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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석궁 사건' 벌써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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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법원, '석궁 사건' 벌써 잊었나" [기자의 눈]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 손 들어준 대법원
"그들은 (유신시절) 긴급조치 적용 판·검사들보다 더 무섭다."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가 최근 한 시사주간지에 기고한 칼럼 속의 문장이다. 여기서 '그들'이 가리키는 것은 "인권·노동·환경·의료·교육 등을 다루면서도 언제나 민법에만 의거하는 판·검사들"이다.
  
  '재산권' 논리 앞세우는 법원, 사회적 공공성은 어디에?
  
  이 칼럼에서 박 교수는 "민법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재산법이 수호하는 재산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헌법에 보장된 '인권'의 영역까지 재산권 갈등을 다룰 때와 마찬가지 논리로 해석한다는 뜻이다.
  
  최근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늘었다. 약자의 권리 주장을 힘으로 누르던 시대가 지나가면서, 그 대신 "재산권을 침해 했으니 손해를 배상하라"는 법리로 약자를 압박하는 경우가 많아져서다.
  
  노동자의 집단행동에 대해 경영진이 구사대를 동원하던 과거와 달리,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맞서는 게 최근 추세다. 개인의 재산권과 다른 권리가 충돌할 때, 재산권을 우선하는 판결이 늘면서 형성된 흐름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사적 권리와 사회적 공공성의 갈등에서 후자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상지대 임시이사의 권한을 둘러싼 분쟁에 관한 지난 17일 대법원 판결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품은 이들이 많다. 법원이 재단의 권리를 보호하느라 교육적 공공성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이날 전원합의체를 열어 "상지대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이사회 결정은 무효"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현 상지대 이사들은 자격을 잃게 됐으며, 교육부는 조만간 새로운 임시이사를 파견해야 한다. 이날 판결의 의미를 살피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문기 전 이사장 복귀하나"…어두운 기억 떠올리게 하는 질문
  
  상지대는 지난 1992년 심한 학내분규를 겪은 데 이어 1993년에는 김문기 당시 이사장이 부정입학 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그 이후 10년 간 상지대는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으며, 학교가 정상화됐다고 판단한 임시이사들은 2003년 12월 이사회를 통해 9명의 정식이사들을 선임했다.
  
  하지만 비리로 학교에서 쫒겨난 김문기 전 이사장은 이런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은 2004년 1월 법원에 "이사회 결정은 무효"라며 소송을 냈고,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에서는 승소했다.
  
  최종심인 대법원이 김 전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물론 17일 대법원 판결이 비리로 물러난 김문기 전 이사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또 이번 판결이 김 전 이사장의 자동 복귀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지대 측은 김 전 이사장 측이 이번에 승소한 여세를 몰아 새 임시이사 선정 과정에 적극 개입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문기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던 시절, 상지대가 온갖 비리와 부정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던 기억을 가진 이들이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다.
  
  대법관 13명 중 8명 "교육 공공성보다 사학 이사장의 권리가 우선"
  
  그런데 상지대 관계자들만 이번 판결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본 게 아니다. 이번 판결을 통해 법원이 사학 문제를 대하는 입장이 선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사학재단의 임시이사가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17일 대법원이 배포한 판결 요지에 정리된 쟁점들은 광범위하다. 대부분 사학의 성격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그리고 사학의 기본권과 설립목적을 놓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선명하게 갈린다.
  
  이날 대법원이 배포한 판결 요지는 사학법인의 기본권에 관한 쟁점을 설명하며, 다수의견을 이렇게 정리했다.
  
  "헌법 상 학교법인에게는 사학의 자유가 인정되고, 사립학교는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독자적인 교육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므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 요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헌법정신은 법률 해석 시 기본 원칙이 돼야 함.
  
  따라서 구 사립학교법 제1조의 해석 시 위 헌법 정신에 충실하자면 학교법인의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자주성은 최대한 존중돼야 함."
  
  또 사학의 설립 목적에 대해서도 "학교법인은 본질상 그 운영시 설립 당시의 설립자의 의사, 즉 설립 목적을 존중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즉 사학은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설립되는 것이므로 설립자가 사학 운영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리는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소수의견은 이렇다.
  
  "다수의견이 강조하는 학교법인의 자주성 외에 공공성 역시 매우 중요한 법리일 뿐 아니라 사립학교법의 주된 입법취지 역시 사학의 공공성 확보에 있음.
  
  구 사립학교법 상 임시이사들에게 정식이사와 다름없는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하면 학교법인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 오게 되고 그것은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 및 이념의 변질로 이어져 그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수의견의 견해는 학교법인의 자주성에 지나치게 경도된 견해로서 임시이사 제도를 비롯한 학교법인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각종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귀착될 염려가 있음."
  
