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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체제의 내일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12ㆍ끝>
쿠바는 지금 전환기에 있다. 그 변화의 바로미터는 정치권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읽혀진다. 지난 5월 20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는 카스트로의 독재를 비판하는 정치모임이 있었다. 1959년 1월 쿠바혁명이 성공한 뒤 46년만에 처음으로 아바나에서 열린 반체제 모임이었다.
한인(韓人) 후예들을 만나다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11> “혁명으로 차별 없앴지만, 한국인 정체성 잃어”
올해 3월로 쿠바 이민사는 84년을 맞았다. 그 84년이란 세월의 두께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억척같은 생존의지로 켜켜이 다져졌다. 두고 온 고국의 산하를 그리워하기엔 너무나 생존에 급했던 그런 나날들이었다. 쿠바 이민사는 수탈과 눈물, 생존의 몸부림과 두고온 고국 땅
“의료-교육은 쿠바가 선진국”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10>
미국의 사설 병원들이 내미는 청구서는 살인적이다. 사립학교들도 등록금이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의료보험에 들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저소득층 사람들이나 자유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의료보험 없이 살아간다. 그 비율은 전체 국민의 16%에 이른다. 미국인
혁명은 가고 이미지만으로 남은 체 게바라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9>
베레모에 덥수룩한 수염을 가른 채 시가를 입에 문 체 게바라(1928-1967년). 그가 살아있다면 오는 6월이면 만으로 77세다. 쿠바에서의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11개월 동안의 볼리비아 게릴라 투쟁 뒤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살됐던 게바라. 그는 쿠바에선 국민적 영웅으로 받
‘모택동주의자’ 체 게바라의 혁명론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8>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280km 떨어진 산타클라라는 쿠바혁명 과정에서 체 게바라의 거친 숨결이 배인 도시다. 1959년 1월 2일 카스트로 혁명군이 아바나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바로 58년 12월말 체 게바라 사령관이 이끄는 혁명군의 산타클라라 전투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적 휴머니스트”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7> 체 게바라의 오토바이여행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
미국은 베트남전 수렁에 빠져들고, 젊은이들은 거리에서 변화와 개혁을 외치던 1960년대, 체 게바라는 그 격동기를 질풍노도처럼 살다 갔다. 그는 한 시대를 온몸으로 저항하다 숨진, 20세기의 아이콘이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20세기를 움직인 100인 가운데 체 게바라를
쿠바인들의 생존술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6>
쿠바 사람들은 누구나 작은 수첩만한 식량배급카드를 지니고 있다. 카스트로 정권은 1959년 혁명이 성공한 뒤 기본 생필품들을 무상으로 나눠주어 왔다. “사회주의 체제 아래의 쿠바에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보는 것처럼) 식량의 독과점으로 굶어죽은 사람이 나와선 안된
미국의 대(對)쿠바 봉쇄정책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5>
부패했던 바티스타 친미 독재정권이 1959년 혁명으로 무너졌을 때 쿠바의 민초들은 열광했다. 쿠바의 천연자원과 부(富)를 훔쳐가던 미국 기업들이 하나둘씩 몰수돼 국유화될 때 그들은 박수를 쳤다. 쿠바 민초들뿐 아니다. 세계의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열광하기는 마찬가지
혁명아 체 게바라의 마지막 날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4>
체 게바라(1928-1967년)를 말할 때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280km 떨어진 인구 20만의 도시 산타 클라라를 빼놓을 수 없다. 그곳엔 체 게바라 혁명기념탑과 아울러 거대한 체 게바라 동상이 넓은 광장을 바라보며 서 있다. 그리고 동상 지하에 만들어진 기념관 안엔
체 게바라의 혁명 근거지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3>
쿠바에선 체 게바라를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거리엔 대형 게바라 초상화가 내걸려 있고, 곳곳에 게바라 관련 상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카리브 해의 파도가 시원스레 넘실대는 풍경이 바라보이는 아바나 고급호텔의 벽걸이 그림도 게바라다. 빈민가가 들어선 아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