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제대로 된 토론조차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회기만료와 함께 폐기될 위기에 처한 인권 관련 법안들을 살펴봤다. 다음은 학생인권법에 관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전누리 씨의 글이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최근호에도 실렸다. <편집자>
- 대선에 묻힌 인권법안 ①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안] "7개월 전 여수 참사, 벌써 잊었나" ②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 "'죽어 마땅한 자'는 어디에도 없다" |
2006년 3월 8일,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은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아래 '학생인권법안')을 발의했다. 긴 시간동안 작지만 끈질기게 이어져왔던 학생·청소년들이 억압의 상징적인 공간인 학교를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싸워왔던 노력을 이어받아 민주노동당과 교육단체, 청소년단체 그리고 인권단체가 함께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법의 내용을 만들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었다.
당리당략 속에 파묻힌 인권 법안
학생인권법안에는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① 학칙의 인권침해규정을 막고 학칙 중 학생생활 등에 관련된 사항을 개정할 때에는 총학생회와 협의해야 할 것(8조 2항 신설), ② 학생회를 법적 기구화 하고 학생회칙 등의 제·개정권과, 학교생활과 급식비 등 학교의 납부금 징수 등에 의견 표명권을 부여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 참여(17조 및 31조 2항 개정), ③ 징계 시 학생과 학부모에게 소명 및 재심청구의 기회를 부여(18조 2항 개정), ④ 학교의 장과 교사가 학생에게 신체적 가해, 즉 체벌을 금지 할 것(18조 3항 신설), ⑤ 학교장 및 학교 설립·경영자의 학생인권 보장 조치 강구를 의무화 하며 학생의 동의 없는 0교시·야간 자율학습, 두발·복장 검사, 소지품 및 일기장 검사 등의 행위를 금지(18조 2 및 3 신설), ⑥ 마지막으로 교육공무원과 학생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학생인권침해에 대한 상담체계구축 및 3년마다 학생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하는 것(18조의 4)이다.
이렇게 개정안이 총체적이고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그만큼 현재 학교 현장이 학생·청소년들이 요구하는 인간다운 삶과 괴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법안이 발의된 후 청소년단체와 인권단체는 법안의 국회통과를 요구하며 싸움을 전개했다. 5월 14일, 광화문에서 두발자유와 학생인권법의 통과를 요구하며 200여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거리집회를 열고, 학생인권의 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개별학교를 급습하며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현실을 폭로하고, 또한 8월에는 5개 대도시 지역을 행진하며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학생인권법을 알리고 통과운동에 함께할 것을 호소했다.
학교 현장에서도 자신들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학생들이 자기 학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거나 혹은 학내시위를 일으켜 학생인권법 통과에 힘을 실어주었다.
또한 교원단체인 전교조도 여러 단체들과 함께 10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학생인권을 보장할 것을 다짐하는 자체 교사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인권법 통과를 요구하는 움직임과 대조적으로 법안은 무려 1년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국회 교육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했다.
법안이 발의된 2006년,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두발규제와 강제이발, 단체 얼차려 등이 일어났고, 한 학교에서는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을 1인 시위를 통해 요구한 학생에게 재심청구권과 소명권을 부여하지 않고 특별징계이수라는 중징계를 감행했다. 8월에는 대구에서 한 교사가 보충학습에 5분 늦었다고 학생에게 200대를 체벌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이슈화 되었다.
하지만 국회는 조용했다. 해를 넘기고, 두발, 휴대전화 문자 검사 등 학생인권침해행위와 체벌 사건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었고 7월에는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한문성적이 낮다고 오리걸음 체벌을 받다가 학생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여야당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교육위 국회의원들이 사학법 개정과 로스쿨법 통과 등의 당리당략 속에 직무유기를 하며 청소년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을 때 학교공간은 학생들의 처절한 고통과 죽음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인권의 기준이 사라진 법안심사
뒤늦게, 아주 뒤늦게 최근 9월 13일 학생인권법안이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위원장 유기홍)에 상정되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이 법을 보면서 이제 학교가 교육하기 힘들게 되겠다.…학생들을 여태까지는 너무 존중해가지고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너무 참 버릇도 없고…하여튼 동등한 위치까지도 행세하려고 드는데…"
초등학교 교장과 교육청의 교육장을 지낸 한나라당의 김영숙의원은 이와 같은 말을 붙이며 법안에 대해 회의를 시작했다.