  임시이사의 권한을 제한하는 다수의견은 사학 재단 측에 치우쳐 "학교법인의 공공성을 위한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귀착될 염려"가 있다는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사학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학교에 재산을 출연한 이사장이 사학 운영에서 자율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과 이런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 교육의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는 입장이 충돌했고, 결국 전자가 이겼다.
  
  "사학 재단의 권리와 교육 공공성이 충돌할 경우,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법원이 '사학 재단의 권리'를 택한 셈이다. 이런 입장을 뒤집어 보면 교육 공공성을 훼손할 '사학 재단의 권리' 행사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8명이 '사학 재단의 권리'의 편에 섰고, 5명이 '교육 공공성'의 입장에 섰다.
  
  그리고 이날 대법원이 배포한 자료에는 "본건 이사회 결의에 따르게 되면, 본질적으로 학교법인의 지배구조를 변경하여 '사학의 공립화'를 초래하는 것이어서 보상 없는 재산권의 수용에 해당하여 헌법상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본건 이사회 결의'란 '상지대 임시 이사들이 정식 이사를 선임한 결정'을 뜻한다.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이다.
  
  결국 사학 임시 이사의 권한을 제한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헌법상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즉 상지대 문제에 대해 대법원이 '교육권'보다 '재산권'에 치우친 시각으로 접근한 셈이다.
  
  앞서 인용한 박홍규 교수의 글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인권·노동·환경·의료·교육 등을 다루면서도 민법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재산법이 수호하는 재산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는 내용이다.
  
  학교는 '學校' 건물만이 아니다.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學敎'다
  
  판결이 나오기 전, 김정란 상지대 교수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도 이런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이 칼럼에서 김 교수는 "학교 건물이 있기 때문에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학교 건물과 그것을 지은 땅이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학교'(學校)의 본질은 땅과 건물이 아니라 '배우고 가르치는 일'(學敎)이라는 것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기여하지 않고, 땅과 건물 등 재산에 대한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설명이다.
  
  17일 판결이 나온 직후, 상지대 측이 "법원이 사립학교 제도의 특수성과 공공성을 무시했다. 교육을 위해 기증된 공적재산을 개인의 사유재산 취급했다"며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산권 행사의 자율성 보호'에 집착하느라 학교 설립의 원래 목적을 잊었다는 지적이다.
  
  단지 상지대만이 아니라 사립학교 교원 일반이 이번 판결에서 불안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단 눈 밖에 나서 쫒겨난 교수들…"그래도 '사학 자율성'이 우선?"
  
  판결이 나온 다음날, 성신여대 정헌석 교수가 기자에게 연락을 했다. 지난해 11월, 정 교수와 같은 대학 김도형 교수는 재단 이사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파면됐었다. 하지만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는 올해 3월 성신여대 측의 파면 조치에 대해 '취소' 결정을 내렸다. 기본적인 절차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결정을 수용한 대학 재단 측이 파면 취소를 통보했지만, 변한 게 없었다.
  
  정년 보장 교수인 이들 두 명은 현재 연구실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급여도 못 받고 있다. 게다가 대학 재단 측은 다시 징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 재단 측에게 이번 판결이 희망의 메시지라면, 재단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쫒겨난 교수들에게는 불안의 신호다.
  
  이처럼 재단의 눈 밖에 나서 학교를 떠난 교수는 흔하다. 심지어 교육부가 "부당하게 대학에서 쫒겨났다"고 판정했지만 학교로 돌아가지 못 하고 있는 교수들도 많다. 전국교수노조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 처한 교수가 110명 이상이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보면 '교수의 교육권'은 왜소하고, '재단의 자율성'은 비대하다. 그런데 지난 17일, 법원은 '사학 재단의 자율성'의 손을 들어줬다. 사학 재단들이 넘쳐나는 '자율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해진다.
  
  왜 법원은 사학 재단의 편을 들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기 힘들다. 이런 질문에 대해 한 상지대 교수는 "사학 재단의 뜻을 거스른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명호 교수, 벌써 잊었나
  
  그런데 이런 대답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학 재단의 뜻을 거스른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로 아주 유명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불과 4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법원 내부에서는 더 유명한 사례다.
  
  바로 판사에게 석궁을 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경우다. 그는 1995년 성균관대 본고사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빌미가 돼 교수직에서 쫒겨 났다. 굳이 수학 교수가 아니더라도 자연계열 고교생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오류였다.
  
  하지만 대학 측은 억지 논리를 들이대며 김 교수를 압박했고, 결국 그는 학교를 떠나 10년 이상 낭인처럼 살아야 했다. '사학 재단의 뜻을 거스른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에 정확히 부합한다.
  
  17일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법원이 올해 1월의 석궁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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