 없이 찾아와 교장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싫지는 않은 표정. 대표단이 떠나던 25일에도 한국에서 찾아온 20여 명의 방문단이 올 예정이었고, 송 교장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프레시안

지난해 KTF와 아름다운재단이 공동으로 기증해 설치한 컴퓨터들.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대한 한국에서의 관심이 높아지며, 아이들을 돕겠다는 손길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과실'(과학실)에는 실험 기자재가 부족하고, 제대로 된 화판이 없어 합판 위에 도화지를 올려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실정이다.
▲ ⓒ프레시안

복도에 나와 떠나는 한국 대표단을 배웅하는 아이들.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홈페이지:

◇에다가와 조선학교 후원계좌: 신한은행 330-03-004075 (예금주: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