이어 법안 소위 의원들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금지된 체벌 조항 때문에 학생들이 선생 뒤에서 욕을 해도 못 때린다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안의 체벌금지에 대해 난색을 표한다.
반면 학생회 법제화는 옳은 방향이지만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거나 학칙 중 학생생활과 관련된 것에 학생회와 협의해야 한다는 것은 과하다고 말한다.
또 어떻게 학운위에 피교육자인 학생과 교원들이 동등하게 심사를 할 수 있냐고 말한다. 결국 법안심사소위를 구성하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의원들은 너무나 민감한 문제이기에 공청회를 열자고 결정한다. 조항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축조심의는 첫 항에서 끝나버렸다. 기대는 무너졌다.
4일 뒤인 17일, 공청회가 열렸다. 학부모 혹은 인권활동가 심지어 청소년당사자도 빠진 채 교사 등의 교원단체 사람 4명(찬성: 천희완 전교조 참교육실장, 전상룡 동덕여고 교장. 반대: 이명균 한국교총 선임연구원, 최병갑 구로중 교장)이 진술인으로 선정되었다. 역시 기대 할 것은 없었다.
반대 측 이명균 연구원과 최병갑 교장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아직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과 일선 학교의 자율화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금지조항을 법으로 둘 경우 획일화로 인해 단위 학교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막을 수 있고 또한 자칫 교원을 반인권적 교육자로 매도할 수 있고, 올바른 지도행위를 막을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그들은 교육적 이유로 체벌을 허용한 현행 법령에 의해 사람이 죽고 다치고 있는데 체벌이란 폭력에 대해 교육적 효과를 운운한다.
그들은 학교의 민주화를 운운하면서도 교육의 한 주체인 학생을 참여하게 하는 대신 배제의 장벽을 치려고 한다. 법을 통해 어떠한 이유로도 유보 될 수 없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세우는 것에 대해 전국의 학교를 획일화 시킨다고 말한다.
말 머리에 '학생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시작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기에는 너무나 내용이 많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그들의 너무나 가식적인 수사에 치가 떨릴 뿐이다.
법안심사소위의 국회의원들과 일부 교원단체 사람들의 학생인권법안에 대한 반대 주장들은 결국 그들 안에 있는 인권의 대한 인식 부재와 청소년이란 인격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결코 뺏을 수 없는 마지막 삶의 기준인 인권에 대한 무지. 무엇보다 청소년을 인권을 가진 개개인의 주체로 보지 않고, 집단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는 무생물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결국 그러한 철학 속에서 행하는 교육행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아닌 한 사람이 한 사람에 대하여 일방적인 폭력과 억압을 가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을 뿐이다.
교육에도 인권의 원칙을
공청회를 끝낸 학생인권법안은 10월 4일, 다시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사를 받게 된다. 1년 8개월을 기다린 법안이 올 17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고, 의원들의 반인권적인 입장 속에서 법안의 내용이 누더기가 되어버려 애초 학생인권법이란 법안 이름을 붙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앞선다.
나아가 학교의 억압과 폭력의 분위기 속에서 숨죽이며 법안이 통과되길 고대했던 청소년들이 그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걱정이 될 뿐이다.
호소한다. 결코 교육에서도 인권은 예외가 될 수 없는 원칙이라는 것이 확인될 수 있도록, 학교라는 공간에서 인간을 억압하는 교육이 아닌 인간을 살리는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될 학생인권법안의 후퇴 없는 조속한 통과를 17대 국회에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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